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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지금까지 지적 식민지에 머물러
독서 안 하면 지식 생산도 없어
책은 K컬처의 토대···지원과 홍보 늘려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한 시민이 베스트셀러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지난 2001~2002년 모 방송국에서 방송된 사극 드라마 ‘상도’를 보면 조선 후기 배경의 상인인 주인공이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에서 ‘사고전서’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귀국하는 장면이 있다.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제 때 중국 전역의 지식을 모아 편찬한 방대한 양(약 3만 6000여 책)의 도서다. 믈론 드라마는 허구였지만 실제 조선의 ‘호학군주’였던 정조는 이 사고전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중국 지식을 모두 얻을 기대로 말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까지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끊임없이 지식을 수입했다. 아마 서기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대 조선을 세운 이후 외국에서 사상과 이론을 수입하는 역사는 계속 이어졌을 듯하다. 조선 말기부터는 수입원이 일본으로, 해방 후에는 또 미국 등 서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 번이라도 한국산 지식을 수출했을 때가 있었을까.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무역으로 따지면 지식 분야에서 흑자를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 없었을 듯하다. 해외의 사상과 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우리나라 책이 번역돼 수출되기도 한다. 다만 이는 극소수다. 기자가 특파원으로 머물렀던 중국 베이징의 현지 서점들에서 한국어 원서는 물론이고 한국책을 중국어로 번역한 서적도 희귀종이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지금도 국내에서 유통 중인 책의 상당량은 외국책의 번역본이다. 예스24가 집계한 지난 2024년 베스트셀러 총 30권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책(6권) 및 영어학습책·한국사학습책(6권)을 뺀 나머지 18권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권이 해외 작가가 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었다. 여기에 ‘마흔에 읽는 (독일 사람) 쇼펜하우어’ 같은 책을 포함하면 외국책은 더 늘어난다.

물론 외국 사상과 이론의 수입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의 교류는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수입품들은 토착화돼 우리의 사상과 이론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국민의 해외 여행객이 방한 외래 관광객보다 훨씬 많은 것과도 비슷하다. 해외 여행은 한편으로는 해외 지식의 습득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 지식의 미래는 어떨까. K컬처(문화) 강국으로 인정받는 현재 시점에서 ‘지식 독립국’이 가까워졌을까. 이런 사례를 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가장 최근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우리 국민 성인의 독서율(종이책·전자체·오디오북 종합)은 43.0%로, 직전 조사인 2021년(47.5%)보다 무려 4.5%포인트가 줄어들었다. 이제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조사를 처음 진행했던 1994년 독서율(당시에는 종이책만 대상)은 86.8%였다. 독서율이 20년 만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곧 책을 생산하지도 않게 된다는 의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국내 연간 책 발행 총 부수는 1990년 2억 4184만 부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 중이다. 2010년에는 1억 631만 부, 2020년 8165만 부, 2023년은 달랑 7021만 부에 불과했다.

책을 쓰지 않으면 사상도 이론도 지식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가 영원히 ‘지적 식민지(intellectual colony)’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기 나라 사람의 헛된 걱정거리(기우)’가 아닌 상황이 됐다.

최근 ‘책’에 대한 소식은 정부 정책이든 신문·방송이든 사회운동이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나오는 이야기는 영화나 TV드라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가요, 게임, 숏폼, 스포츠 등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독서라는 측면에서 작년 연말과 올해 초의 반짝 영향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최근의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컬처’ 인기가 그나마 이제까지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우리 문화콘텐츠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에게 과거 ‘왜 책을 안 읽나’라고 하면 ‘일이 바빠서’라거나 ‘TV나 인터넷에서 볼게 많아서’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요즘 같은 질문을 하면 ‘책을 왜 읽어야 해요?’라는 반문이 돌아옵니다. 그런 시대가 됐네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책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이 기관의 올해 예산은 355억 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작년보다 27억 원이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여전히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다. 책에 대한 지원과 홍보를 더 늘려야 하는 이유다.

지식 분야에서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날이 올 수 있을까. 해외 책의 수입보다 우리 책의 수출이 더 많을 날 말이다. 꼭 돈을 벌겠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우리의 사상과 이론이 세계에 기여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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