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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열악한 외상센터 현주소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외상외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지만 의료계에서 외상외과는 그야말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의사 사회에서 외상외과는 일은 많은데 보상은 없는 과로 여겨져 기피 대상 1호이고 병원에서는 돈 잡아먹는 하마로 치부돼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다.


한국의 예방 가능 사망률(중증외상센터에서 적정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비율)은 2019년 기준 15.7%로 5~6% 수준인 주요 선진국의 약 3배에 이른다. 하지만 그나마 있던 외상센터 전문의 중에서도 청진기를 내려놓는 이가 많다. 이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수가 체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내 의료계에 백강혁(중증외상센터 주인공·사진)이나 제2의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백강혁의 실제 모델)이 나오기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사흘에 하루꼴 밤샘


외상센터에서 일하려면 외과 등 외상학 관련 법정 전문 14개과에서 전문의 자격을 갖춘 뒤 고려대구로병원 등 전국에 있는 외상학 세부 전문의 수련 병원 27곳 중 한 곳에서 2년간 실습을 해 세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밟아 ‘외상학 세부 전문의’가 되는 이는 갈수록 줄고 있다.


21일 국민일보가 대한외상학회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상학 세부 전문의 자격 취득자는 13명으로 해당 제도가 도입된 2010년(86명)과 비교하면 6분의 1 넘게 감소했다. 기존 외상학 세부 전문의 중 자격을 포기하는 이도 많다. 외상학 세부 전문의가 되면 학회 보수 교육을 듣고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등 요건을 갖춰 5년마다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대상자 58명 중 자격을 갱신한 비율은 20.7%(12명)에 불과하다.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저치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외상센터의 살인적 업무 강도다. 외상센터 의료진은 365일 24시간 근무해야 하지만 전문의가 적어 휴식을 충분히 취할 만큼의 교대 조 편성이 불가능하다. 드라마에서 백강혁의 휴대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것도, 그가 이 수술방, 저 수술방을 오가며 메스를 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국종 원장은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을 맡았던 2017년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며 한 달에 열흘은 밤을 새워야 하는 외상센터 전문의들의 팍팍한 삶을 한탄하기도 했다.

고된 일, 남는 건 오직 보람뿐…보상 더 키워야

상황이 이런데 외상센터 세부 전문의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다. 대학병원을 비롯해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대형 병원은 대부분 호봉제라 24시간 교대근무하는 외상센터나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다른 일부 부서나 급여가 비슷하다. 정부가 외상센터 운영 병원에 전문의 1인당 주는 인건비 지원액(연 1억6000만원)을 꾸준히 올리고는 있지만 외상 전문의를 ‘공짜 인력’처럼 여기고 지원액 이상의 급여를 주지 않는 병원도 존재한다. 정부가 별도 지급하는 외상센터 의료진의 추가 당직비를 “다른 과 전문의와 형평성이 맞지 않으니 반납하라”며 가로채는 병원도 있다.

신규 전문의 공급을 늘리려면 정부의 외상센터 전문의 인건비와 당직비 지원액이 병원이 아닌 의사 개인에게 지급돼야 한다는 것이 외상학계의 목소리다. 외상센터에 3년, 5년, 10년 근무할 때마다 인건비를 올리는 호봉제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익명을 요구한 외상센터 관계자는 “현재의 지원 체계는 병원만 배불리는 구조다. 사흘에 하루꼴로 밤샘을 하는 삶을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외상센터에 일할 사람이 없어 한국의 외상 시스템은 말라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자, 적자, 적자…외상센터는 늘 찬밥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인력 공급뿐이 아니다. 흑자를 내기 힘든 구조라 병원 내에서 미운 오리 취급을 받는 외상센터의 지위도 개선돼야 한다. 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2017년 한 해 동안 210억원을 벌었지만 310억원을 써 1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일반 환자를 받으면 100병상당 손익률이 0.3%로 흑자이지만 외상센터는 정부 보조금을 반영하더라도 -24%다. 병원이 외상센터 병상을 줄여 일반 병동을 늘리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외상학계에서는 ‘응급손상통제수술’ 항목의 수가를 중복 청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외상센터는 중증외상 환자를 받을 때 응급손상통제수술 수가를 청구할 수 있는데 수가(80만원)가 개복술(77만원)보다 고작 3만원 높은 정도로 낮은 데다 다른 항목의 수가와 중복 청구할 수도 없어 현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또 각종 시술과 수술의 수가를 책정할 때 난이도나 응급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시간에 비례해서만 보는 건강보험공단의 관행이 문제라고 외상학계는 입을 모은다.

이 밖에 상급 종합병원 기준에 중증외상환자 진료 실적을 반영하고, 중증외상환자 전원 요구를 수용하는 외상센터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항주 외상학회 이사장(가톨릭대의정부성모병원 외상센터장)은 “외상센터 전문의 처우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가 체계를 바꿔 외상센터의 자생력을 높이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처럼 외상센터가 적자 일색인 상황이라면 병원의 외상 인프라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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