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중동 사막을 달리고 있는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그룹이 방산·조선해양 부문을 앞세워 트럼프 시대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한화그룹 시가총액이 올 들어 80%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월 18일 종가 기준 한화그룹 12개 상장사 시총 합계가 74조원을 넘어섰다.
불과 두 달 전인 2024년 말 대비 32조원(78.94%) 넘게 급증하며 국내 10개 대기업집단 중 가장 많이 늘었다. 지난해 말 그룹 시총 6위였던 셀트리온그룹, 7위 포스코그룹도 제쳤다. 시총 약 7조원 차이인 5위 HD현대(81조원)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지난해 10대 그룹 가운데 시총이 가장 크게 증가한 곳은 HD현대(127.5%↑)로 한화(36.5%↑)는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올해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무더기 신고가를 기록하며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12일 하루에만 한화그룹 시총은 10%나 증가했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그룹 순위 비교. 그래픽=박명규 기자
한화에어로, 전쟁 이후 1083.80% 상승
그룹 주력인 방산·조선해양 부문은 미국발(發) 관세전쟁 무풍지대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해군력 증강 정책 수혜 기대감도 더해졌다. 또 방산·조선해양 계열사의 호실적, 유럽의 방위비 증액 가능성이 맞물리며 한화그룹 주력 계열사의 주가가 치솟았다.
K방산 대장주로 꼽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월 들어 연속으로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월 18일 전 거래일 대비 11.44% 오른 64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전면전으로 격화한 2022년 2월 5만원 초반대이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현재 64만원대로 1083.80%나 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시총은 29조3086억원으로 코스피 상위 12위에 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조7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매출도 11조원을 돌파해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지상 방산이 실적을 견인했다. 폴란드 K9 자주포 40문과 천무 12대 수출에 이어 호주와 이집트 등 해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8.9% 증가했다. 이를 앞세워 1조3000억원을 투입해 한화오션의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방산과 조선해양 사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율은 34.7%에서 42.0%로 확대된다. 그룹의 승계와 사업재편 과정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방산 분야와 함께 조선·해양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월 17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방위산업 전시회 IDEX 2025에서 파이살 알 반나이 엣지그룹 최고경영자(CEO)와 방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그룹 상장사 주가·시가총액. 그래픽=박명규 기자
한화오션, 트럼프발 수혜 계속
한화그룹 계열사 중 올해 들어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곳은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들어선 가운데 지난해 영업이익 2379억원으로 2020년 이후 4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한화오션 주가는 연초 3만7800원에서 7만7600원으로 105.29%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조선업을 협력 대상이라고 언급하고 미국 의회에서 동맹국에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맡기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화오션 주가도 치솟고 있다.
마이크 리, 존 커티스 상원의원이 나토 및 인도·태평양 등 동맹국 조선소와 선박 건조 및 부품 조달 등 함정 건조 협력을 강화하는 반스-톨레프슨 수정법 개정을 골자로 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한 영향이다. 미국의 동맹국 중 함정 건조 레퍼런스가 우수하고 낮은 비용으로 빠른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 해양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연간 20조원 규모의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수주 물량 증가 및 함정 신조 건조 시장 진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싱가포르 부유식 해양 설비 전문 제조업체인 다이나맥 홀딩스 지분을 확보해 해양플랜트 시장 진출을 위한 인프라도 확보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2025 건조 계획’을 분석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291척인 군함을 2054년 390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향후 30년간 구매 비용만 1조750억 달러(1600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지에 조선소를 보유한 한화오션의 수혜가 기대되고 있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주)한화, 26년 만의 주가 강세…개미들 ‘들썩’
그룹 지주사 격인 (주)한화도 연초 2만7000원대에서 5만원으로 84.84% 급등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은 연초 대비 주가가 각각 76.89%, 49.37% 상승했다.
(주)한화의 주가는 18년 전 2007년 10월 26일 역대 최고 주가인 9만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말까지 3만원대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방산·조선해양 등 주요 계열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수혜주로 주목받으면서 (주)한화 주가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1999년경부터 (주)한화 주식을 보유해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최근 보유하고 있던 (주)한화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호연 회장은 지난 2월 13일 시간외 매매를 통해 (주)한화 보통주 12만4567주(0.16%)를 전량 매도했다. 주당 매도 가격은 3만9200원으로 총액은 48억8303만원이다.
(주)한화의 일부 소액주주들은 견고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돼 있다며 한화그룹의 3세 승계 과정에서 승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한화 종목토론방에는 최근 주가 강세로 모처럼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결혼하기도 전에 (주)한화 주식을 샀는데 아이가 올해 4학년이 된다. 13년의 기다림 끝에 탈출의 시간이 오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저평가 탈출 기대감에 “이제 한화는 야구(한화이글스)만 우승하면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화이글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인 1999년 이후 한번도 챔피언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한화그룹 주력 사업부문인 방산·조선해양 부문의 올해 전망도 밝다. 미국 주도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종전 이후에도 세계 각국이 방위비 증액에 나서 방산·조선해양 부문의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수출 정책에 따른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추진과 중국 견제 기조에 따라 북극해 쇄빙선, 미 함정 MRO, 신조 건조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도 나온다.
미국 조선업 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선박법’을 발의한 마크 켈리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은 지난 2월 19일(현지 시간)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에 방문해 조선소를 둘러보고 “미국 조선업의 재건이 단순한 해군 함정 건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선 건조 및 공급망 형성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며 “한국, 특히 한화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와 한국 조선업계의 협력 방안이 조만간 구체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