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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맘.때] 정신의학 전문가들 우려 목소리
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맘.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마음 돌봄’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이슈마다 숨어 있는 정신건강의학적 정보를 전하고 때로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도 제공하고자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전 초등생 살해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지점은 범행을 일으킨 교사의 ‘우울증 병력’이었다. 많은 이가 우울증이 이번 사건의 핵심 요인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해당 교사의 범행을 우울증과 관련짓긴 어렵다고 말한다. 이번 사건 탓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낙인효과가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27년간 진료, 이런 사례 본 적 없다”

대전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김하늘(8)양은 지난 10일 오후 5시50분쯤 학교 시청각실에서 40대 여교사 A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가 끝내 사망했다. A씨는 당시 현장에서 자해를 시도한 상태로 발견돼 응급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2018년부터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 진술했고, 언론은 이 대목에 주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씨의 우울증 병력을 범행 동기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A의 범행 이유가 우울증 때문이었노라고 말할 순 없다는 것이다.

신재호 마음애사랑의원 원장은 “자책감으로 위축되거나 초조해하는 것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행동 증상”이라며 “불특정인을 가해하는 것은 우울증과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진단 기준에도 의욕 저하, 자살 생각 등의 증상은 있지만 공격성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7년 동안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 우울증이 원인이 돼서 살인범이 되거나 살인미수범이 된 사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A씨의 범행을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는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했다. 실제로 A씨는 경찰에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A씨가 사전에 흉기를 준비한 점, 김양 할머니에게 아이의 행방을 모른다고 거짓말한 점에 비춰볼 때 A씨가 ‘질병으로 인해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백 교수의 판단이다. 계획 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지금 단계에선 다른 진단명을 언급하는 것도 섣부르다. 프로파일링과 전문가들의 의학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들 “위축된다”…낙인효과 우려


한국 사회에서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으로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가령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해 4월 15~69세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정신건강 문제 경험률은 73.6%에 달했다. 그러나 정신건강 문제로 타인과 상의(상담)하거나 병원을 방문했다는 응답자는 27%에 불과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고민한 이유로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13.7%)이 1위였고, ‘치료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 걱정’(12.9%)이 3위였다.

이처럼 ‘낙인’이 두려워 정신질환자들이 병력을 숨기거나 치료에 소극적으로 변할 경우 증상이 악화하고 치료가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만성화되기 전 조기 대응이 중요한 정신질환 치료에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대전 초등생 살해사건 이후 A씨의 병력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백 교수와 신 원장 모두 환자들로부터 “주변의 시선이 걱정된다”는 고민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 교사인 환자가 “치료받는 데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토로한 경우도 있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병력 때문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 원장도 “이번 사건은 학교 현장에서 겪는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해소할 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늘이법’ 호소한 유가족

지난 2016년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던 4세 여아가 처음 본 남성이 휘두른 칼에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마약 전과범으로, 중국 쓰촨성 출신을 살해하는 게 자신의 혈통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만 사회에서는 가해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피해 여아의 어머니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 시대역량당 비래대표 4번으로 당선됐고 현재는 당 대표까지 맡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뒤 대만의 정신건강 정책 혁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 교수는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대전 초등생 참사 같은 일을 다시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김양을 기억하고 그 짧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양의 아버지도 비슷한 당부를 전한 바 있다. 김양의 아버지는 사건 직후 언론을 통해 “심신미약 교사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늘이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안전한 학교 현장을 위해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하늘이법’, 실질적 대책 담기려면

교육부는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늘이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는 고위험 교원에 대해 긴급 분리 조치, 긴급 대응팀 파견 등의 내용이 담긴다. 정신질환 교원에 대해서는 치료를 지원하고, 복직 시에는 관련 심의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교직 인·적성 검사도 강화해 교사 신규 채용 시 입직 단계부터 고위험군을 사전에 걸러낼 방침이며, 교원의 정신건강 상태 파악과 지원을 위해 주기적인 ‘마음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방안들을 통해 “(정신질환 교원의) 선별보다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담교사로 근무 중인 이은정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장은 “고위험군을 ‘걸러내는’ 방향성의 제도라면 교사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공무원까지 확대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문조사의 경우 신뢰도와 타당성 때문에 문항을 매번 바꿀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문항을 기억했다가 모범 답안을 체크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담 또한 현재 시도교육청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가 있지만 교육 현장에 대한 외부 연계 상담사의 이해도가 낮은 게 문제다. 이 회장은 “교사들이 상담을 받으면서도 외부 연계 상담사에게 교육 시스템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다”며 “관련 교육을 받거나 전문성을 갖춘 상담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일반화하는 식의 접근이라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사례처럼 사건 사흘 전 다른 교사를 폭행하는 등 ‘자해·타해 경고 신호’가 있을 때 전문가의 즉시 개입이 이뤄지는 것도 방법”이라며 “인권과 치료권을 보장하고 안전도 동시에 확보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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