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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저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술집 여자입니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집회에서 한 여성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자신이 손가락질받을 것을 알면서도 단 한 가지를 부탁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했다.

그의 간절한 호소는 탄핵이 아니었다. “이 고비를 넘긴 후에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는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가 가속되는 시대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만약 이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윤석열이, 또 다른 박근혜가, 또 다른 전두환과 박정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는 연이어 오직 국민들의 관심만이 사회적 약자들을 살릴 수 있다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쿠팡의 노동자들, 지하철에서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여성들, 차별받는 이주노동자들, 지역 혐오로 고통받는 이들…. 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고.

그로부터 두 달 뒤, 국민일보는 ‘탄핵 블랙홀’에 약자들의 목소리가 묻혔다고 보도했다. 헌혈은 줄고 연탄 후원도 급감했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을 악용하는 터무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상임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이며, 심지어 전두환과 노태우조차 철저한 약자였다고 주장했다. 그저 무개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진정 누군지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진 적도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다. 그렇지 않고는, 어찌 이런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사회적 약자’란 누구인가. 사회 구조적 요인, 경제적 불평등,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 성별, 연령, 인종, 교육 수준 등의 이유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배제되고, 언제나 차별받으며, 언제나 기회에서 밀려난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말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발전의 가장 중요한 척도다.” 그래서 유엔이나 국제기구가 주목하는 사회적발전지수(Social Progress Index) 역시 빈곤층, 성평등, 의료 접근성, 사회적 약자 보호 수준을 핵심 지표로 삼아 선진국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말한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도 사회적 약자다.” 이쯤 되면 소가 웃을 일이다.

예수는 늘 가난한 자, 멸시와 천대받는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했다. 예수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강렬히 저항했지만 늘 비폭력적이었다. 탄핵정국에 기독교를 빙자한 사이비집단은 폭력을 사주하며 헌법재판소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집단을 등에 업고 지지자 선동을 이어가는 정치인들이다. 고물가에 숨이 막혀가는 시민들은 가슴이 타들어 간다. 정치인들의 목표가 오직 ‘정권 유지’와 ‘정권 교체’에만 있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찌 될까.

‘탄핵 블랙홀’ 가운데 한 인물이 떠올랐다. 비상계엄 이후 갑작스레 주목받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그는 최근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으로도 꼽혔다. 필자에겐 비상계엄 해제의 수장 역할보다 더 크게 보이는 모습이 있었다. “제가 정치에서 가장 잘한 일은, 강자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을지로위원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는 평생 지켜온 자신의 정치 신념을 이렇게 밝혔다. “정치는 가장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여야 한다.”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정치가 국민의 최대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지금, 그래서 더욱,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여 주는 정치인들과 국정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이끌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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