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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언덕 위의 돌집, 대통령 집무실

편집자주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가 한국 사회의 논쟁적인 공간과 건축 이슈를 풀어내는 기획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전경. 연합뉴스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3월 당선 열흘 만에 대통령 집무실(청와대)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에는 윤 대통령 자신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살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12·3 불법계엄을 겪은 현시점에서 윤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실천한 사람이었는지는 국민들이 각자 판단할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의 말을 곱씹어보자. 청와대가 정말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었나?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지 단언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청와대가 그러한 말을 들을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나?

'청와대'는 조선총독 관저에서 비롯됐다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빌딩에서 바라본 청와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종이 왕권을 바로 세우고 문(文)과 무(武)를 융성케 하려는 의지를 담아 건설한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이 위치했던 곳이 '경무대(景武臺)'다. 경복궁에서 고종의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었던 경무대가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인해 독재를 상징하는 장소로 전락한 탓에 원래 이름을 잃고 '청와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불행히도 청와대는 궁궐에서 사용된 청기와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니라, 조선 총독이 살던 집의 지붕에 사용된 기와의 색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아뿔싸…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결과다.

총독 관저의 지붕 재료에서 유래된 이름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지금의 청와대가 지어지면서 제 이름을 찾았다. 지붕에는 청기와가 사용되었고, 총독 관저의 군국주의 건축양식 대신 우리의 전통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로 지어졌다. 흥미롭게도 이 집을 지은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마지막 군 출신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서울에 수학여행을 온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들과 경무대(청와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드디어 이름과 실체가 일치하는 명실상부한 집이 지어졌지만, 대통령 집무실 입지의 적절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민주공화정을 갖춘 세계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자국민을 내려보는 곳에 집무실을 마련할까?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려는 군 출신의 대통령은 자국민을 아래에 두고 국민과의 접점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한 모습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 이후에는 청와대를 떠나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곳에 집무실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대통령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었고, 대통령의 경호는 청와대를 벗어나려는 대통령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윤 대통령은 자신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다"를 외치며 과감하고 신속하게 청와대를 벗어났다. 놀라운 결단력이었고, 필자는 이를 기꺼이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향했던 곳은 용산이었다. 총독 관저의 터를 겨우 벗어났는데, 총독이 '우리'를 무력으로 지배한 힘의 원천인 옛 일본군 병영 속에 집무실을 마련한 것이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집무실 옆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1945년에 이어 또다시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日군영 안으로 간 대통령 집무실

2023년 11월 제61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소방대원 가족들의 손을 잡고 서울 용산어린이공원 잔디마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현 대통령실이 위치한 곳은 러일전쟁과 함께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압박하여 체결한 한일의정서(1904)에 기초해 강제로 땅을 수용해 지은 일본군영 한복판이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일본군 병영에는 미군이 주둔했고, 그 한편에 우리 육군 본부가 위치했다. 대통령실은 육군 본부와 미군부대 사이에 위치한 셈이다.

2003년 한미협정을 통해 용산에 주둔한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고, 용산기지의 반환이 결정되었다. 일본군 병영이 건설된 지 100년이 된 시점에 우리 품에 돌아오게 된 용산기지는 단순한 땅의 회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독립전쟁과 분단, 냉전과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민주공화정을 확립한 자부심을 담아 세계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담은 공원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용산기지에는 지난 세기 우리의 굴곡진 역사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온 세계가 경험했던 불행한 역사였고, 이 역사의 현장과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여 역사적 교훈을 다음 세대를 너머 세계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하나둘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용산기지의 유산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부정적 유산이 갖는 교훈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지속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용산 집무실은 미국 백악관 닮은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의 철문 뒤로 넓은 잔디밭이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용산은 남산에서 한강에 이르는 야트막한 구릉이 여러 갈래로 가지 쳐 형성된 땅으로 곳곳에 저습지가 있는 곳이었다. 낮게 펼쳐진 야트막한 구릉 위에 대통령 집무실이 우뚝 서 있다. 국방부와 군 관련 건물들과 나란히 서 있는 대통령 집무실 앞으로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고, 철책 너머로 연장된 잔디는 '어린이정원'으로 이어진다.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사 간 지 1년 만에 집무실 앞에 조성된 어린이정원을 병풍처럼 둘러선 건물들을 보노라면, 대통령은 저곳에서 안전할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미 미국의 도청과 북한의 드론으로 대통령의 안위가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현장을 직관하는 것은 신문과 뉴스를 통해 사실을 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어린이정원에서 바라보는 철책 너머의 대통령 집무실을 보다가 워싱턴의 백악관 모습이 겹쳐졌다. 둘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철책 너머 잔디 마당을 앞에 둔 풍경은 매우 닮았다. 1960년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총독 관저의 지붕 재료가 청기와인 데 착안하여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할 때 그의 머리 속에는 흰색 건물이라 '화이트하우스(White House·백악관)'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떠올랐으리라. 지금의 용산 집무실은 색이 아닌 풍경으로 백악관과 닮았다. 백악관은 평지에 위치했지만 용산 집무실이 언덕 위에 있다는 것만 다를 뿐.

역사 유산 밀어버린 '어린이정원'

서울 용산구 어린이정원을 둘러싼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 건물들. 안창모 제공


어린이정원 한복판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너른 땅을 가득 채운 잔디가 장관이다.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된 잔디밭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감탄할 만한 풍경이지만, 필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과 냉전의 역사적 유산으로 가득했던 곳이 잔디밭으로 바뀐 것이다.

근현대건축사와 도시사를 연구하는 필자는 2003년 100년 만에 우리 품에 돌아올 미군기지를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수행한 바 있다. 여러 차례 용산기지 내 일제강점기 유산과 주한미군 유산에 대한 조사 그리고 공원 조성 사업에 관여해 남길 것과 철거할 건물들에 대한 조사와 평가를 해왔다.

그런 필자에게 불과 1년 사이 깨끗하게 정리된 잔디밭은 경악 그 자체였다.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우며 용산에 집무실을 마련한 대통령이 수많은 유산을 밀어버리고, 잔디와 꽃으로 채운 마당을 만들어 '어린이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정말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집무실 앞에 펼쳐진 역사 유산을 청소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었을까?

대통령이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밝힌 지 1년 만에 지금의 어린이정원이 만들어졌다. 수년에 걸쳐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안을 뽑고, 실시설계를 진행하던 공원 계획을 무시하고 어린이정원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명실상부한 공원에 규모가 작고 사적인 성격이 강한 곳에 붙이는 '정원'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굳게 닫힌 용산 어린이정원의 철문. 안창모 교수 제공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아직 어린이정원을 방문한 적이 없거나 대통령 집무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방문을 권하고 싶다. '서울의 숲'을 방문하듯 방문해서는 안 된다. 무작정 방문하면 제일 처음 여러분을 맞이하는 것은 굳게 닫힌 철문이다. 공원이 문을 닫았나 하고 생각할 때 철문을 지키는 안내요원과 안내문이 친절하게 공원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라고 알려준다. 현장에서 예약하는 방법을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만 운이 좋아도 빨라야 1시간 반에서 2시간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 공원에 갈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세상에 어느 공원이 사전에 예약하고 신분증을 소지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철문을 갖추고 있을까?

용산기지가 우리 품에 돌아온다고 했을 때 꿈꿨던 공원은 이런 공원이 아니었다. 우뚝 솟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 건물이 지배하는 공원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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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모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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