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21일 울산 남구 장생포 앞바다에 오염수가 유출된 모습. 울산시 제공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흔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지역 경계도 없이 전국 사업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묻으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후관리를 책임져야 하지만, 매립장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변심’이 시작된다.
시커먼 침출수가 흘러도 ‘모르쇠’, 불법이 드러나도 ‘배 째라’ 식이다. 업자들의 배짱은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떠맡는다. 혈세가 업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꼴이다.
2023년 3월21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염수로 얼룩진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 울산시 제공
1년 넘게 바다로 흘러드는 침출수…갈라진 1심 판결
2023년 3월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 악취를 내뿜는 시커먼 액체가 옹벽 틈새와 우수관 곳곳에서 흘러넘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고인 바닥은 이미 수차례 유출 흔적으로 얼룩졌다. 이 액체는 장생포 앞바다까지 흘러들었다. 오염수 유출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울산시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 공장과 왕복 2차로의 진입로를 사이에 둔 지정·일반 산업폐기물 매립장인 ㈜유니큰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울산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미포단지의 공장에서 나온 오염수와 유니큰에서 나온 침출수를 분석 의뢰했는데, 검출되는 성분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안정동위원소비’를 분석해 ‘유니큰의 침출수가 오염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안정동위원소비 분석법은 방사 붕괴를 하지 않는 안정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물질의 기원을 찾는 방식으로, ‘화학적 지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피해 공장에서 채취한 오염수(왼쪽)와 유니큰 매립장에서 채취한 침출수. 울산시 제공
2023년 8월 환경당국은 이를 근거로 영업정지 3개월, 유출된 침출수 회수·처리와 시설 개선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유니큰은 이런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울산시와 환경청의 주소지에 따라 울산지법과 창원지법에서 나눠 진행됐다. 올해 초 두 재판부가 내놓은 1심 판단은 전혀 달랐다. 창원지법 행정1부(재판장 곽희두)는 성분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라고 인정했다. 반면 울산지법 행정1부(재판장 한정훈)는 “피고(울산시)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처분 사유가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유니큰 손을 들어줬다.
울산보건환경연구원 성분 분석 결과표. 울산시·창원지법 1심 판결문 발췌
불법 적발에도 경제논리에 숨어 ‘버티기’
이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2000년 6월부터 운영됐다. 먼저 허가된 매립장이 가득 차면 바로 옆 부지로 넓히고, 더 높이 쓰레기를 쌓았다. 매립장 면적은 축구장 9배 넓이인 6만2620㎡(약 1만9천평), 매립 용량은 119만4920㎥에 이른다. 일부 구역은 사후관리 중이고, 운영 중인 곳도 98% 이상 찬 상태다.
관리는 엉망이다. 2023년 12월 사후관리 구역에서 침출수 유출 의심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 운영 중인 구역의 시설이 파손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 매립장은 허가구역 밖 에스케이(SK)에너지 공장 부지에 약 10만㎥의 폐기물을 무단으로 매립했다가 2017년 적발된 바 있다. 환경당국은 매립장 허가를 취소하고, 애초 사업자인 유성, 이를 넘겨받은 유니큰, 토지 소유주인 에스케이에너지에 원상복구를 명령했다. 유성과 유니큰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행정소송을 냈고, 에스케이에너지도 불법 매립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말 창원지법 행정1부(재판부 김수정)는 불법 매립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원상복구 명령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안정된 매립장을 건드리면 오히려 환경오염이 우려된다고 했다. 당시 최소 266억여원의 원상복구 추정 비용도 과도한 부담으로 봤다.
재판부는 “환경오염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원상복구 명령은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들의 손해에 비해 조치명령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했다. 환경청은 항소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 사건은 2년째 대법원에 있다.
매립장이 안정화됐다고 판단한 재판부와 달리, 환경당국은 이미 내부 시설이 파손돼 오염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침출수 유출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중 하나다. 특히 환경당국은 비용 등의 이유로 불법을 바로잡지 않으면, 자칫 업자들의 ‘버티기’가 통한다는 사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울산 남구 미포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유니큰 소유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전경. 울산방송(UBC) 갈무리
막대한 수익 ‘꿀꺽’ 사후관리 나 몰라라
산업폐기물 매립장 영업은 수익으로 직결된다. 톤당 10만원 안팎인 매립 비용은 한때 20만원까지도 치솟았다. 전국 곳곳에서 주민과 갈등하면서도 업자들이 매립장을 지으려는 이유다.
환경당국이 정한 사후관리 기간은 최소 30년. 하지만 적지 않은 매립장들이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방치된다. 매립장을 덮는 흙에 폐기물인 오니류(정수장 등 찌꺼기)를 섞기도 하고, 아예 마무리도 하지 않고 잠적하거나 사후관리 중 부도를 내거나 폐업을 하기도 한다.
경남 양산시 옛 원광개발㈜은 사후관리를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인 2012년 부도 처리됐다. 수습은 낙동강유역환경청과 양산시의 몫이었다. 2019년 경매로 매립장을 넘겨받은 ㈜유하브이엘은 사후관리를 하는 대신 인근에 의료폐기물 소각장 허가를 요구했다. 현재 하루 48톤을 처리할 수 있는 소각장의 인허가 협의를 진행 중이다.
경북 성주군은 2017년 5월 종료된 매립장을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잠적한 ㈜지엠이앤씨의 뒤처리를 떠맡았다. 당장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성주군은 시설 폐쇄 후 2022년 11월 명의까지 가져와야 했다. 추산된 처리 비용은 83억원. 적립된 사후관리이행보증금은 36억원뿐이었다. 우선 국·도·군비 42억3천만원을 확보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혈세가 들어갈지 장담하기 힘들다. 법인에는 압류할 재산도 없다. 구상금을 청구할 방안도 묘연하다.
2023년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
환경부, 폐기물 관리보증금 현실화한다는데…
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려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보험으로 사후관리이행보증금을 적립해야 한다. 환경부가 3년마다 보험료 산정 기준을 정해 고시하는데,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실제 양산시 원광개발의 매립장 사후 처리 비용은 100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적립된 보증금은 12억원에 불과했다.
환경부는 보증금 현실화 등을 담은 ‘폐기물 매립시설 관리체계 선진화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올해 고시하는 산정 기준을 손보겠다는 것인데, 기준을 면적에서 부피로 변경하는 것을 제외하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발전소처럼 매립장을 운영하는 동안 수익에 비례한 지역자원시설세를 거둬 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세기본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환경부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발전소와 달리 민간이 운영하는 매립장의 세금 부담이 자칫 매립 비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다.
한 지자체 환경직 공무원은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매립장에 문제가 생기면 환경오염은 물론 복구 비용 부담까지 모든 피해는 지역이 떠안게 된다. 보증금을 제대로 산정할 수 없다면, 지역 차원에서 대책을 세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