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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19일 문재인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은 위법했다면서도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관련자들에 대해 징역형의 선고를 유예한 것과 관련, 정부의 자의적인 탈북민 신병 처리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처벌을 피할 수 있게 한 것 자체가 위험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가운데)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이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당시 벌어진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 유예 받은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원은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게 각각 징역 6개월을 선고 유예했다. 연합뉴스
재판부 스스로도 2019년 이뤄진 문 정부의 강제북송 결정이 다양한 측면에서 정부가 임의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강제북송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기 어렵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정부의 자의적 재량 개입 여지가 큰 불확정개념을 토대로 국가가 필요에 따라 국민을 선택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위험성마저 내포된 개념”이라며 이들이 헌법상 우리 국민이 맞다고 판단했다. 북송 결정은 “흉악범이면 재판 없이도 공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고 유예를 택한 이유로 법제도 미비 등을 들었다. “남북 분단이 오래 지속되면서 법적 논리로는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이 도처에 산재해 있어 피고인들이 이를 충분히 피해가며 적법 행정을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면서다.

북송된 탈북민이 선상에서 선원 16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과 관련해서도 “피고인들의 의사 결정 배경으로 이들이 저지른 범죄의 흉악성 또한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들이 고위공무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감정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데 이르지 못한 것에 어느 정도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도 판시했다.

하지만 이는 입법 조치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위해가 될 수 있는 탈북민을 어떤 절차를 거쳐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법 규정이 확립되기 전에는 향후 비슷한 강제 북송 조치를 하더라도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사실상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재판부의 설명은 한국의 사법체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 밖에 안된다”며 “특히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한국이 ‘국내 법·제도의 미비로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도 무방하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판단을 한 것 자체가 굉장히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관련 법제도 개선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첩보나 제보가 관련 판단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영환 대표는 “이번 판결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자체로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북한이 의도적으로 흘린 역정보가 정치적 판단의 근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흉악범죄 등을 저지른 탈북민에 수사, 기소, 재판 등 국내 사법절차를 적용하도록 법규정이 마련되더라도 사법부의 재판 결과 등에 따른 조치가 이뤄질 뿐이지 강제 북송은 합법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도 가입한 고문방지협약 3조는 “어떤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로서도 당시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할 경우 고문방지협약 3조가 금지하는 강제송환에 해당한다는 판단 가능성을 인지했거나 할 수 있었다”며 해당 조항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위법 행위에 대해 징역형 선고를 유예한 건 다소 자기모순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통일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북한 주민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호의사를 표명한 북한이탈주민은 전부 수용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해 1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을 개정해 범죄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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