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 센터 일자리 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시민이 실업 및 취업 관련 게시판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새해 들어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제2의 IMF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비관론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이 IMF 외환위기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점과 최근에 발생한 신동아건설의 부도 사태가 한보, 벽산, 우방, 풍림 등의 건설사들이 무너졌던 IMF 외환위기 사태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극심한 내수 침체가 우려를 키운다.
몇몇 비슷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거시경제 차원에서 보면 IMF 외환위기 사태 때와 지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인 1997년 12월 중순의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39억 달러에 불과했었다.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까지 수년간 경상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수출이 줄어들면서 이 기간 동안에 기아자동차와 같은 수출업체들이 무너졌던 것이다.
수출이 잘되지 않고 더 나아가 수출업체들이 무너지면서 외환 시장에 유입되는 달러는 줄어드는 반면, 내수용 수입은 그만큼 감소하지 않아 달러 수요가 줄지 않으니 외환보유고는 마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경제 측면에서 보면 2012년 이후의 우리나라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2012년부터 경상수지 흑자폭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여 2015년에는 무려 1000억 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에서 3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면 작년 2024년은 어찌 되었을까? 2024년 11월까지 경상수지 흑자폭은 835억4000만 달러 수준으로 전년 동기(280억7000만 달러) 대비 세 배 가까이 된다. 수입은 늘어나지 않았는데 수출이 상당히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2024년의 경상수지 흑자폭은 2015~2016년에 이어서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2024년 말 기준으로 4156억 달러에 이른다. IMF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도 100배 이상의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G7 국가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보다도 더 많은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IMF 외환위기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급 경제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IMF 외환위기 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현재 모습은 어떤지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13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는 15.1%나 하락했다. 이는 전국 평균이었고 서울은 더욱 심하여 무려 18.2%나 하락하였다.
직전 6년 동안 계속 집값이 올랐던 1997년 10월에 서울에 아파트를 샀던 A 씨는 13개월 동안 집값이 18.2%나 떨어지자 멘붕(?)에 빠졌다. 슬금슬금 오르는 집값에 놀라 서둘러 내 집 마련을 한 본인의 결정이 너무 성급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A 씨에게 집을 판 B 씨의 결정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에 집을 팔았을뿐더러 집을 판 돈을 은행에 예치하여 역사상 최고의 금리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값이 가장 쌌던 1998년 11월 당시로 보면 B 씨의 결정은 성공적이었고 A 씨의 결정은 잘못된 타이밍의 결과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가장 쌌던) 이 시기에도 집을 사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C 씨의 경우도 이 사람들 중 한 명이었는데, 계속 나빠지는 내수 경기로 인해 집값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값이 많이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본인이 기억하는) 과거의 집값에 비하면 아직도 집값은 더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집을 판 B 씨도 마찬가지였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집을 사게 되면 1997년에 있었던 ‘신의 한 수’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더 떨어진 가격에 집을 되산다면 그만큼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B 씨나 C 씨의 바람과는 달리 반등하기 시작했다.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13개월 동안 18.2%나 빠졌던 서울 집값은 그 후 13개월 동안 16.4%나 반등했다.
이때만 해도 집을 팔았던 B 씨는 집을 살 여력이 충분했다. 본인이 판 가격보다 아직도 집값은 4.8%나 낮았고 그동안 은행에 예치했던 원금에 이자도 많이 붙었기 때문에 집을 되산다고 해도 손해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집을 팔았던) B 씨나 (집을 사지 않았던) C 씨는 그때 집을 샀을까? 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등이 시작되는 시그널이 나와도 그것은 집값을 올리려는 세력이 만드는 가짜뉴스라고 치부하거나 경제가 더 나빠지고 있다는 다른 신호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반등이 확실시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 당시의 반등을 ‘깊은 하락 후 기술적으로 반등하는 데드 캣 바운스’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집값이 1998년 11월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집을 사리라”고 결심했을 것이다. 기회는 위기에도 있다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집값이 더 상승하게 되었다. 무주택자 C 씨가 집을 살 능력 밖으로 집값이 올라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러나 집을 팔았던 B 씨는 그때만 해도 집을 살 능력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본인이 판 가격보다 더 올라버린 가격에 집을 산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경제가 살아나면서 집값이 더 오르자 그때는 본인의 자금 수준으로는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부터 B 씨는 강력한 하락론자가 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누가 위너인지를 누구나 안다. 가장 나쁜 시기에 A 씨가 산 서울 아파트는 2025년 1월까지 286%나 상승했다. 실투자금 대비 수익률은 무려 548%나 된다. 더구나 전세를 끼고 집을 샀더라도 중간에 전세금이 인상되면서 투자 원금은 몇 년 후에 이미 모두 회수한 상태이다.
물론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집을 팔았던 B 씨가 만약에 1998년 11월에 집을 샀다면 그가 최고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상승률은 371%, 수익률은 무려 713%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 하락의 공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에 집을 산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IMF 외환위기 때와 같은 기회가 온다면 본인들도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와도 정작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용기와 판단력을 갖춘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부분 섣부르게 투자 타이밍을 잡는다고, 다시 말해 가장 싼 가격에 집을 산다고 벼르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IMF급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그런 사태가 온다면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좋은 투자 기회가 펼쳐지는 것이다. 본인이 그 기회를 잡을 용기와 판단력을 갖추었는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