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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형제 이발사가 8년7개월간 모은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 화제다. 사진은 형님인 이좌수(68)씨. 동생은 이름과 얼굴을 밝히는 걸 한사코 사양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우리 형제는 돈이 없으니까. 싸울 일이 없어요.” 지난 10일 세종시 종촌동에 있는 ‘형제이용원’에서 만난 이발사 이좌수(68)씨가 손님 머리를 다듬고 있는 한 살 아래 동생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둘 다 회색 테이프로 앞 코를 막은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형 이씨는 “청바지는 대전 중앙시장 구제숍에서 5000원, 남방은 3000원에 샀다”며 “그럭저럭 입을 만하다”라고 했다. 동생도 같은 차림이었다.

이 형제는 지난달 13일 사랑의 열매 세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이 단체에 1억원 이상 기부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3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 5월 세종시에 이발소 문을 열며 “10년 이내에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다짐한 지 8년8개월 만이다. 1억원을 모은 시점은 지난해 12월 13일이다. 형제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매월 번 돈의 100만원을 저축해 기부금을 마련했다.

형제이용원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42.9㎡(13평) 규모의 남성 전용 커트 이발소다. 이발 비용은 1만2000원, 염색은 1만8000원이다. 같이 할 경우 2000원을 할인한 2만8000원만 받는다. 이씨는 최근 가게 외벽과 거울 앞에 ‘일억원 기부-고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쓴 A4 용지를 붙였다. 그는 “손님들 덕에 약속한 1억원을 기부할 수 있었다”며 “손님들이 기부에 동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메시지를 적었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는 늦깎이 이발사다. 직장생활과 자영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형 이씨가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53세가 되던 2010년 서울 양천구에 이발소를 차렸다. 이씨는 “이발소 문을 열기 전 3개월 전에 동생도 이발사 자격증을 따 동업하게 됐다”며 “첫 가게는 3개월 만에 폐업했지만, 금천구로 옮기고 나서는 단골도 생기고 먹고 살 만큼 매출이 나왔다”고 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건 “조용한 도시에서 일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형제의 뜻이 통했기 때문이다. 둘은 세종시 대평동에 있는 82.5㎡(25평)짜리 아파트를 각각 구한 뒤 2016년 종촌동에 가게를 열었다. 기부금 마련은 1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영향이 컸다. 이씨는 “명동성당을 다니시던 어머니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이웃과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봉사활동도 하셨다”며 “대학병원에 시신과 장기도 기증하셨던 어머니의 뜻을 따르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형제이용원 벽에는 ‘67억 기부천사 된 남대문 볼펜장수’ ‘이름도 안 밝히고…고려대에 630억 기부’ 등 기사들이 붙어있다. 이씨는 “익명으로 수억원씩 기부한 사람도 많은데 1억원 기부는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지 않냐. 생활비 아껴가면서 기부금을 모았다”고 했다.

형제는 주로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이씨는 “가끔 외식하면 1만원 순댓국이나 뼈다귀해장국이다”라며 웃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평동에서 종촌동까지 5.3㎞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큰 비닐봉지를 들고 1시간~1시간 20분 정도 걸어가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이들 형제는 3~4년 뒤에 세종충남대병원에도 기부할 계획이다. 지역 주민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으려면 거점병원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 대학병원엔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이씨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의 작은 행동이 선한 영향력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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