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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누가회(CMF) 선교팀의 최일국 교수가 지난 9일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에서 쓰러진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최일국 교수 제공


중증외상센터,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등 의학 드라마에서 한 번쯤 들어본 대사와 장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참 한가하네요”라는 의료진의 말에 응급실에 갑자기 위급한 환자가 도착하는 겁니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도 그런 금기어를 말한 뒤 위급한 상황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간호사와 의대생, 한의대생과 함께 태국과 미얀마에서 의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의료선교단체 한국누가회(CMF) 선교팀에게 지난 9일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 귀국길엔 펼쳐진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천안충무병원 응급의료센터의 최일국 교수는 의료팀장으로 CMF팀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출국 게이트에 서 있던 최 교수 등은 쿵 소리를 듣고 처음엔 물건이 떨어졌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놀이터 쪽 미끄럼틀 사이로 어른 다리가 나와 있었습니다. 곧바로 달려가 환자 상태를 확인했고, 맥박이 잡히지 않아 곧바로 5분여간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자발 호흡과 맥박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고, 이후 도착한 공항 의료대에 남성 환자를 인계했다고 합니다. 옆에서 울던 아내와 현지 직원은 한국 선교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하고요. 최 교수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편마비 증상이 보여 뇌출혈이 의심된다고 현지 의료진에 전달했고 돌아오며 그의 온전한 회복을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기적 같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만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의료봉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하며 팀원이 여권을 잃어버려 예약한 항공편을 타지 못한 일이 그랬습니다. 또 ‘자동 심장충격기(AED)를 찾아달라’는 최 교수의 외침을 마침 휴가 중으로 공항에 있던 한국 소방관이 들었고, 노련하게 대처한 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방청 구급지도 의사로도 활동 중인 최 교수는 귀국해 도움을 준 소방관을 찾았고, 그가 용인소방서 이동119안전센터의 은성용 소방교라는 것을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한국누가회(CMF) 선교팀의 최일국(오른쪽) 교수가 지난 9일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에서 쓰러진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뒤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최 교수는 왼쪽 선 남성이 용인소방서 이동119안전센터의 은성용 소방교라는 것을 나중에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최일국 교수 제공


최 교수는 “9일간의 의료봉사를 마치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인데 현지에서 만성질환자를 치료하긴 했지만, 응급학과다운 일을 하진 못했다’는 뼈있는 농담을 했는데 마치 응급실에서 금기어인 ‘한가하다’ 혹은 ‘CPR’이란 말을 제가 해버린 셈이나 다름없었다”고 멋쩍어했습니다.

한국누가회(CMF) 선교팀이 2월 초 태국 치앙마이의 한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최일국 교수 제공


공항에서 한 생명을 살린 것도 멋지지만, 최 교수를 포함한 47명의 의료봉사팀은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태국 치앙마이의 교회와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고, 미얀마 카렌 자치주 의과대학에서 의료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이번 의료 봉사를 현지에서 협력한 신주용 태국 선교사는 “CMF는 1년에 한 번씩 태국에서 의료선교를 펼치며 하나님 사랑을 전하고 있다”며 “선교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공항에서 ‘의료’라는 달란트(재능)로 한 사람을 살렸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더 감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신 선교사는 15년 전부터 치앙마이와 미얀마 카렌 자치주 병원과 학교 등에서 한센병 환자 등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누가회(CMF) 선교팀이 2월 초 태국 치앙마이의 한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최일국 교수 제공


최 교수는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급성 심장정지 상황에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심폐소생술 교육과 관련 장비 보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응급실 금기어’를 내뱉은 의사 선생님에 여권 분실 해프닝, 그리고 소방대원과의 조우는 마치 누군가 계획한 듯 기막힌 타이밍으로 맞아 떨어져 귀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행이 찾아온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이렇듯 여러 마음이 모여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봅니다.

한국누가회(CMF) 선교팀이 2월 초 태국 치앙마이의 한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최일국 교수 제공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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