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세 이어오던 백화점·편의점 실적 정체기
면세점, 수년간 적자 쌓이며 벼랑 끝으로 몰려
대형마트 영업이익률 1%도 안 돼
면세점, 수년간 적자 쌓이며 벼랑 끝으로 몰려
대형마트 영업이익률 1%도 안 돼
[커버스토리 : 불황의 시그널]
사진=연합뉴스
유통업계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경기침체와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은 굳게 닫혔다. 지난해 말 발생한 ‘계엄 쇼크’는 연말연시 대목까지 없애버렸고 설 연휴, 밸런타인데이 등의 수요는 예전만 못하다. 빚을 내서 명품을 산다는 2030세대는 사라졌고 백화점의 오픈런은 사라진 지 오래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잘되는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욜로’를 외쳤던 소비자들은 다시 ‘가성비’에 집중하고 있다. ◆ 잘나가던 백화점·편의점도 어렵다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이어오던 백화점과 편의점도 휘청이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1.6% 감소한 3조2036억원, 영업이익은 19.9% 감소한 4061억원에 그쳤다. 신세계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7조2435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7.8% 줄어든 4055억원이다. 현대백화점은 그나마 제자리걸음이다. 매출은 1.3% 늘어난 2조4346억원, 영업이익은 0.8% 증가한 3589억원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기존 점의 평균 성장률은 0%대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백화점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소비가 집중되는 서울 일부 점포(신세계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는 매출 3조원을 돌파하며 ‘단일 점포 3조 시대’를 열었으나 지방 대다수의 점포는 실적 부진으로 폐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6월 마산점을 폐점했다. 2019년(안영점·부평점) 이후 5년 만의 폐점이었다. 현대백화점 역시 지난해 부산점을 폐점했고 올해 6월에는 디큐브시티점을 폐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전국 매출 하위권에 머무는 롯데백화점 관악점·상인점(대구), 현대백화점 울산 동구점 등은 해마다 매출이 줄어들어 폐점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고객군도 비슷한 양상이다. 2~3년 전만 해도 백화점의 주요 타깃은 ‘2030세대’였다. 이들을 위해 멤버십 제도를 개편하고 VIP 등급을 세분화해 100만원대 구매 고객도 멤버십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또 한남동·압구정 등에서 인기를 끄는 K-디자이너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등 젊은층 확보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소비가 줄어들자 백화점은 다시 VIP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갤러리아백화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VIP 비중은 51%로 절반을 넘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각각 45%, 43%다. 일반 고객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VIP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요즘 강남 백화점을 중심으로 VIP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분위기”라며 “결국 돈 쓰는 고객들은 정해져 있다. 한정된 VIP 인원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일 비수기’도 돌아오고 있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는 주말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의 매출이 평일과 비교하면 최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21년 더현대 서울 등장 이후 백화점은 평일과 주말의 매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맛집 등을 유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불황의 여파로 평일 장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편의점도 어렵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로 지난해 하반기 한때 매출 비중으로 백화점을 추월하기도 했지만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다.
CU 운영사인 BGF리테일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2% 증가한 8조6988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0.6% 감소한 2516억원이다. BGF리테일은 지난해 처음으로 점포 출점 목표치(800~900점)를 하회한 696점 순증에 그쳤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더 안 좋다. 매출은 5.1% 늘어난 8조6661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10.9% 감소한 1946억원에 그쳤다. GS리테일은 지난해 722개점 순증했다. 환율 폭등, 경기 불황의 장기화, 기온 하락 등 비우호적 경영 환경과 고정비(임차료, 물류비, 인건비 등)의 지속적 증가 등의 영향이다.
증권업계는 올해 본격적인 업계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편의점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며 “편의점 산업은 성숙기다. 성장률 둔화는 하위권 사업자의 이탈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은 상위권 사업자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그나마 양반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이익률은 1%도 안 된다. 롯데마트(슈퍼 포함)는 지난해 매출 5조3756억원, 영업이익 46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0.9% 수준이다. 이마트(별도)의 매출은 16조9673억원, 영업이익은 1218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0.7%에 그쳤다. 양사는 퇴직충당부채 등 일회성 비용이 증가한 영향이라고 설명했지만 기존 점 성장률은 0%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4분기 기존 점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면세점은 더 심각하다.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3조2819억원과 69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소폭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신세계디에프(면세점)의 매출은 2조60억원, 영업적자는 359억원이다. 현대면세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2.6% 감소한 9721억원, 영업적자는 288억원이다. 공항점 매출은 부진한 가운데 임차료 부담은 증가한데 따른 결과다. 여기에 희망퇴직 등 일회성 비용도 발생했다. 롯데면세점의 연간 실적은 나오지 않았으나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면세점은 칼을 뽑았다. 올해부터 따이궁(중국인 보따리상)과의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면세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따이궁의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따이궁과의 거래가 중단되면 그만큼 매출도 줄어드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다. 따이궁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40~50%에 육박한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15~20%에 달했지만 면세점의 업황이 악화하면서 따이궁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해마다 이들의 수수료도 올랐다. 결국 롯데면세점은 매출이 줄어들어도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신라와 신세계는 따이궁과의 거래를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추후 롯데면세점의 실적이 개선될 경우 이들도 따이궁과의 거래를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유통업계의 인수합병(M&A)도 멈췄다. 지난해 6월 매물로 나온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아직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국내외 유통기업과 이커머스 플랫폼 등을 꾸준히 접촉하고 있지만 경기 불황과 각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매수 희망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 불황형 소비 확산, 다이소만 잘된다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 더 심화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2025 유통산업 백서’에서 올해 소비시장 트렌드의 키워드 중 하나는 ‘생존(Survival)’이다. 국제 경제와 소비시장 정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정된 소비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의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불황형 소비(Economical consumption) 확산’을 꼽았다. 경기 둔화와 불확실성 고조로 가격을 중시하는 불황형 소비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전망이다. 소득 수준은 수년째 답보 상태인 반면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비필수재 소비는 줄이고 식품·생필품 등 필요한 곳에만 지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초저가 매장 다이오는 예외다. 다이소의 지난해 매출은 사상 최대인 4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다이소는 면세점과 뷰티 회사의 고객까지 끌어들인 결과다.
다이소는 매년 매출 앞자리가 바뀌고 있다. 2022년 매출 2조9458억원에서 이듬해 3조4605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393억원에서 2617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는 매출 4조원, 영업이익 3000억원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이소의 전국 매장 수는 △2020년 1339개 △2021년 1390개 △2022년 1442개 △2023년 1519개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다이소의 영향력은 복합쇼핑몰의 전략에서 드러난다. 마트나 슈퍼 등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키 테넌트(핵심 매장)로 주목받으면서 입점 매장 수는 2020년 253개에서 2023년 290개점으로 늘어났다.
뷔페형 패밀리레스토랑인 애슐리퀸즈가 잘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애슐리퀸즈는 코로나 여파로 매장 수가 50여 개까지 급감했지만 지난해부터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현재 애슐리퀸즈의 매장 수는 100여 개에 달한다. 회사는 올해 말까지 매장을 12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애슐리퀸즈의 매출은 2023년 3800억원에서 지난해 5000억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