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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생, 올해 64세, 나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
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한 나는 결국 첫아이를 낳고 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 달 사정상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에 우유·주스 등을 배달하며 생업에 뛰어들었다.

작은 회사에 재취업한 남편과 맞벌이하며 1원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 화장품 가게를 차렸다. 둘째도 낳고 작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자 나는 2년제인 백석대(현 백석예술대) 음대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따서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학원은 입소문을 타면서 금세 수강생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남편 회사가 사라져버렸고, 집 담보로 무리하게 확장한 학원엔 수강생이 뚝 끊겼다. 우리 가족은 학원은 물론 겨우 마련했던 아파트까지 날리고 빚더미에 앉았다.

이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입주 청소다. 이른 아침 직업소개소에 가서 “오늘 입주 청소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순서대로 봉고차에 실려 청소 현장에 도착한다. 대부분 이사 나가 엉망이 된 빈집, 폐가 수준의 낡은 집이다. 이런 곳을 하루에 서너 곳씩 쓸고 닦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임정열씨. 김종호 기자

무너져내리는 몸보다 더 힘든 건 바닥을 친 자존감이었다. 무릎으로 박박 기면서 온갖 먼지를 닦아낸 뒤 잠깐 봉지 커피라도 종이컵에 타 마시려 하면 관리인이 “빨리 차에 타라. 커피는 이동 중에 차에서 마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커피 한 모금 마실 짬이 허락되지 않는 삶이었다. 집에 돌아와 먼지 뒤집어쓴 옷을 벗으면, 종일 얼마나 기어 다녔던지 무릎에 바지 솔기를 따라 피딱지가 맺혀 있었다.

한창 공부할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미 40대 중반이 된 우리 부부에겐 자금도, 젊음도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공부뿐이었다.

지금, 나는 현역 엔지니어이자 억대 연봉자다. 내겐 정년도 은퇴도 없다. 입에 풀칠도 힘들었던 입주 청소 아줌마의 믿기지 않는 변신이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느냐고?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했냐고? 이제부터 알려드릴 테니 따라와 보시라.
‘마처세대’를 아시나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로, 1960년대 생을 뜻합니다. 이전 세대보다 돌봄 의무가 길었던 이들이 이제 은퇴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노후 자금을 충분히 모으지 못한 이들에게 최고의 노후 준비는 ‘은퇴 없는 삶’ ‘평생 일자리’가 아닐까요.
40대 중반, 빚더미에 앉아 자격증 따기에 도전해 ‘은퇴 없는 평생 일자리’ 만들기에 성공한 사연을 소개합니다. 60대인 그에겐 정년도, 은퇴도 없습니다. 갱년기의 고통 속에 공부에 도전한 이유, 중년의 공부 노하우에 대한 생생한 조언도 들어보시죠.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명함에 찍힌 세 개의 자격증 " 소방기술사·건축기계설비기술사·소방시설관리사…. "
내 명함 적힌 자격증 목록이다. 사람들은 ‘임정열’이란 내 이름보다 이 자격증들을 먼저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실 국내에서 분야별 최고 엔지니어를 의미하는 기술사 자격증 2개에, 기술사에 견줄 만한 상위 자격증인 시설관리사까지 보유한 사람은 흔치 않다.

내가 처음부터 기술사가 되겠다 결심한 건 아니다. 특히 소방 분야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

생계를 위해 본격적으로 자격증 준비를 시작한 건 2006년 하반기, 45세 때다. 정보가 없으니, 일단 은퇴 준비자 대다수가 시작한다는 공인중개사부터 준비했다. 수업을 듣는데 강사가 수차례 “아파트 발코니 확장을 하면 구조적으로 화재에 취약해지는데 너무 쉽게들 한다. 소방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소방? 그게 뭔데 이렇게 강조를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시험 운이 따랐는지 공인중개사는 준비 3개월 만에 합격했다. 기쁜 마음은 가슴 한쪽에 젖혀두고, 나는 남편과 함께 가까운 소방학원을 찾았다. 원장은 한국 소방 분야에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면서 소방기계기사·소방전기기사 자격증을 추천했다. 기사 시험은 학사 학위가 있어야 응시 가능한데, 내 경우는 입주 청소를 하면서 틈틈이 독학사 과정으로 가정학과를 이수해 뒀기에 가능했다. 기사가 된 뒤 관련 분야에서 4년 경력을 쌓으면 소방기술사 응시 자격도 생긴다고 했다.

" 기술사! "
나는 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내 인생 뒤집기는 여기다’ 싶었다. 공고 출신인 나는 기술사가 엔지니어 분야 최고 등급의 국가기술 자격증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당 분야에서 박사급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그 순간 “기술사를 위해 뛰어보자”고 결심했다.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소방기사 자격증 2개, 1년 만에 딴 비결
상담을 마치자마자 남편과 서점으로 가서 소방기계기사와 소방전기기사 교재를 구매했다. 돈벌이와 가사를 병행하며 공부하다 보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시험까지 교재를 한 권당 10회 독 이상 마쳤다. 시험 준비를 시작한 2007년, 바로 그해에 기사 시험 두 개에 모두 합격해 쌍(雙) 기사가 됐다.

응시하는 시험마다 척척 붙자, 사람들은 “보통 머리가 아니다” “시험 운이 좋다”고들 추켜세웠다. 나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시험 공부의 요령은 있는 것 같다.

(계속)
그 이후 50세에 소방시설관리사 합격을 시작으로 소방기술사도 합격했습니다. 회사 취업 후엔 건축기계설비관리사 자격증까지 땄습니다.
“기술사 2개에 관리사까지 딴 사람은 처음 본다”
40대 중반까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입주 청소를 하던 그가 10년 만에 모두가 신기해할 만큼 희소한 전문가가 된 거죠.
“나이가 들면 머리도 굳게 마련인데 대체 어떻게 공부했냐”고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의대 다닌 큰아들도 뜯어말렸던 엄마의 비결, 아래 링크를 통해 더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2862



월 80만원에 해외 한달산다…은퇴자들의 여행·골프 성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5319

밥 훔쳐먹다 퇴학당한 소년, 23개국 도는 황금노년 비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3502

58년생 지갑 턴 ‘부조금 지옥’…은퇴거지 막을 경조사 대처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91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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