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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의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사업 수주전의 최종 승자 발표가 임박했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오는 3월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을 결정한다.

이 자리에서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및 동시 건조 등 3개 방식 중 하나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의 ‘특수선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KDDX 수주를 위해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KDDX 사업 개요. 그래픽=박명규 기자


KDDX는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으로 사업비로만 총 7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KDDX는 소나와 레이더를 비롯해 각종 무장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되는 첫 국산 구축함으로 국방과 방산 수출에서 중요한 사업이다. 함정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로 나눠 진행된다.

KDDX의 개념설계는 2012년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행했다. 방사청은 지난해 7월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법적 공방까지 벌이며 경쟁이 과열되자 최종 선택을 미뤄왔다. 두 업체 간 갈등 격화로 소송전이 이어지며 방사청이 관련 수사 결과 발표 이후로 일정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KDDX 사업자 선정 절차가 당초 예정보다 8개월 이상 지연된 만큼 전력화가 늦어질 가능성에 안보 공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KDDX 건조 능력을 갖춘 업체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모두 지정하면서 공은 다시 방사청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가상 시운전 모습. 사진=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KDDX 갈등 타임라인. 그래픽=박명규 기자


법정 공방 벌여온 K조선 ‘투톱’
10조 호주 호위함 사업 동반 탈락


이례적으로 복수업체에 사업 참여 자격이 인정되면서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관례에 따르면 군함은 선도함(1번함)과 나머지 양산함의 건조업체가 별도로 지정되고 선도함의 경우 건조 직전 단계인 기본설계를 가져간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건조를 맡는다. 나머지 양산함은 경쟁입찰 등으로 건조업체가 결정된다.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두고 양측의 의견은 뚜렷하게 갈린다.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대중공업은 관례대로 선도함의 수의계약을 자사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KDDX 관련 과거 군사기밀 유출 혐의 등을 문제 삼아 경쟁입찰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공동개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공동개발의 경우 시간이 더 걸리고 비용 증가와 책임 소재 등의 리스크가 있다. 최근 신현승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밝히며 “공동설계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많다”고 밝힌 만큼 공동개발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KDDX 사업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갈등의 발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주한 KDDX 개념설계도 등 군사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회사 내부 서버를 통해 공유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3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방사청은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의 제재 수위를 ‘행정지도’로 의결,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최대 5년간 방사청의 사업에 입찰할 수 없는 ‘부정당업체’ 지정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보안 규정에 따라 방사청 사업 입찰 때 부과하는 보안 감점(-1.8점)은 2025년 11월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HD현대중공업이 사업 입찰 참가 제한 제재를 피하자 한화오션은 지난해 3월 군사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해 처벌해달라고 경찰청에 고발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 측도 한화오션을 허위 사실 적시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즉각 고소하며 양사의 갈등이 격화됐다.

그러던 중 10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입찰 과정에서 양사가 동반 탈락한 것을 계기로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보다 뛰어난 가격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경쟁에서 밀린 것을 두고 양사 간 법적 분쟁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양사는 상호 고발을 전격 취하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 업체 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KDDX 사업을 넘어 총 규모 80조원에 이르는 캐나다(70조원)·폴란드(3조원)·필리핀(2조원) 잠수함 사업 등 향후 수주를 위해서는 ‘원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앞으로 해양방산 수주전에서 각각 수상함과 잠수함으로 분야를 나눠 수출 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 2기를 맞아 한국 조선업의 수혜 기대감이 커지면서 함정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원팀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K조선 원팀을 구성해 올해 캐나다, 폴란드 잠수함 사업 수주에 나설 계획이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2024년 2월 27일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방문한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에게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와 건조 중인 함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HD현대


국익 앞에 전격 화해, 원팀 합의
K함정, 트럼프 수혜 기대감 커져


KDDX 수주전 갈등은 사실상 조선해양 방산업계 라이벌인 HD현대와 한화그룹의 오너 3세 간 대리전이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올해 세계 신조선 발주량이 지난해 대비 감소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특수선과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차기 총수 입지를 다지고 있는 두 사람에게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실적은 경영 능력의 시험대이며 KDDX 수주는 트럼프 2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해진 사업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해양 굴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조선업계에 협력을 요청했고 최근 미국 의회는 그동안 금지했던 외국업체의 자국 군함 건조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 해안 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자국 함정 건조를 맡길 수 있게 돼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4년 10월 24일 스티븐 쾰러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사령관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월리시라'호 정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국내 특수선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함정 시장 수요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각국의 군비 증강 추세,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요충지인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각국의 노후 함정 교체와 해군 현대화 흐름 등이 맞물려 글로벌 함정 시장이 커지고 있다.

영국 군사정보 전문업체 제인스에 따르면 세계 특수선 시장은 향후 10년간 1조 달러(약 145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조선업계가 집중 공략 중인 잠수함과 수상함 시장 규모는 2430억 달러(약 35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방산 수출에선 실제 한국군이 사용하고 있는지 안정성과 품질을 검증할 수 있는 트랙 레코드(실증 기록)를 쌓는 게 중요하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KDDX 수주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는 수주 실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특수선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힘 주최 토론회에서도 K조선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국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용원 의원은 “트럼프 2기는 우리 함정 업계가 ‘별의 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더없이 절실한 기회다. 미국은 우리 군함과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능력, 함정 MRO 분야에 대해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일준 의원은 “방위사업청을 중심으로 각 방산 회사에서 ‘원팀’을 구성해 나아간다면 ‘K조선’, ‘K함정’이 오대양을 누비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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