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씻자 제품. LG생활건강 제공
‘젠더 갈등’에 기업들이 떨고 있다. 온라인을 타고 확산되는 ‘남성·여성 혐오’ 논란에 낙인 찍힌 기업이 쉽사리 불매운동 타깃이 되는가 하면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도 벌어진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격화된 성별 세력화가 산업계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풋샴푸 브랜드 ‘발을 씻자’가 젠더 이슈에 휩싸였다. LG생활건강은 전날 X(구 트위터) 팔로워 27만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 A씨와 ‘발을씻자’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과거 A씨의 발언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지며 문제가 됐다.
일부 남성 네티즌들은 “키 160대 남자들은 인간적으로 여소(여자 소개) 받지 맙시다”라는 A씨의 발언에 LG생활건강 불매운동을 벌였다. LG생활건강은 A씨와 계약 해지 및 해당 광고를 즉각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에 여초 커뮤니티 역시 반발했다. 일부 남성들의 의견만을 반영해 광고를 삭제했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해 네이버 웹툰의 여성혐오 논란 당시, “LG생활건강의 대표 식기 세제 브랜드인 ‘퐁퐁’이 웹툰에 여성을 혐오하는 내용으로 허락 없이 악용됐다”는 문의에 LG생활건강 측이 답변하지 않은 사실도 다시 꺼내들며 이중적인 민원 처리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네이버의 웹툰 작품 ‘이세계 퐁퐁남’은 여성혐오적 표현을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미온적 대응에 이탈이 대거 발생했다. ‘퐁퐁남’은 연애 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이 마치 더러운 식기를 설거지하는 처지라는 뜻이 담긴 온라인 혐오 표현이다. 네이버웹툰은 뒤늦게 사과 입장을 밝히고 해당 웹툰을 공모전에서 최종 탈락시켰다.
결국 LG생활건강은 겹불매에 휘말리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발을 씻자’ X 계정의 팔로워 수는 지난 12일 기준 약 7만명에서 4만9000명대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LG생활건강 불매운동’이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도 했다.
2021년 GS25 남혐논란 포스터. GS25 제공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촉발된 젠더 갈등은 기업들을 압박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집게손’ 이미지가 담긴 기업의 홍보물을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방식이다. 집게 손가락 이미지는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주장에 남성혐오 검증 잣대가 됐다. 과거 GS25는 포스터에 비슷한 이미지가 담겨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고 담당자는 징계를 받았다. 같은 이유로 논란이 된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는 뒤늦게 남성이 제작한 것으로 밝혀져 의혹을 벗었지만, 이미 확증편향된 소비자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뒤였다.
그 외에도 BBQ, 넥슨, 카카오 등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국방부도 남성혐오 이미지 또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논란에 잇달아 고개를 숙였다. 2021년 무신사 창업자인 조만호 대표는 여성에게만 쿠폰을 제공하는 등 남혐 논란에 휘말리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기업의 남성·여성 혐오에 집중하기보다는 근본적인 국내의 젠더 갈등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젠더 갈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콘텐츠를 검토하고 있다”며 “한 번의 부주의로 인해 기업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