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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용현 | 논설위원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빼들고 대로변에서 시민들을 위협하는 양아치가 있다. 경찰이 먼저 할 일은? 칼부터 빼앗는 것이다.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놔두라’거나 ‘절차에 따라 압수영장부터 발부받은 뒤 칼을 빼앗으라’고 주장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저런 현행범도 형사처벌하기까지는 긴 재판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당장은 그 손에서 칼부터 빼앗아야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12·3 내란은 대통령 윤석열이 대통령 권한을 흉기처럼 휘두른 것이다. 국군통수권과 계엄선포권이라는 대통령 권한을 마치 양아치 손에 들린 칼처럼 남용했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를 이용해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윤석열 내란 세력이 쥐고 있는 흉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노상원 수첩’은 끔찍하게 일깨웠다. “여의도 30~50명”, “언론 쪽 100~200(명)”, “어용 판사” 등 500여명을 1차 대상으로 한 ‘수거 계획’은 10차까지 언급돼 있다. 수거된 이들을 “막사 내 잠자리 폭발물 사용”, “음식물, 급수, 화학약품”, 선박에 실어 “적정한 곳에서 폭파” 등 집단살해하는 방법도 적혀 있다. 이것이 노상원씨(전 정보사령관) 혼자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 더 무섭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은 계엄 전 22차례나 노씨를 공관에 불러들였다. 노씨는 계엄 당시 정보사에 ‘사격·폭파를 잘하는 요원을 추천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우리 눈앞에 저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졌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야당과 비판세력을 제거한 뒤 3선 개헌을 하고 후계자도 내세우려는 계획까지 세웠으니 지옥도는 수십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이래도 윤석열에게 대통령 권한이라는 칼을 다시 쥐여줄 수 있겠나. 탄핵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함으로써 그 손에 들린 흉기부터 빼앗는 절차다. 형사처벌을 위한 재판과는 별도의 절차다. 윤석열을 사형에 처할지, 무기징역에 처할지 판단하는 형사재판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재판을 열어도 된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 더 두는 게 옳으냐를 판단할 뿐이다. 그런데 윤석열과 국민의힘, 일부 보수언론은 탄핵심판을 형사재판과 혼동시키며 헌재를 흠집내고 있다. 증인·증거 채택, 신문 방식 등에 형사재판처럼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렇게 했다가는 탄핵심판은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주장은, 비유하면, 양아치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기 위해 압수영장을 받아 오라는 것과 같다.

탄핵심판의 이런 성격은 외국의 탄핵 제도를 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의 탄핵 제도는 사법부의 재판 절차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원 의회가 재적 과반수의 의결로 탄핵소추하고, 상원 의회가 3분의 2 이상 의결로 파면을 결정한다. 프랑스에서도 상·하 양원 의원 전원이 ‘최고법원’을 구성해 3분의 2 이상 의결로 대통령을 파면한다. 우리나라 헌재와 유사한 연방대법원(미국)과 헌법위원회(프랑스)조차 대통령 탄핵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탄핵은 사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는 특유의 정치적 과정”(미국 의회의 헌법 주석)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서 탄핵심판을 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에 맡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탄핵심판은 3심제의 법원 재판과 달리 단심제다. 신속한 결정을 위한 것이다. 또 탄핵심판 진행 방식은 헌법재판소법에 근거해 8명의 재판관이 합의해 결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택한 정형식 재판관,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재판관도 동의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헌재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헌정 부정이다. 박근혜 탄핵심판 때는 17차례 변론을 진행했는데 윤석열은 10차례에 그치니 졸속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박근혜 탄핵심판은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최순실 관련 회사 특혜, 세월호 참사 구조의무 위반, 언론 탄압, 사인에게 국정을 맡긴 행위 등 수많은 탄핵 사유를 따져야 했다. 반면 윤석열 탄핵 사유는 너무나 명백하고 단순하다. 헌법상 요건을 어긴 비상계엄 선포 하나만으로도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장면은 온 국민이 목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헌재에 시비 거는 주장이 언론사 사설과 현직 검사 입에서까지 나온다. 개탄스럽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먼저 답해야 한다. 당신들은 윤석열에게 다시 칼을 쥐여주자는 것인가, 노상원 수첩 속 지옥도가 현실에서 펼쳐지기를 정녕 원하는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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