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신임 국방부 장관이 2024년 9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한 뒤 여당에만 인사를 하고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복 입었다고 할 얘기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더 X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0월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 국방부 장관 임명 한 달을 막 지난 김용현 장관이 야당 의원 질의에 욕설을 섞어 답했다. 야당에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안하무인 답변 태도를 지적하자, 충암고 후배인 여 사령관을 감싸며 한 말이었다. 김 장관은 성질을 못 이긴 듯 감정이 묻어난 말투로 욕설을 뇌까렸다. ‘X신’ 발언은 생중계됐고, 국회 회의록에 ‘박제’됐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김용현·여인형을 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국방부 장관 교체와 경호처장 공관 모임 등이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준비를 위한 것은 아닌지 집중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여인형 사령관은 “굳이 대답할 필요는 못 느낀다”고 야당 의원 질의를 깎아내렸다. 국감 자료 미제출을 지적하자 야당 의원 발언을 계속 끊으며 본인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다. 말을 멈추라는 지적에 “왜 고함을 치느냐”며 오히려 눈을 부라렸다. 윤 대통령 최측근 실세로 자리 잡은 김용현은 물론, 현역 군 장성인 여인형의 도를 넘는 고압적 자세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문민통제를 받는 군 지휘부가 대놓고 국회를 무시한 장면은 두 달 뒤 12·3 내란사태를 예고하는 어떤 징후였다.
내란죄로 기소된 김용현·여인형 등의 공소장을 보면, 국회에서 안하무인 태도를 보이던 때 이미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국회 봉쇄·해산 계획 등은 무르익은 상태였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인 두 사람은 반년에 걸친 대통령과의 비밀회동을 통해 비상계엄→정치활동 금지→여야 정치인 체포·구금 등 친위 쿠데타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22대 총선 직전이던 지난해 4월 초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여인형 사령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을 불러 ‘비상대권’을 언급하며 ‘군이 나서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총선 직후인 4월 중순에는 김용현이 경호처장 공관 모임을 열었다. 여인형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과 모임을 갖고 ‘노동계·언론계 등의 반국가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5∼6월 대통령 안가로 김용현·여인형을 불러 또다시 ‘비상대권’ ‘비상조치’를 언급했다. 특히 6월17일 김용현·여인형·곽종근·이진우 등이 참석한 대통령 안가 모임에서, 김용현은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여인형 등을 추켜 올렸다. 윤 대통령은 8월 초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김용현·여인형을 또 불러 ‘비상조치권’을 언급했다.
“X신” “답할 필요 없다”며 국회를 군홧발 밑에 두는 행태를 보이기 일주일 전인 10월1일 저녁, 김용현·여인형·곽종근·이진우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불려갔다. 이날 국군의날 시가행진에 참석했던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다시 ‘비상대권’을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보직 신고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용현은 지난해 9월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임 국무위원 인사를 했다. 박수 치는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쪽에는 인사 하지 않고 퇴장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김 장관을 불렀다. “기왕이면 야당에도 인사하시라.” 김 장관은 이를 무시하고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우 의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경고했다. “여기는 국회의사당이고 여기 앉아있는 300분의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옮지 않은 태도다.”
내란 혐의 공소장 내용을 검토한 검찰 출신 법조인은 16일 “김용현·여인형이 계엄 전 국회에서 보인 행태는 최고 권력자의 신임을 잔뜩 받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행태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윤 대통령과 비밀 술자리를 가지며 계엄을 모의했고, 이런 자리가 반복되면서 계엄 이후에는 자신들이 대한민국 권력 최상층부를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노상원 수첩에는 심지어 정치인을 사살하려 했다는 메모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 의원 질의에 속으로는 ‘계엄 뒤 어떻게 될지 보자’며 비웃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섬뜩하다. 검찰 공소장에 적힌 비상계엄의 구체적 모의·실행 시기를 훨씬 더 앞당겨 다시 써야 한다. 내란 특검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