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아주대병원·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 소생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인기로 외상센터 관심 급증
워라밸 문제로 '외상학' 기피과 전락... 인력난 심화
전담 병상도 부족하지만 병원 측 '적자' 문제로 기피
전문가 "수가 인상·인력양성 시스템 구축이 해결책"
1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1층 소생실에 실려온 한 환자가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오세운 기자


'10대 남성, 4층 추락, 턱 열상, 의식 명료, 5분 후 구급대 도착.'

12일 오후 1시 30분. 단체 카카오톡 방에 알람이 뜨자 모두가 분주해졌다. 중증외상환자가 소방 구급대를 통해 곧 도착한다는 내용이 전달되면서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1층 소생실 간호사들은 순식간에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나 의료장비들을 마련하고 수술대를 정비했다.

10분 뒤 환자가 도착했다. 간호사 7명과 외상외과 전문의 2명이 달라 붙었다. 추락사고로 턱이 심하게 찢어지고 양쪽 대퇴골부터 무릎까지가 모두 골절됐다. 의료진이 엑스레이(X-ray)를 요청하자 소생실 안쪽에 있는 영상팀이 촬영, 판독을 거쳐 실시간으로 처치 의료진과 정보를 공유했다. 이후 외상 전문의는 마취제가 투입된 환자에게 수기(手技)로 뼈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턱 상처 세척과 항생제 투여를 마치고 환자를 소생실 바로 옆 외상환자 전용 컴퓨터단층촬영(CT)실로 옮겼다. 이 모든 게 사고가 발생한 지 한 시간 안에 완료됐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환자가 도착했다. 50대 남성 트럭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상태는 좋지 않았다. 반(半)혼수 상태(Semi-coma)에다가 양쪽 어깨가 모두 골절됐다. 청진 결과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외상외과 전문의는 곧바로 기흉을 의심하고 엑스레이 결과를 확인했다. 역시 기흉이었다. 숨을 내쉴 때 흉강 속의 공기가 배출되지 못해 흉강 속 압력이 점점 높아지는 상태인 '긴장성 기흉'이 발생한 것이다. 환자는 폐 한쪽이 찌그러지면서 반대쪽 폐와 심장까지 누르게 돼 심장박동이 꺼져가고 있었다.

의료진은 바로 가슴을 절개한 후 흉관을 삽입했다. 인공호흡용으로 기도삽관도 시도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집도의 최항준 외상외과 교수는 "긴장성 기흉은 잠재적으로 생명에 치명적인 질환이다. 초응급 상태로, 조금만 늦었어도 환자는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CT 촬영 결과 환자는 뇌 전반적으로 신경이 손상을 입은 것으로 의심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로 관심받은 '권역외상센터'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추영우. 넷플릭스 제공


생과 사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이곳은 중증외상 분야를 전국적으로 알린 이국종 당시 외상외과 교수가 몸담았던 아주대 권역외상센터다. 이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는 최근 크게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의 실제 모델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실제 외상센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 외상환자에게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 등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장비·인력을 갖춘 외상전용 치료기관
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환이나 내과적 증세를 보이는 환자 등 모든 종류의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실과는 구별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 거점센터가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뿐이었기 때문에 설립 필요성이 대두됐고, 2012년 5개 기관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권역외상센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른 법정 명칭으로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지정된다. 중증외상센터는 법정명칭은 아니지만 권역외상센터의 기능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워라밸 없는 외상외과... 신규 의사 유입이 없다

5일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 본관 헤리티지 홀 외벽에 병원 연혁과 함께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내 최초로 지정된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개소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정다빈 기자


권역외상센터가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이유는 드라마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시기 고대구로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가 운영 11년 만에 운영 중단 위기에 처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외상환자들을 치료할 전문의를 육성하는 수련센터는 현재 전국에 총 27곳이 있는데, 이 중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는 고대구로병원과 길병원, 아주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등 4곳이다.

고대구로병원 수련센터는 매년 2명의 전문의를 배출하며 그동안 약 20명의 중증 외상 전문의를 양성해 왔지만, 최근 정부의 예산지원이 중단돼 논란이 됐다. 다행히 서울시가 예산지원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급한 불은 끈 상태다.

그러나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센터가 있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 중증 외상 전문의는 외과 전문의를 딴 뒤 2년여간 추가 수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국가 지원으로 외상학 수련을 받은 의사는 2020년 7명에서 지난해엔 4명에 그쳤다
. 또 올해 배출된 외상학 세부전문의는 13명으로 지난해보다 7명 감소했다.
27곳의 수련센터를 고려하면 한 곳당 1명도 길러내지 못한 셈이다.


의사들이 외상학과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부재가 가장 크다.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응급실의 '심화판'이라 할 수 있는 권역외상센터는 항시 긴장 상태를 늦출 수 없다. 경기도 남부 권역 인구 1,000만 명을 책임지는 아주대 외상센터에는 하루 평균 10~20명의 환자가 병원에 몰려든다. 서울 내 유일한 권역외상센터인 국립중앙의료원의 윤석화 센터장은 "
2, 3일 동안 집에 못 가고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연락이 오면 새벽에도 튀어나가야 하기에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한다. (이 일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 설명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아주대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권역센터는 센터 최소 인력을 뽑는 데도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의료원은 외상센터 내 정형외과 전담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으나 8개월째 지원이 없다가 이번에 겨우 1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그나마 있던 센터 내 임상강사(펠로) 2명도 힘들다고 최근 사직 의사를 밝힌 상태다.

적자 보는 외상센터에 병원은 무관심

1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본관 3층의 외상중환자실. 20개 병상 중 16개 병상이 차 있다. 오세운 기자


병상 부족도 문제다. 정경원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은
"센터에 100개의 전담 병상이 있는데 환자가 많을 때는 130명 정도 입원해 센터 밖 건물에 입원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고 설명했다. 11일 방문한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외상센터의 외상중환자실도 20개 병상 중 16개가 차 있어 언제든지 포화 상태에 놓일 수 있었다.

중증외상환자 수도 앞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중증외상 환자는 2015년 6,250명부터 점차 증가하여 9,115명(2019년)을 기록한 후 소폭 감소해 8,000명대를 유지하다가 2023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선 외상 병상엔 관심이 없다. 환자를 받을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인 데다 운영의 핵심인 외상외과 인력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아서다. 실제로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은 과거 권역외상센터 선정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최고 의료기관이 모인 서울은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권역별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 1위(20.4%)의 불명예를 안았다.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은 외상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 중 적절한 시간 내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돼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이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환자의 비율을 의미한다.

외상센터가 실제로 목숨이 촌각에 달린 중증외상환자의 치명률을 낮췄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운영·유지에 보다 힘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5년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중증외상환자는 점차 늘어나 2015년 314명(5.0%)에서 2023년 3,536명(43.2%)까지 증가했다. 동시에
권역외상센터의 치명률은 2015년 59.9%에서 2023년 37.2%로 감소해 중증외상환자 이송기관들 중 가장 낮아졌다
. 외상센터 제도가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중증외상환자 사망률을 크게 낮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권역별 예방가능한 외상사망률 추이. 권역외상센터 설립 후 전반적으로 하락했지만 2017년과 2019년 두 해 모두 서울 권역이 가장 높다.


수가 올리고, 인재양성 시스템 갖춰야



그렇다면 의사들도, 병원들도 모두 꺼려하는 권역외상센터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가장 먼저 '
수가 인상
'이 언급된다. 조항주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외상센터의 근무강도와 응급도를 고려해 6배 수준의 수가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조 센터장은 "초응급수술의 경우 계산해보면 정규 수술에 비해 5배의 인력이 드는데, 정규 수술과 응급수술의 수가 차이는 현재 그렇게 크지 않다"며 "해당 비율만큼 수가 인상을 해야 병원 입장에서도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 총무이사도 "외상전담인력에게 당직수당이나 위험수당 같은 급여 외 보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증외상 환자에 대한 치료나 처치에 일반적인 환자에 부여되는 수가와 다른 '공공정책수가'를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재정적 지원 외에
인재양성 시스템 구축
도 필요하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외상전문의 같은 긴급한 의료영역 인력은 별도의 양성경로가 병립돼야 충분한 수의 전문인력이 확보된다"라며 "학생으로 선발할 때부터 국비지원과 의무복무를 전제로 교육을 받게 하고, 전공의 수련과정에서도 수준 높은 전문성 확보를 위한 국가적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중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봤느냐는 질문에 허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국종 선생님과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백강혁 같은 영웅적 인물로 돌아가는 외상 센터는 건강하지 못한 센터예요. 이들이 주 2회 당직이라면 당직 때 다친 사람은 살고 나머지는 죽는 거잖아요. 외상시스템은 언제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치료를 제공해야 의미가 있어요. 결국 환자는 히어로가 살리는 게 아니고 시스템이 살리는 겁니다."


12일 오전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집중치료실에서 정경원 센터장이 환자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오세운 기자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961 "정치 복귀? 돌아갈 생각 없다"…류호정, 최연소 국회의원서 '목수' 된 사연 랭크뉴스 2025.02.18
43960 도박중독에 사라진 25년… “주변 도움·흥미 돌려야 탈출” 랭크뉴스 2025.02.18
43959 "구글, 멕시코만 명칭 돌려놔라" 멕시코 대통령, 제소 전 통첩 랭크뉴스 2025.02.18
43958 500만 원 '비즈니스'를 150만 원 '이코노미'로…아시아나항공 '황당 실수' 랭크뉴스 2025.02.18
43957 탄핵 남발 경고? 명태균 의혹 방어?… 계엄 원인 여전히 물음표 랭크뉴스 2025.02.18
43956 젤렌스키, 에르도안과 18일 회담… 우크라이나 종전안 논의 랭크뉴스 2025.02.18
43955 새신랑의 안타까운 죽음…직장 괴롭힘 장수농협 직원 4명 기소 랭크뉴스 2025.02.18
43954 다시 찾아온 한파… 오늘부터 영하 10도 강추위 랭크뉴스 2025.02.18
43953 "6·25는 미국이 일으켰다"…'尹 탄핵 찬성' 황현필 과거 발언 보니 랭크뉴스 2025.02.18
43952 방미 통상차관보, 韓美 관세협의 "양국 모두에 이익되게 하겠다" 랭크뉴스 2025.02.18
43951 아들에게 흉기 휘둘러 숨지게 한 60대 긴급체포 랭크뉴스 2025.02.18
43950 ‘윤석열 방어권’ 보장 결정문에 담긴 소수의견···“인권위가 권력자 비호하는 수단돼서는 안 돼” 랭크뉴스 2025.02.18
43949 러 "사우디 회담 참석… 우크라 영토 양보 안 해" 랭크뉴스 2025.02.18
43948 이재명 "상속세, 18억까지 면제"‥의제 선점 당한 국힘, 속내 '복잡' 랭크뉴스 2025.02.18
43947 이재명 “민주당은 경제정당”…미래성장 입법은 뒷전 랭크뉴스 2025.02.18
43946 일제 ‘위안부 만행’ 알린 길원옥 할머니 하늘로 랭크뉴스 2025.02.18
43945 커피값 안 낸 '먹튀남' 이 말 남기고 튀었다…"천장서 만원 떨어질 것" 랭크뉴스 2025.02.18
43944 [사설] 연예인에게 더 가혹한 무관용 '나락 문화' 반성해야 랭크뉴스 2025.02.18
43943 권영세 “계엄 옳지 않다”면서 “국회 해제 표결엔 불참했을 것” 랭크뉴스 2025.02.18
43942 "서울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짐 싼 사람들, 다 어디로 가나 봤더니 랭크뉴스 202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