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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나만의 ‘아히요’ 조합을 찾아서
| 정연주 푸드 에디터



새우·버섯·굴·문어·관자

원하는 식재료 맘껏 골라

올리브유에 ‘보글보글’


마늘향 잘 배게 하려면

최소 30분 따뜻하게 가열


온도 천천히 오르내리는

두꺼운 무쇠팬 쓰면 좋아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완급 조절이다. 달려야 할 때 달리고, 걸어야 할 때 걷는 것이다. 젊을 때는 의욕이 넘치지만 요령은 없어서 지금 돌아보면 한없이 뛸 준비만 되어 있었다. 지금인가? 싶으면 전력으로 질주하고, 아닌가? 싶으면 급브레이크를 걸듯이 멈추고 고민하며 그 자리를 맴돌았다. 마치 섬세한 기어 조절이 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았다고나 할까.

당시에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돌이켜보면 이것 때문이다.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여러 번 검토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내 생각에는 그냥 착착 진행하면 될 것 같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따져봐야 하는 절차가 많을 때도 있다.

그때는 몰랐다. 무조건 빨리 가야 하는 게 좋은 것도, 천천히 가는 게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 성격이 어지간히 급한 편이라는 걸.

요즘 유행하는 러닝크루 모임에 가면 안정적인 속도로 뛸 수 있게 도와주는 페이스 메이커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100m 달리기를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를 해야겠지만, 마라톤을 달리려면 초반에 너무 무리해서 컨디션을 흐트러트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이 항상 페이스 조절이다. 달릴 만한 것 같은 초반에 후다닥 달려 나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아직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오래 달리지 못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중랑천 건너편에서 내 기준에는 속이 터지는 속도로 리듬감 있게 천천히 지나가는 한 무리의 러닝크루와 같은 방향을 달리던 날 깨달았다.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그래야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요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정한 조건을 알아내고 그것을 유지할 줄 아는 것이 요리 실력을 좌우한다. 가령 튀김을 만들 때는 기름의 양도, 온도도 조절이 필요하다.

기름 온도가 너무 높으면 음식을 넣자마자 속까지 익기 전에 겉이 타 버리지만, 온도가 너무 낮으면 튀김옷이 기름을 너무 많이 흡수해서 축축하고 기름 맛이 난다. 참으로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야만 제 역할을 하고, 조금만 어긋나면 음식의 식감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센 불에서는 튀김을 만들지만, 아주 낮은 온도에서는 또 다른 조리법이 탄생한다.



특히 나처럼 성격이 급해서 물이 끓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파스타를 포기하고 볶음밥을 만드는 사람도 먹고 싶어지면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 요리가 있다. 기름을 천천히 데우고, 재료를 조심스럽게 익혀야 하는 요리. 바로 ‘아히요’다.

입맛 따라 커스터마이즈, 아히요 만드는 법

우리나라에서는 감바스라고 주로 부르는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는 스페인어로 새우와 마늘이라는 뜻으로, 마늘과 고추 향이 우러나도록 천천히 데운 올리브 오일에 새우를 함께 익혀 만드는 음식이다. 마늘 향이 밴 오일과 새우의 감칠맛이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도 딱 맞아서 인기가 좋지만, 만드는 과정은 역시 한국인의 특성인 ‘빨리빨리’와는 거리가 멀다.

포인트는 마늘 향이 나는 오일과 그 맛이 밴 부드러운 새우인데, 향이 배려면 최소 30분 정도는 천천히 따뜻하게 가열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빨리 배를 채우고 쉬고 싶은 주중 저녁에는 알맞지 않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캠핑장에서 만들기 여러모로 좋은 음식이다. 잔잔한 모닥불 사이로 둘러앉아서 야금야금 술안주로 먹기에도 좋고, 불을 피운 김에 먼저 하나 만들어서 애피타이저로 먹기에도 좋다. 손질하기 편한 상태이기만 하면 칼을 전혀 쓰지 않고 완성할 수도 있다. 보기에도 예쁘고, 마늘 향이 폴폴 풍겨서 맛있다.



그래서, 맛있는 아히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무쇠팬이나 질그릇처럼 묵직하고 두꺼운 팬 종류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기름 온도가 화르륵 올라가면 튀김이 되어버리니까 낮은 온도를 천천히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이 터져도 보글보글 끓거나 지글지글 튀겨지지 않도록 온도가 천천히 올라가고 잘 떨어지지 않는 팬을 고르고 약한 불을 유지해야 한다. 마늘은 10~15분 정도 천천히 익혀서 향을 우리고, 새우를 넣고 5분 정도 천천히 익힌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고온에 볶은 겉이 쫄깃한 새우 대신 전체적으로 마늘 향이 배어든 촉촉하고 탱글한 새우가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히요는 마늘 향이 밴 오일에 무언가를 넣어서 익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원하는 재료라면 마음대로 넣어도 좋다. 따뜻한 마늘 오일에 익혀 먹고 싶은 재료를 넣은 다음 감바스 대신 그 재료의 이름을 붙이면 된다. 문어 아히요, 버섯 아히요… 대충 이런 식이다.

우선 새우처럼 수산물 종류는 대체로 잘 어울리고 보기에도 예쁘다. 관자, 새우, 오징어, 문어 등이다. 생각보다 짙은 색으로 익어가는 문어가 질그릇 속에서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오일 온도에만 주의하면 천천히 익으면서 아주 부드러운 질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혼자 캠핑버너인 소토 레귤레이터와 자그마한 무쇠팬을 이용해 해먹은 아히요는 ‘굴 아히요’였다. 물기를 싹 제거한 굴을 딱 부드러울 정도로만 익혀서 바게트에 얹어 먹었더니 질긴 부분 한 점 없이 마시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수산물을 넣지 않아도 상관없다.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는 양송이버섯과 미니 새송이버섯이 아히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아는 사람? 마늘과도 환상 궁합이다. 완두콩, 아스파라거스, 강낭콩뿐만 아니라 감자와 연근 같은 뿌리채소 종류도 아작아작하니 매력적인 맛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전분 채소 종류는 빨리 익지 않으니 초벌로 익힌 다음 넣는 것이 좋다. 그 외에도 연어, 치즈, 토마토 등 원하는 재료라면 뭐든 넣어서 익혀보자. 말린 고추 대신 허브도 다양하게 사용해보자. 나만의 조합을 찾아보기 아주 좋은 메뉴다.

관건은 완급 조절

성급하게 불을 올리면 새우가 질겨지고, 마늘 향은 매캐해진다. 기름 한 방울까지 바게트로 닦아내 먹고 싶을 정도로 깊은 맛을 내려면 결국 아히요를 완성하는 것은 기다림과 시간이다. 어쩌면 시행착오를 거쳐 가면서 이렇게 기다리는 것 자체가 삶의 완급 조절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쉬어가고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곳, 그것이 나에게는 캠핑이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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