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1995년 1월 나온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메가 히트작이다. 2000년 6월 출시되면서 무명의 홍경민을 '한국의 리키 마틴'으로 만들어준 노래가 <흔들린 우정>이다. <잘못된 만남>은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긴 심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가사가 공감을 샀다. 반면 <흔들린 우정>은 친구의 연인을 사랑함으로써 우정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을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두 노래의 작사·작곡을 김창환 프로듀서가 맡았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당사자들의 상반된 심정을 담은 것이다. <흔들린 우정>은 <잘못된 만남>의 답가로 알려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인간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하는 과정을 파헤친 걸작이다. 나무꾼이 사무라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관아에 신고했다. 사무라이 살해범으로 산적이 체포됐다. 산적은 사무라이의 아내를 빼앗으려 결투를 벌여 승리했으나 여자가 도망쳤다고 증언했다. 사무라이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 당해 실신했다고 말했다. 사무라이의 영혼에 빙의된 무당은 아내가 사무라이를 배신하고 도망쳤고 산적이 사무라이를 풀어줬지만 자괴감에 자결했다고 밝혔다. 나무꾼은 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며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각자 시점에 따라 다른 진술을 한 것이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며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은 1915년 자신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Rubin vase·figure-ground vase) 그림을 통해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림의 안쪽 부분을 집중해 보면 꽃병 또는 컵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깥쪽 검은 부분에 시선을 모으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시선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부분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빈의 꽃병은 인간의 인지 구조가 고정돼있지 않고 매 순간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변덕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는 곳이 법정이다. 원고 대 피고, 고소인 대 피고소인, 청구인 대 피청구인은 법정에서 저마다 자신의 이해와 관점에 따라 증언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국회 의결 방해·정치인 체포 지시, 포고령·비상입법기구, 부정선거 의혹, 계엄 선포 이유 등 쟁점에서 검찰의 공소장과 일부 증인들과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부정과 책임 전가성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도 그동안 자신의 '사법리스크'에 관한 질의에 "검찰의 창작소설", "언론은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두 사람 모두 세간의 인식에는 아랑곳없이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상반된 시선이 존재할 때 누군가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현명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정확한 사실 인정을 바탕으로 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게 법치 국가의 소명이다. 어렵게 찾아낸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 믿음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국민은 헌재와 법원이 치밀한 논증과 사실 인정을 통해 합리적 결론을 내려줄 것을 바란다. '솔로몬의 판결'은 아니더라고 수긍할 수 있는 심판을 내려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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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의 꽃병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인간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하는 과정을 파헤친 걸작이다. 나무꾼이 사무라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관아에 신고했다. 사무라이 살해범으로 산적이 체포됐다. 산적은 사무라이의 아내를 빼앗으려 결투를 벌여 승리했으나 여자가 도망쳤다고 증언했다. 사무라이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 당해 실신했다고 말했다. 사무라이의 영혼에 빙의된 무당은 아내가 사무라이를 배신하고 도망쳤고 산적이 사무라이를 풀어줬지만 자괴감에 자결했다고 밝혔다. 나무꾼은 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며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각자 시점에 따라 다른 진술을 한 것이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며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은 1915년 자신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Rubin vase·figure-ground vase) 그림을 통해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림의 안쪽 부분을 집중해 보면 꽃병 또는 컵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깥쪽 검은 부분에 시선을 모으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시선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부분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빈의 꽃병은 인간의 인지 구조가 고정돼있지 않고 매 순간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변덕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는 곳이 법정이다. 원고 대 피고, 고소인 대 피고소인, 청구인 대 피청구인은 법정에서 저마다 자신의 이해와 관점에 따라 증언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국회 의결 방해·정치인 체포 지시, 포고령·비상입법기구, 부정선거 의혹, 계엄 선포 이유 등 쟁점에서 검찰의 공소장과 일부 증인들과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부정과 책임 전가성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도 그동안 자신의 '사법리스크'에 관한 질의에 "검찰의 창작소설", "언론은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두 사람 모두 세간의 인식에는 아랑곳없이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상반된 시선이 존재할 때 누군가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현명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정확한 사실 인정을 바탕으로 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게 법치 국가의 소명이다. 어렵게 찾아낸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 믿음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국민은 헌재와 법원이 치밀한 논증과 사실 인정을 통해 합리적 결론을 내려줄 것을 바란다. '솔로몬의 판결'은 아니더라고 수긍할 수 있는 심판을 내려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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