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전 국무총리 인터뷰]
"국힘의 지지율 추월, 상상도 못해"
"이재명 만나 대선 승리 방안 모색"
"당 정체성 흔드는 실용주의, 신중"
"국힘의 지지율 추월, 상상도 못해"
"이재명 만나 대선 승리 방안 모색"
"당 정체성 흔드는 실용주의, 신중"
김부겸 전 총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12∙3 불법적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헌정질서를 유린해놓고도 윤석열 대통령은 반성 대신 선동에 골몰하고 있다. 강성 보수 지지층은 똘똘 뭉치며 탄핵 반대를 외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팽팽해졌고, 정권유지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도 비등해졌다. 갈수록 격화하는 진영 대결 속에 여야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군으로 꼽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민주당 책임론을 더 무겁게 짚었다. 불법 계엄 사태 이후 더 간절해진 국정 안정과 민생 경제 회복을 바라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민주당이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해줬다는 판단이다. 민주적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강경 행보만으로는 표류하는 민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지금까지 민주당에서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건 당내 다양성과 포용성, 민주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라며 "당내 반대 목소리를 짓밟는 일은 절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소한 싸움꾼스럽지 않음"을 자신의 무기로 내세운 김 전 총리는 특유의 갈등 조정의 리더십으로 진보와 중도, 보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정치 리더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전 총리 인터뷰는 지난 12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됐다.
-불법 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다. 민주당이 국민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이 큰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비교하면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나와야 정상인데 보수층 결집 여부를 떠나서 국민의힘에 추월당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상상도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망가지면 국민이 믿을 것은 국회밖에 없는데 170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앞장서서 나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AI(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는데 적절한 대비가 됐는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통상 압력에 대책이 있는 건지.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고 더 적극적으로 잘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국민들은 보시는 것 같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이재명 일극체제'에 따른 다양성 실종을 우려해왔다.
"일부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분위기인데 민주당스럽지가 않은 모습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를 억누른다면 그건 민주당스러운 게 아니다. 당내 다양성, 포용성, 민주성이 보장됐기에 현재까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 목소리를 짓밟는 일은 절대 사라져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건 민주당의 자부심을 되찾는 길이다. 또 대선 전략 측면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가장 큰 자산이다."
지난해 4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10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실용주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당의 '문제 해결자'의 모습을 보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이 대표가 답을 했다고 본다. 일부 국민들은 민주당이 이념에 집착해서 현실 문제 해결이 더디다고 비판하지만 역대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만 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연한 접근을 해왔다. 다만 우리 당이 지향하는 가치, 정체성과 관련해서 정책을 변경할 때는 좀 신중할 필요는 있다."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 이견이 크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지금 세계 각국이 반도체 전쟁 중이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반도체 기업에 인프라를 지원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내용부터 우선적으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주 52시간 적용 제외’는 반도체특별법의 핵심 쟁점이 아니다. 우리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렀나. 일단 인프라∙세제 지원하는 것부터 통과시켜서 반도체 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노동시간 문제는 계속 진중하게 토론하면 된다. 노동시간 제한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지를 면밀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주 52시간제 때문에 반도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현재로선 납득하기 힘들다."
-이 대표 쪽에서 김 전 총리를 비롯해 비명계 주자들과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일정 조율 중이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지금 헌정질서 자체를 파괴한 세력들과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는, 헌정수호세력의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같이 모색하려고 한다. 이 대표도 우리 당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보여주기식 만남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이 대표에게 통합, 포용 행보를 적극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내놔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 패배 책임론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본인 책임이 크다고 했고 이 대표 역시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크다고 했으니 이런 논쟁은 더 안했으면 좋겠다. 다만 기본적으로 후보의 문제가 가장 크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인사 실패와 부동산 실패도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김부겸 전 총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윤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되면 8년 만에 또 조기 대선이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규정하나.
"내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8년 전보다 갈등 수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 최소한 계엄과 내란으로 촉발된 헌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출발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대선이 돼야 한다. 개헌도 해야 하고 민생 경제에 대해 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대선이 돼야 한다."
-개헌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나.
"크게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과 적절한 견제가 가능한 방식의 권력구조 개편이 있어야 한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국민들의 노동권, 사회권, 건강권을 담지 못했다. 이번에 못 박아야 한다. 개헌에 대한 논의는 국회에서 시작하되,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차기 대통령이 (본인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 방안에 대해 대국민 약속을 할 필요도 있다. 이 대표도 국민적 요구가 있으니 이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야 하고 지방분권에 대한 내용도 담겨야 한다. 4년 중임제 개헌은 핵심 쟁점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재판 중이니까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간 대표가 정도(正道)로 갔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그렇게 가면 된다. 다만 저는 다음에 출범할 정부가 민주당, 그러니까 한 정당의 전유물이 되면 안 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라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헌정질서를 수호한 세력들이 합쳐서 '응원봉 연합 정당'을 만드는 등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현 시국에서 어떤 역할이든 마다 않고 '총대를 메라고 하면 메겠다'고 밝혔다. 대선 출마하나.
"지금 국민들이 궁금한 건 대선이 아니다. 정말 탄핵이 인용되는 건지부터 불안해한다. 국정안정, 민생회복, 예측 가능한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제가 할 행동이 있다면 내가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주자로 안정감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높지만 지지율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제가 추구해온 정치적 가치는 상대방을 악마화하기보다는 대화하고 타협하는 쪽이라 조금 섹시하지 않다. 우리 편이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면 팬덤도 생기고 박수도 많이 받겠지만 그게 정치의 본령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 극복, 제정구 전 의원의 공존하는 정치가 제가 추구해온 정치다. 그런 태도가 결국엔 쓰임새가 꼭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