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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놓인 영정 속에서 김하늘(8)양이 환하게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하늘이는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8살이었다. 일찍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려 이른 아침에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였다. 그날도 졸린 눈으로 달려가 아빠를 꼬옥 안았다. “아빠, 조심히 잘 다녀와. 사랑해.”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웃으며 고사리손을 흔들었다. 그게 마지막 출근길 배웅일지 아빠는 꿈에도 몰랐다. 그러기엔 그 순간도, 하늘이도 너무 소중했다.

학교에서 선생님 손에 목숨을 잃은 김하늘양의 빈소엔 아이가 좋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하늘이는 뭐든 진심인 친구였다. 축구도 원영 언니도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빈소 한쪽에 걸린 유토피아(대전하나시티즌 서포터즈) 점퍼는 이번 시즌 홈 개막전 때 입고 가려고 아껴둔 아이템이었다. 새 점퍼엔 오른팔 끄트머리에 ‘김하늘’ 이니셜을 예쁘게 새겨 놓았다. 딸의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다다음주가 홈 개막전인데, 결국 이걸 한번도 못 입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13일 아침 고 김하늘(8)양이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 울타리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편지와 국화, 물품들로 가득했다. 천경석 기자

그만큼 하늘이는 아빠랑 축구 보러 가는 걸 참 좋아했다. 축구도 좋았지만, 하늘이처럼 축구를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게 기쁨이었다. 축구 경기가 끝나면 “아빠, 우리 회식도 가야 해”라며 조르곤 했다. ‘유토피아’ 삼촌·이모·오빠·언니들도 그런 하늘이를 정말 사랑했다. 하늘이 것과 똑같은 서포터즈 점퍼를 입고 장례식장에 온 ‘축구 친구’들은 하늘이 엄마·아빠를 껴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하늘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다.

가수 아이브 장원영을 향한 마음도 ‘찐사랑’이었다. 춤추는 걸 좋아한 아이는 가족들에게 “내 꿈은 장원영”이라고 말하곤 했다. 원하는 생일 선물도 오로지 ‘아이브 장원영 포토카드’였다. 원영 언니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뭐든 본방 사수했다. 하늘이의 원영 언니를 향한 열정은 뽀로로를 향한 동생의 집념도 이겼다. 그런 딸에게 엄마·아빠는 대전에서 아이브가 콘서트를 하면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늘이 사연을 접한 아이브는 하늘이 빈소에 화환을 보냈다. 그 꽃은 8살 ‘찐팬’의 영정 바로 맞은편에 놓였다.

하늘양 영정 앞에 대전하나시티즌 머플러와 가수 아이브 장원영의 포토카드가 놓여 있다. 최예린 기자

그럼에도 무엇보다 하늘이가 으뜸으로 아끼는 건 동생이었다. 두살 아래 동생이 “화장놀이 하자, 로블록스 같이 하자”고 졸라도 귀찮은 내색 없이 함께 놀았다. 하루 늦게 이제 별이 된 언니 소식을 들은 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엄마 품에 안겨 꾹 참던 눈물을 터뜨렸다. 하늘이가 떠나기 전날은 동생의 생일이었다. 그날의 ‘생일축가’가 하늘이 동생에게 불러준 마지막 노래가 될 거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다.

13일 아침 아이가 떠난 학교 앞엔 하늘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정문 울타리엔 얼굴 모르는 이웃들이, 시민들이 놓아둔 국화와 과자, 아이브 장원영의 포토카드와 음반까지 하늘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행여 눈에 젖을까 나란히 주르륵 펼쳐 둔 우산이 하늘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을 지켰다. 아이브의 앨범 위에 붙은 편지도 눈을 피해 하늘이에게 말했다.

“하늘아, 언니도 아이브 좋아해. 너가 좋아하는 아이브 앨범을 가져왔어. 천국에선 하늘이가 좋아하는 아이브도 마음껏 보고 축구도 지칠 때까지 하면서 놀렴. 어른들이 미안해. 사랑해, 평생 기억할게, 하늘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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