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메가박스 불참해 롯데가 계약…"극장 간 출혈 경쟁 내몰아"
"배급사 몫 줄어 신작 제작에 악영향"…적십자사 "근거없는 증액 어려워"
"배급사 몫 줄어 신작 제작에 악영향"…적십자사 "근거없는 증액 어려워"
영화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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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대한적십자사(적십자사)가 헌혈 답례품으로 제공할 영화 관람권을 정상가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에 대량 사들이기로 해 영화계가 '가격 후려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13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지난달 22일 영화 티켓 65만3천여 장의 판매처를 찾는 입찰 공고를 냈다. 배정된 예산은 32억6천여만 원으로, 티켓 한 장당 5천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롯데시네마가 단독 응찰함에 따라 양측은 협의를 거쳐 이달 6일 장당 3천924원에 수의계약을 맺었다. 계약 가격은 평일 관람권 정가(1만4천원)의 28% 수준이다.
CGV와 메가박스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연간 영화 관람권 130만장을 사들인다. 상영관으로서는 포기하기 쉽지 않은 큰손이지만, 멀티플렉스 3사 중 2사가 입찰하지 않은 것은 적십자사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매겨 극장 간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적십자사의 입찰 공고 때 배정한 영화 티켓 구매 예산은 2020년 상반기부터 작년 하반기까지 한 차례를 제외하면 모두 장당 6천원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5천원으로 감소했다.
적십자사가 예산 범위에서 제시하는 '기초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이 특히 문제라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초 금액은 입찰자가 투찰할 때 참고하는 기본 가격인데, 통상 기초 금액의 80% 수준에서 낙찰가가 형성돼 왔다.
2020년 상반기 5천800원이던 기초 금액은 꾸준히 줄어 지난해 상반기에는 4500원까지 내려갔다. 당시 낙찰가는 3천621원으로 정가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적십자사는 답례품으로 편의점교환권과 모바일멀티상품권도 활용하는데 이들을 입찰할 때와 대비된다. 둘 다 정가는 8천원인데 적십자가 제시한 기초 금액은 각각 7천800원, 7천600원이었다.
극장가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화 산업이 악화 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적십자사가 과도한 경쟁을 조장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130만장을 판매할 수 있는 확실한 루트인 만큼, 그동안은 극장들이 남는 게 거의 없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해왔다"면서도 "그러나 가격 후려치기가 갈수록 심해지는 만큼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기초 금액이) 바닥을 치고 출혈 경쟁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티켓 가격이 제작 환경이나 콘텐츠의 질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티켓 판매 수익을 극장과 투자배급사가 나눠 가지는 구조에서 티켓 가격이 낮아지면 배급사가 새 영화 제작에 투자할 여력 역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 티켓 가격 문제는 극장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영화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현재 객단가(관객 1인당 실제로 부담하는 평균 입장권 가격)인 9천700원도 너무 낮아 배급사와 제작사가 극심한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3천900원대로 티켓을 파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적십자사는 과거 입찰·계약 금액 등을 고려하고 계약 가능성을 판단해 관련 예산과 기초금액을 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계약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예산 절감은 국가기관이 가져야 할 기본 기조로, 충분한 근거 없이 (티켓 구매) 예산 증액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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