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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부상병 된 한국인 이병훈씨
자포리자에서 자폭 드론 공격받아 부상
우크라이나 외국인 의용병 부대 ‘국토방위군 국제여단’을 통해 참전했다가 부상한 한국인 이병훈(58)씨가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키이우/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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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곧 3년을 맞는다. 한겨레는 우크라이나 전쟁 3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서부 르비우 그리고 폴란드 등을 찾아 전쟁의 참상과 전망을 취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군에 서구권 출신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의용군으로 참전했으며 일부 한국인도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한겨레는 우크라이나 외국인 의용병 부대 ‘국토방위군 국제여단’을 통해 참전했다가 부상한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을 만났다. 지난 7∼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식당과 서부 도시 르비우에 있는 재활센터인 슈퍼휴먼센터에서 한국인 참전 군인 이병훈(58)씨와 한국계 미국인 제이슨 지(21)를 만나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각자 다른 지역에서 작전 수행을 하던 중 부상을 당했고, 이씨는 왼쪽 팔을, 제이슨은 왼쪽 무릎 위까지 절단한 끝에 생존할 수 있었다.

2023년 7월 폴란드 국경에서 국제여단 입대 신청을 한 이병훈씨는 한 달가량의 훈련을 거쳐 작전에 투입됐다. 이씨와 같은 외국인 14명과 육군 204여단에 정식 소속되면서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동부 도네츠크주의 바흐무트와 콘스탼티니우카 등에서 싸웠다. 그는 “부대원들은 최대 5∼6일 동안 최전선 참호에 투입돼 러시아군과 근접 전투를 벌였다. 주로 러시아군의 공격에 방어를 하는 임무였고, 기관총과 수류탄, 유탄발사기 등을 갖고 러시아군과 교전을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은 이병훈씨가 전장에서 촬영한 사진. 이병훈씨 제공

이씨는 미사일과 대포 공격도 경험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드론’(무인기)이었다. 지난해 7월7일 자포리자 전선에 투입됐던 이씨는 자폭 드론 공격에 팔을 잃었다. 왼쪽 귀 고막도 파열돼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쫓아오는 드론이 아직도 무섭고 두렵다. 로켓이나 기관총 등으로 전투를 벌이더라도 일단 참호 안까지 들어오면 안전했지만, 자포리자에선 참호의 지붕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쉴새 없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며 “(퍼붓는 드론 공격으로) 참호는 엄폐가 되지 않고 적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되니 희생자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군인들을 갈아 넣어 전선을 지켜내는 상황이다. 최첨단의 값비싼 무기로 전술과 전투 교리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값싼 드론의 효용이 입증되면서 과거의 전술로 돌아가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터너킷’(응급 상황에서 출혈을 멈추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으로 지혈을 하며 혼자 후퇴했고 새벽에야 무선 교신으로 부상 소식을 알려 콜롬비아 출신 의용군 2명의 도움으로 응급 처치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다른 우크라이나군 2명이 이씨를 수레에 싣고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해 주어 차량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씨는 “차량을 타는 순간까지 대포와 드론 공격을 받았다. 나중에 의료기록을 보니 부상 이후 14시간이 걸린 끝에 병원에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씨를 포함해 작전에 투입된 8명 중 전사자는 2명이었고, 이씨 등 4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이병훈씨가 신었던 군화. 왼쪽 군화엔 핏빛이 자욱하다. 이병훈씨 제공

2024년 초 영국을 거쳐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는 제이슨도 국제여단에 편입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참호 방어 임무를 맡았다. 2024년 7월27일 부상을 당한 날도 임무를 위해 병사 5명과 좁은 길을 이동하던 중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잃었다. 이미 제이슨보다 먼저 골반에 총상을 입은 스페인 병사도 있던 터라 안전한 참호까지 이동하는 길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급하게 터너킷을 작동시키면서 지혈도 완벽하지 않았고, 조금씩 피를 흘리며 800m 가량을 한쪽 발로 움직였다”며 “운이 정말 나빴다. 처음엔 지뢰를 밟은 줄 모르고 스스로에게 총을 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제이슨은 이후 드니프로와 키이우 재활 병원에 입원했지만 열악한 시설 등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11월에야 부상병들을 위한 전문 재활 센터인 ‘슈퍼 휴먼센터’에서 의족을 지원받아 걷기 훈련 등을 받게 됐다.

이씨도 부상 이후 4개월 동안 키이우와 르비우, 무카체보 등에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12월 슈퍼휴먼센터에서 의수를 받고 전문적인 재활 치료에 들어갔다.

코로나19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마스크 사업을 하는 사업가였던 이씨는 2023년 여름 프랑스 여행 중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제대로 접했고, 하루에 여러 나라를 돌며 전쟁 상황을 알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호소에서 “절실함”을 봤다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에도 국제연합(UN)군이 우리를 도왔지 않았나. 체코에 있는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 전시된 전쟁 사진을 보고 충격도 받았다”고 입대 계기를 말했다.

미국 서부 소도시의 대학생이었던 제이슨은 컴퓨터 공학 등 전공 공부를 마치면 안정적인 직업도 가질 수 있었지만 전장을 택했다. 제이슨은 “이곳에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우크라이나로 가느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그런 조건들이 사람들을 돕지 않아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었다”며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고 많은 자원을 가졌는데, 다른 나라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외국인 의용병 부대 ‘국토방위군 국제여단’을 통해 참전한 제이슨 지(21)를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있는 재활 전문 의료 기관 ‘슈퍼휴먼센터’에서 만났다. 사진 르비우/장예지 기자

하지만 이씨와 제이슨이 경험한 전장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고,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씨는 “어디에서건 아무렇게나 널린 러시아군의 주검을 볼 수 있었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씨는 “나를 구조하라는 지휘관의 명령과 후방 지원을 와 준 전우들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살아 돌아가면 부상병이지만 러시아군에 잡히면 포로가 되고, 공격을 받아 숨져도 주검을 수습할 수 없으면 실종 처리가 됐다”고도 했다. 현장에선 부족한 병력 문제도 여실히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한 우크라이나 전우는 60살이 넘었는데도 제대를 시켜주지 않아 가족이 보고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휴가 나갔다가 복귀하면 바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모두 탈영병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제이슨은 부상을 입기 4일 전, 가장 친하게 지냈던 영국인 동료를 잃었다. 18살 소년이었던 제임스 윌튼은 처음 임무 부여를 받고 제이슨과 함께 했는데, 드론 공격을 받아 그대로 사망했다고 한다. 제이슨은 “드론 두 대가 우리를 정찰하는 것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제임스는 얼어붙었고, 드론이 떨어뜨린 폭탄을 맞았다. 임무를 시작한 지 20여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제이슨은 제임스의 주검을 직접 옮겨야 했고, 그의 장례식엔 휠체어를 탄 채 참석했다.

제이슨 지가 전장에서 동료들과 찍었던 사진. 제이슨 지 제공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정부는 50개국에서 약 2만명 가량이 국제여단 참전을 신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여름이 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의 군인이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하며 당시 기준 1000∼3000명의 외국인 의용군이 전투 중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씨도 “전방을 경험한 외국인 의용군들은 공포감에 상당수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국제여단에선 우크라이나인 조부모를 둔 주한미군 출신의 동료도 만났지만 돈을 벌 목적이나 호기심 때문에 오는 이들도 봤다. 하지만 204여단에서 함께했던 14명의 외국인도 모두 돌아갔고, 지금은 나만 이곳에 남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이병훈씨가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받은 훈장을 들고 있다. 이병훈씨 제공

이씨와 제이슨은 재활 치료와 함께 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전쟁이나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부상으로) 죽었다가 살아보니 생명이 소중한 것을 다시 느꼈다”며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제이슨은 여전히 전우를 잃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부상 직후엔) 집에 가려는 마음이 커졌지만, 친구를 잃은 데 대한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러시아군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부상을 입은 뒤 이씨가 가장 마음을 쏟게 된 대상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었다. 그는 “1년여간 전방을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군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 잘 안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전장에 온 어린 청년들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며 “끔찍하게 버려진 주검들을 정말 많이 봤기 때문에, 죽어간 북한군도 그랬을 것 같아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들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라고 했다. 20대 시절 해병대로 김포에서 군생활을 했던 그는 북한 개풍군과 불과 1.4㎞ 떨어진 애기봉 인근에서 관측하사로 복무하며 늘 북을 바라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병훈씨가 20대 해병대 군복무 시절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북한 개풍군과 불과 1.4㎞ 떨어진 애기봉 인근에서 관측하사로 늘 북을 바라봤다. 사진 이병훈씨 제공

이씨는 귀국할 경우 여행금지국가인 우크라이나에 체류했기 때문에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지만, “처벌도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이었다. 참전과 부상 소식도 1년 반이 흐르고 최근에야 친동생과 친구 한 명에게만 털어놨다. 이씨는 제대 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남아 전장의 상황을 유튜브 등을 통해 알리는 일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한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을 만나면 총을 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며 “정치라면 진보, 보수를 떠나서, 또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둘중 누가 잘못했느냐를 떠나 더이상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쳐선 안 된다.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했다.

글·사진 키이우·르비우/장예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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