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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반도체 키운다면서요. 정치권은 반도체 연구개발(R&D)이 일정대로 물건 찍어내는 공장인 줄 아나 봅니다.”(시스템 반도체 기업 대표 A씨)

“지금 우리 반도체 R&D는 대당 수백, 수천억원짜리 장비를 (제한된) 시간에 쫓겨가며 돌리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예외’가 만능은 아니지만, 주 52시간제로 해도 문제없다? 그건 거짓말이죠.”(전직 삼성전자 기술 임원 B씨)

‘반도체 관세’라는 미국발(發)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고, 중국의 굴기에 해외 언론도 ‘한국 반도체가 일본처럼 되는 것 아니냐’ 걱정한다. 그러나 국내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 세액공제율을 높인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발의 8개월 만인 지난 11일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 심사를 겨우 넘었지만, 반도체특별법(제정안)은 잠자고 있다. 이 법엔, 성과 기반 전문직엔 근로시간·임금 규제를 하지 않는 해외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국내에선 ‘반도체 R&D 직군’에 한해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 탄력근로조차도 근로일과 시간을 2주 전에 확정해야 해 글로벌 경쟁 중인 반도체 산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때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야당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A대표는 “지구 반대편 고객사 요구에 맞춰 실시간 설계를 수정·검증하는데, 납품일 직전에도 우린 시간 규제 때문에 일하다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독일 고객사는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가 노동시간 규제를 받는다는 걸 이해 못 하고, 중국 경쟁사들은 고객사가 일정을 얼마나 당기든 다 맞춘다”고 했다. 그는 “우린 생사가 달린 일이라 ‘R&D만이라도 규제를 면해 달라’는 건데, 국회는 ‘장시간 일을 시키려는 수작’ 정도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의 우려대로 ‘주 52시간 제외’가 연구직의 습관적 장기 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기업이 인력풀을 늘려야 한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엔지니어 수급이 부족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사내 공과대학은 물론, 4년제 대학 10곳에서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양성에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는 8대 공정마다 세부 영역 전문가가 필요해 분야별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기 어려운 산업이기도 하다. 삼성 반도체에서 31년간 연구했던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 석좌교수는 “핵심 연구원은 대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필요할 때 집중해서 일하고 원할 때 쉬고 싶어 한다”며 “어떤 인력이든 (아무나) 추가 투입하면 된다는 건 이 업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SCMP “화웨이, 설연휴 내내 야근” 딥시크 바로 적용…한국선 깜짝 놀라
반도체는 자동차·로봇·데이터센터 등의 핵심 부품이어서, 칩 공급과 결함 수정이 제때 되지 않으면 다음 공정이 순차적으로 밀려 손해가 불어난다. 삼성 반도체 전직 임원 B씨는 “장비를 다루다 보면 계획대로 안 되고, 여기에 52시간까지 맞추다 보면 고객 대응이 한없이 늦어진다”고 말했다. 대당 1000억원 넘는 장비로 장당 1000만원 넘는 웨이퍼를 다루는데, 경험이 부족한 엔지니어를 투입하는 모험을 할 수도 없다.

중국 기업들의 속도는 다르다. 춘절(중국 음력설) 연휴이던 지난 1일, 화웨이는 자사 클라우드에서 딥시크의 AI 모델 R1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R1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개발됐는데, 수출 규제로 엔비디아 칩을 못 쓰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 칩에서 R1이 동일한 성능으로 구동되게끔 엔지니어링 작업을 마친 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화웨이와 중국 협력사가 연휴 내내 야근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의 설계 담당 연구원은 “동료들과 연휴 내내 카톡에서 딥시크 얘기를 했는데, 화웨이가 이걸 바로 적용한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AI용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고객과 수량·스펙을 긴밀히 사전 협의하는데, 기술의 속도만큼 고객의 마음도 급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SK하이닉스의 공격적이고 빠른 HBM 출시”를 재촉했고 이에 최태원 회장은 6개월을 당기겠다고 했다.

한국이 규격화된 메모리 반도체를 대량 양산해 업계를 선도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난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중·일 반도체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국이 D램 메모리 물량 공세로 한국을 위협한다”며 “1980~90년대 한국이 일본 메모리를 몰아낸 사건이 이제 한국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메모리도 AI 기술에 맞춤형·선도형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중국에 추격당할 위기다.

이번 법 개정으로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30%로 높인다지만, 중국(220%)에 비교가 안 된다. 업계에서는 지금 필요한 건 당장의 투자와 기술력 향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중·일에 이어 대만까지 수천억~수십조원 보조금을 기업에 턱턱 지급하는데, 한국은 지원은커녕 R&D 걸림돌도 못 치우고 있다.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 임원은 “인재 쟁탈전이 심한 이 바닥에서 핵심 연구원은 회사의 자산인데, 혹사시켜서 회사를 떠나게 하겠냐”며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연구개발 시간만큼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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