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서 잇단 자성의 목소리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선봉의 자리에서 역사에 헌신했던 교회는 계엄 정당과 극우 정권의 하수인이 돼 오히려 시민들과 맞서고 있다. 교회의 모습에 고개를 들 수 없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난달 21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교단 차원의 시국기도회를 열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전광훈·손현보 목사 등 극우 성향 목사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과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주장이 대규모 집회를 넘어,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사태로까지 번진 시점이었다. 시국선언을 이끈 진광수 목사(감리교시국대책연석회의 상임대표)는 11일 한겨레에 “기독교가 극우의 앞잡이로 여겨지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교인들도 교회의 잘못된 행태에 분노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려는 분위기가 크다”고 전했다.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내란사태 이후 극단적 주장을 쏟아내는 일부 극우 교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광훈 목사 등의 극우 행보에 여전히 침묵하는 교단이 대다수지만, 상식적인 목소리를 찾아 교회를 옮기거나 교회에 직접 불만을 제기하는 교인들 움직임도 나타난다. ‘교회’를 표방한 극단적 주장이 상식적인 다수 교회까지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서울의 한 주류 대형 교회에 다니는 류동훈(38)씨는 “전광훈 부류의 주장이 전체 교회의 주장인 것처럼 과잉 대표되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며 “12·3 내란사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교인이 더 많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을 둘러싼 무속 비선 논란과 폭력적인 비상계엄 시도 등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실제 내란사태 뒤 감리회·대한성공회·한국기독교장로회는 시국기도회를 여는 등 민주주의의 회복과 평화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시국회의 등 160여개의 사회참여적 교회·단체들도 ‘윤석열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를 격주로 이어가고 있다.
다만 대다수 교단은 침묵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한데 목소리를 모으거나, 개별 교회를 통제하기 어려운 개신교 현실이 배경에 있다고 한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신학과 교수는 “수많은 교파·종파로 구성된 개신교의 특성상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이 있다”며 “특히 전 목사는 백석 교단에서 제명되고 난 뒤 자기 교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 사실상 교단 차원의 통제장치가 아예 없다”고 짚었다. 2019년 전 목사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으로 ‘신성모독’ 논란이 일었을 때조차 비판적인 공식 입장을 표명한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합동·통합·고신 3곳뿐이었다.
한국 교회가 극우 세력에 침묵·동조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시민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기독교 시국행동 상임대표인 이성환 목사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며 “개신교 하면 극우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면 한국 교회가 시민에게 외면당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대형 교회 누리집 게시판에는 “나라의 존폐가 달린 중차대한 시기에 침묵하는 교회가 실망스럽다”, “현 시국에 눈감고 뜬구름 잡는 설교만 하시는 목사님” 등 비판하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탁지일 교수는 “극우 집회가 교회를 표방해 정치적 선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전 목사 등에 대한 직접 통제가 어렵다면 교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각 교단의 입장 표명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