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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결국 '트럼프 관세'의 사정권에 들게 됐습니다. '일정 수량(쿼터) 내에서는 무관세' 등 기존의 조건을 철회하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철강 263만 톤 이내의 수출에 대해서는 무관세를 적용받아 왔습니다. 이젠 반도체와 자동차도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이 관세 부과 예고는 바로 대통령의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서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바이든 전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기 위한 여러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불법 이민자 추방, 멕시코만의 미국만으로 변경 등등도 행정 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행정 명령으로 이뤄지는 정책들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대통령 '행정 명령'의 효력은?

행정 명령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미국 법무부의 사이트를 보면 '미국 대통령이 연방 정부의 운영을 관리하는 공식 문서'라고 돼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연방 등록부에 등록됩니다. 그래서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대통령은 각서(memoranda)나 선언(proclamation)을 발행할 수 있지만, 연방 등록부에 올라가지도 않고 법적 효력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지는 거지만, 의회의 의결이 없어 법률은 아닙니다. 의회의 입법 절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과거 전쟁이나 국가 비상시 등에서 사용됐습니다.

법은 아니기 때문에 법만큼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문서에 서명하면 기존 행정명령은 뒤집힙니다. 철학과 정책이 다른 정권이 등장하면, 바로 기존 정책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멕시코 시티 정책'입니다. 미국 연방의 자금 지원을 받는 국제 비정부기구는 낙태 지원을 할 수 없도록 한 정책입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당)이 시행했지만,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민주당)이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공화당)이 다시 시행했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은 또 철회했습니다. 이후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부활했다가, 바이든 행정부 때 다시 철회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 명령을 남발하고 있는 걸까?

미국 대통령제에서 행정 명령의 역사는 깊습니다.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후 모든 대통령이 사용했습니다.

다만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의 미국 대통령 프로젝트 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 모두 220건의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연평균 55건꼴입니다. 최근 다른 대통령보다 많습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연평균 40.5개, 오바마 전 대통령은 35개, 부시 전 대통령은 36개, 클린턴 전 대통령은 46개의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평균 307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연평균 116.6개의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물론 두 대통령의 임기는 2차 세계대전과 이후 한국 전쟁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빈도와 범위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한 이후 약 3주 만에 100개의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1기 때 4년 동안 서명한 것의 절반에 가깝습니다. 내용도 논란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의 시민권 부여 금지, 연방 지출 동결, 연방 기관 폐쇄 등입니다. 헌법이나 법률, 의회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인 레이철 오거스틴 포터는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내리는 것은 완전히 정상"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점은 행정 명령의 양과 도발적인 성격이고 이 가운데 일부는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과 의회 권한의 경계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막을 방법은 없을까?

대통령이 헌법 권한에 맞게 행정 명령을 내렸다면 의회가 이를 무효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행정 명령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의회의 예산 권한입니다. 미국의 예산안은 양당의 투표로 법률로 만들어집니다. 이때 행정 명령이 이뤄지는 데 필요한 예산을 부여하지 않는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불법 이민자 3만 명을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필요한 예산이 없다면 이뤄지기 힘든 정책이 될 겁니다.

미국 연방대법원(홈페이지 갈무리)

다른 방법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겁니다.

앞서 미국 법무부의 사이트에서 행정 명령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따른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에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집행이 정지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도 있습니다. 각 주에서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여러 법원이 출생시민권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 명령에 대해 헌법을 위반했다며 보류시켰고, 의회의 권한인 연방정부의 보조금과 대출금 지급을 중단하려던 결정에 대해서도 효력을 정지시켰습니다. 또 국제개발처(USAID) 직원 등에 대한 퇴직 프로그램도 시행이 일단 보류된 상태입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간판이 내려지는 모습

■ 결국 법원...그래도 거부하면?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징역 등의 제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보안관을 동원해 강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부 등에 이런 수단을 동원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삼권 분립에 따른 행정부와 입법부에 대해, 사법부의 결정은 선의의 협력을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법원의 판결이 행정부에서 항상 존중받았던 건 아닙니다.

1957년 '리틀록 위기'를 보면 대법원에서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아칸소주는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대를 투입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따르는 걸 거부한 적도 있습니다. 1832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조지아와 체로키족 간의 충돌에 체로키족의 주권을 보호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했습니다.

“부패한 판사가 부패를 보호하고 있다. 당장 탄핵되어야 한다”는 일론 머스크의 X(옛 트위터) 게시물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측도 벌써부터 자신들의 행정 명령에 대한 법원의 제동에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매우 정치적인 판사들이 (정부 정책을) 늦추거나 중단시키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판사가 행정부의 합법적 권한을 통제하도록 허용돼 있지 않다"고 했고, 머스크는 아예 연방 판사 탄핵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법학자들은 '헌법적 위기'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로스쿨 학장인 어윈 케머렌스키는 "임기 초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며 "이런 행위가 늘어날 것인데 이게 헌법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듯 존 로버츠 미 대법원장은 연말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정치권 전반의 선출직 공직자들이 연밥 법원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려 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시도는 비록 자주 일어나지 않더라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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