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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폐지 3년]
<상>현장의 좌절
장거리 컨테이너 화물 기사 김진영씨
"안전운임제 폐지 후 수입 큰 폭 감소"
"과적·과속 내몰려 안전 위협 증가"
운수사 다단계 착취 지표 악화도 확인
"운송 수수료 떼먹는 중간 착취 심화"

편집자주

안전운임제는 '화물기사 최저임금'으로 불린다. 기사들에게 적정 수준의 운송료을 보장해 과로와 과적,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2020년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 화물차에 우선 도입됐으나, 2022년 12월 31일 일몰제가 적용돼 폐지됐다. 안전운임제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총파업에 나섰던 화물연대도 정부의 폐지 정책을 막지 못했다. 안전운임제 폐지 3년째 접어든 현재, 화물차 기사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경기 의왕ICD(컨테이너 기지)에서 만난 화물차 운전기사 김진영(50)씨. 김씨는 2022년 안전운임제 폐지 이후 줄어든 수입을 채우기 위해 주7일 쪽잠을 자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고 전했다. 송주용 기자


지난해 말, 경기 의왕ICD(컨테이너 기지)에서 화물차 운전기사 김진영(50)씨를 처음 만났다.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저녁 부산에서 짐을 싣고 출발해 경기 김포에 들른 뒤 점심 무렵 의왕으로 들어왔다는 김씨는 "이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밤을 꼬박 새워 고속도로를 달렸고, 인터뷰가 끝난 뒤 1~2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부산으로 떠난다고 했다.

김씨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던 3~4년 전에는 이렇게 잔인하게 운전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었다"며 "업무량은 늘었는데 수입은 감소하고 물가는 치솟아 몸을 갈아 넣으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2020~2022년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에 도입됐던 안전운임제가 완전 폐지된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후속 대책이 지지부진한 동안 화물운송 시장은 4단계 배차 착취까지 부활하는 모습이다.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앞둔 2022년 11월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가 한산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일감, 건당 5만~33만원 운임료 줄어



안전운임제 체제에선 운행 거리와 화물 무게에 따라 화주가 운수사에 줘야 하는 '안전운송운임료'와 운수사가 화물기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안전위탁운임료'가 사전에 책정됐다.

2022년 기준 안전운임표를 보면 부산북항부터 경기 의왕 부곡동까지 385km 거리를 40피트(ft) 컨테이너를 싣고 운송할 경우, 화물기사는 94만9,800원을 의무적으로 받았다. 위험물을 운송했다면 위험물 수당 30%(28만4,940원)가 가산돼 123만4,740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같은 기준 구간·피트의 운임료가 평균 5만 원가량 줄었고, 위험물 수당과 각종 대기 수당도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의왕~부산을 오가는 물량 1건당 최소 5만 원에서 최대 33만4,740원까지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각종 보험료와 유류비, 생활비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안전운임제 폐지로 화물 운임료는 끝없이 추락하니 막막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돈보다 더 큰 문제는 쉴 시간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안전운임제가 있을 땐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 이틀 휴식을 취하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족한 수입을 채우기 위해 운전대를 놓을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화물기사들은 화물차랑 똑같은 인생"이라며 "평소엔 건강검진은커녕 아파도 참고 운전을 하다 고장나고 쓰러지고 나서야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느끼는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 김씨는 중학생, 초등학생 사내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다. 김씨는 "아이들과 고깃집에 가면 삼겹살과 된장찌개, 라면을 함께 시켜 먹는다"며 "수입이 줄어든 이후로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이려다 보니 배를 우선 채우려는 건데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의 한 달 달력을 살펴보니



그의 1월 월수입과 화물운송 비용 처리 내역을 살펴봤다. 김씨는 주로 부산과 의왕을 오가고 경우에 따라 충북 제천과 강원도로 화물을 나르고 있다.

한 달
매출은 1,300만 원 정도
나왔지만,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손에 쥐는 수입은 사실상 적자라고 주장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1월 기준 기름값 570만 원, 화물차 할부금 250만 원, 톨게이트 비용 78만 원, 요소수 60만 원, 각종 관리비 67만 원, 차량번호판 비용(지입료) 33만 원, 엔진오일 교체비 30만 원, 타이어 관리비 25만 원, 식비 60만 원 등 총 1,173만 원이 나왔다. 순수하게
김씨 손에 떨어진 돈은 127만 원
이었다.

2022년 충남 당진 현대글로비스 앞에서 파업 농성을 하던 화물연대 조합원이 화물차량에 부착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확대' 플래카드 앞을 지나고 있다. 그해 만료되던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하고, 전면확대를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뉴스1


김씨의 달력 겸 업무수첩에는
평일은 물론, 대부분의 주말과 휴일에도 운행기록이 빠지지 않았다.그의 하루 일과를 들어보자.
월요일 오전 6시 경기 안산 집에서 출발
해 의왕ICD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1시간 정도 배차 순번을 기다리다 물건을 싣고 부산으로 내려가면 오후 2시다. 물건을 내려놓고 대기한 뒤 다음 물건을 배차받아 출발하는 시간은 오후 8~9시.
의왕까지 달려와 물건을 내려놓으면 시계는 어느덧 새벽 1~2시
를 향한다. 이때 집에 들어가도 다시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화물차 운전석 뒤에 구비된 공간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음 날 새벽 다시 물건을 받아 일을 시작한다.

김씨는 "이런 경우는 그나마 배차가 일찍된 운수 좋은 날"이라며 "배차가 늦어져 오후에 잡힌다면 밤을 새워서 부산을 오가거나 휴게소에서 2~3시간 쪽잠을 자야 한다.
2시간 자고 운전대를 잡으면 눈알이 뒤집힌다
"고 하소연했다. 그는 "안전운임제라는 마지막 방어선이 사라진 뒤로는 일주일에 7일을 쪽잠을 자며 일하지만 수입은 도리어 한 달 평균 300만 원 정도 감소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화물연대가 지난해 7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폐지 이후 화물기사들의 수입은 평균 20~30% 감소
했다. 그런데 정부 산하 연구원과 노조의 통계는 둘 다 설문 기반인데도 차이가 커서 서로 불신이 높은 상태이다. 매년 '화물운송 시장 연간보고서'를 펴내는
한국교통연구원 자료를 보면, 화물차의 월수입과 순수익이 등락은 있지만 안전운임제 폐지 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원가 기준과 유가보조금 합산 유무 등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화물연대는 또 "화물차에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달고 있으면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이지만, 화주 요청으로 철강을 운송하기 위해 평탄한 트레일러로 교체하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정부 통계에는 이 같은 차이가 촘촘히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감 하나에 3개 운수사가 다단계 중간착취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 폐지가 전반적인 '다단계 배차 착취' 부활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고 우려한다. 25년 경력 화물기사 이성철(54)씨는 "안전운임제가 있을 땐 지급해야 할 돈과 정산 날짜까지 정해놓으니 3단계 넘는 다단계 구조로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면서 "지금은 운임료가 중간에서 자꾸 증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거의 모든 화물 차종에서 4단계 배차 착취가 증가(
표 참조
)했다. 화물 운송은 화주-운수사-차주로 이어지는 2단계 구조가 정상적인 형태이다. 3단계부터 돈만 빼먹는 중간착취가 끼어든다는 뜻이고, 4단계는 이런 중간착취가 두 번 발생함을 의미한다.

연구원이 파악한 화물 다단계 운송거래 사례 중에는 대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운송 자회사에 맡기면 운송 자회사가 협력 운수사에 하청을 주고 해당 운수사는 또 한번 하청을 준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이 화물운송 업계 다단계 구조를 이용해 계열사를 살뜰히 챙긴 모습이 고스란히 확인된 셈이다.

화물노동자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단계 운송구조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안전운임제 이후 5~6개씩 중간 운수사들이 달라붙어 수수료를 떼먹는 경우도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말했다. "소를 데려다 논밭에서 농사를 지어도 1년 365일 24시간 일을 시키진 않습니다. 최소한 안전망이 있어야 화물차 과적, 과속을 막고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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