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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정치 커뮤니티 접하는 학생 늘어
'총으로 다 쏘자' 등 왜곡된 발언 쏟아져
계엄·탄핵... 정치 교육 필요성 커졌지만
정치적 중립 의무에 수업 어려움 지속
"교육청이 나서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지난해 3월 경기 포천시의 한 초등학교 교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코리아타임스 심현철 기자


5년 차 초등교사 안모(28)씨는 6학년 학생들에게 12·3 계엄 사태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심 곤혹스럽다. 교사가 교실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오해를 살까봐 염려되기 때문이다. 안씨는 "교실 앞 복도에서 '탄핵'이란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수시로 들린다"면서도 "논란이 없을 객관적 자료와 역사적 사실만 간략히 일러줄 뿐"이라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한 후과로 구속기소되고 파면의 갈림길에 놓인 초유의 사태로 학생들이 계엄 관련 질문을 쏟아내자 교사들의 속앓이도 깊어지고 있다. 군과 경찰 수뇌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고 반헌법적 포고령을 내린 대통령 행위에 제대로 된 답을 해줘야 하지만 교사들 대부분은 부담감이 앞서 길게 얘기하는 걸 꺼리고 있다.

교직 사회에선 교사가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는 낙인이 찍힐까봐 걱정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교육기본법 제6조는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이 이용돼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도 교사의 정치 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교실에서 교사 개인의 편향된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로 제정된 것이지만, 해야 할 교육마저 간과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교원의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교사들은 적절한 교육 없이는 학생들이 현재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8년 차 초등교사 김모(31)씨는 "(계엄 선포에 대해) '전쟁 나는 건가요'라며 두려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게임하듯 '다 총으로 쏘자'라는 아이도 있었다"며 "계엄의 역사적 의미를 차근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단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탄핵 찬성해요, 반대해요"라고 묻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답하기 힘든 현실이 답답하다는 교사들도 있다. 안씨는 "'선생님은 말할 수 없어'라고 하면 '왜 말을 못해요'라는 학생들의 반문이 말문을 막히게 한다"고 털어놨다.

극우 유튜브 시청... 잘못된 인식에도 교정 어려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며 법원 담장을 넘어 들어온 청년들이 경찰에 붙잡혀 있다. 뉴스1


교단이 계엄 교육에 소극적인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는 유튜브와 정치 커뮤니티를 자주 보는 중·고교생들이 왜곡된 주장을 접할 위험은 커지고 있다.

고교 윤리 교사 유모(37)씨는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때 등장한 젊은 유튜버들의 영상을 학생들이 즐겨 시청한다"며 "남학생 대다수는 그런 유튜브로 뉴스를 접하니 교실에서도 극단적 발언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며 '군대를 더 투입했으면 계엄이 성공했을 텐데 아쉽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기교사노조는 최근 "비상계엄과 관련해 그 어떤 발언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관리자들이 있었다"며 "교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정치를 음성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수업 내용에 학부모들의 민감도가 높아진 것도 교사들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교사 김씨는 "과거 통일 수업을 진행한 동료 교사가 '종북 좌파냐'며 학부모 비난에 시달린 적이 있다"며 "국민 신문고나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사례가 반복되니 탄핵에 관한 학생들 질문에 '부모님께 여쭤봐'라며 답을 회피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교육 현장을 방관하지 말고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고 제언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육청이 방침을 배포하면 교사 부담이 줄고 학생들이 일관적인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남교육청이 지난달 16일 밝힌 '계엄령 역사'와 '헌법 읽기 자료' 개발 방침처럼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 당국이 적극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는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할 때가 됐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현재 법령은 교원의 정치적 발언을 과도하게 포괄적으로 제약한다"며 "학생들이 시사 문제를 토론하고 토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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