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재판 시민들의 방청기
윤석열 탄핵 심판 방청에 참석한 한 방청객이 방청권을 들고 있는 모습. 장현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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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기소된 상태에서 파면 여부를 심리하는 탄핵심판에 전국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온라인 방청 신청의 정원은 9명인데 지난해 12월27일 1차 변론준비기일엔 2만264명이 몰려 225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후 여섯차례 공개변론도 100 대 1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층이 많은 현장 방청인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윤 대통령에게 거듭 절망했고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다.
초등생부터 40대까지…저마다 심판정에 나선 이유
“법학과 학생인데 윤 대통령 쪽 변호인들이 어떤 얘길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지난달 16일 2차 변론에 방청을 온 대학생 차혜은(21)씨가 말했다. 차씨는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과 수첩을 들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대심판정을 찾았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쓴 책으로 법의 본질을 설명하는 책이다. 예비 대학생 김아무개(20)씨는 경남 진주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이번 수능 ‘정치와 법’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어요.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과 연관이 많잖아요. 그래서 한번 직접 보고 싶었어요.”
서울 은평구 초등학생 5학년 이아무개(12)군은 “평소 시위도 나가고 관심이 많았다”며 “지금 이 시대에 비상계엄이 터진 게 말이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서 온 예비 중학생 김규진(13)군은 “대통령이 대체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의문이 들어서, 직접 방청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두 초등학생 모두 어머니가 심판정 앞까지만 동행했고 각자 혼자 들어가 재판 상황을 경청했다.
김아무개(13)군이 헌재 방청을 오며 챙겨온 수첩. 장현은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달 21일 3차 변론을 방청하려고 대구에서 올라온 김유미(30)씨는 3년 전부터 윤 대통령 퇴진 집회에 꾸준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윤 대통령 퇴진 집회 등에 3년 동안 꾸준히 참석했는데 그 보상으로 방청도 당첨된 것 같다. 탄핵이 되는 과정을 똑똑히 보고 싶고, 대통령 변호인단의 궤변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2차 변론에 참석한 조태연(29)씨는 헌재 대심판정이 낯설지 않다. 대학생 시절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때에 이어 두번째 헌재 방문이다. 조씨는 “불과 8년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심판을 오게 된 현재 상황이 정말 아이러니”라며 “(윤 대통령 쪽에서) 부정선거와 관련된 내용들을 너무 많이 얘기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채지혜(38)씨는 두번이나 당첨돼 지난달 14일 1차 변론과 지난 4일 5차 변론을 모두 지켜봤다. 채씨는 “두번째 방청에서 윤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는데, ‘계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너무 황당하고 뻔뻔스러워서 듣다 보니 화가 많이 났다”며 “7시간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자리를 지키고 고생하는 재판관들과 변호인들, 방청석 시민들을 보면서 ‘정말 대통령을 잘 뽑아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이돌 팬들과 함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갔고 탄핵 재판까지 방청하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ㄱ(35)씨는 “그전까지는 정치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는데, 좋아하는 아이돌 팬들과 함께 탄핵 집회에 참석을 하면서 탄핵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헌재에 바라는 건…
지난달 21일 3차 변론 때 헌재를 찾은 윤아무개(41)씨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 “오늘 윤 대통령이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윤씨는 방청을 마친 뒤 “국민에 대한 사과는커녕 궤변만 늘어놓는 모습에 실망했다”며 ”그래도 실제로 보면 인간적인 면면을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뻔뻔한 모습들만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방청인 중에는 윤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이들도 있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30대 남성 ㄱ씨는 매주 주말 ‘광화문 집회’에도 참석한다고 했다. 지난 4일 5차 변론을 방청한 그는 “자영업자라서 오늘 방청을 위해 가게를 하루 닫으면 손해이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왔다. 나라가 많이 힘든 상황이니 이 정도 경제적인 건 감안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40대 여성도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왔다”고 말했다.
헌재에까지 찾아와 대통령 탄핵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의 바람은 ‘공정하고 상식적인 결정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내년부터 선거권을 갖게 되는 고등학생 이세연(18)씨는 “헌법재판소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있지는 않았다”며 “헌재가 객관적인 사실만 보고, 정의롭고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아무개(37)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며 “헌재는 해오던 대로, 휘둘리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아무개(26)씨는 “공정한 심판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서, 저는 희망이란 마음을 가지고 왔고, 그런 판결이 내려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탄핵 심판 방청을 위해 헌재를 방문한 대학생 차혜은(21)씨가 지참한 책 ‘권리를 위한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