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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시즌2]
⑭ '폭력 조직 온상' 돼 버린 스웨덴

편집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경찰의 범죄 현장 수색 장소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 출신 갱단(폭력 조직)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용납할 수가 없어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노르웨이 경찰은 스웨덴 폭력 조직이 저지르는 범죄를 심각한 문제로 여깁니다. 북유럽 시민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끼치고 있어요."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

지난해 10월 29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북유럽협의회.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스웨덴 갱단'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이날 회의의 주요 의제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스웨덴은 '북유럽 조직 범죄 온상'이라는 주변국들 토로에 고개를 숙였다. 대체 스웨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지탄을 받은 걸까.

'조직 폭력' 급증... 마약 거래·불평등 탓?



스웨덴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안전 국가'였다. 그러나 이제는 '위험 국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총기 사고 건수가 이를 증명한다.

독일 통계 기업 스타티스타 등에 따르면 2023년 스웨덴에선 363건의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에서 각각 일어난 사건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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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년 이후 스웨덴 내 총격 사건 건수가 300건 이하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스칸디나비아대 출판부가 지난해 발행한 북유럽범죄학저널에 소개된 보고서 '23개 유럽 국가의 총기 살인 추세-스웨덴은 예외일까요?'에는 다음과 같은 분석까지 담겼다. "스웨덴은 2005년 이후 남성과 젊은 성인(20~29세)에 대한 총기 살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유일한 국가다." 폭탄 테러도 못지않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에만 30건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게 스웨덴 경찰의 지난달 29일 발표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범죄자 수용 공간마저 부족하다. 해외 교도소 임대 방안까지 추진할 정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스웨덴 법무부는 "2033년 재소자는 2만7,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현재 수용 능력(1만1,000명)의 두 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2017~2023년 스웨덴 총격 사건 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스칸디나비아대 출판부가 지난해 발행한 북유럽범죄학저널에 소개된 보고서 '23개 유럽 국가의 총기 살인 추세-스웨덴은 예외일까요?'에서 제시한 그래프들. 오른쪽의 '총기 살인' 그래프를 보면 '2017년 스웨덴에서 100만 명당 약 4명이 총기로 인해 숨진 반면, 유럽 전체 평균은 100만 명당 약 1.6명 사망에 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2년 스웨덴에선 100만 명당 5.5명으로 사망률이 치솟기도 했다. 왼쪽 그래프는 2003~2017년 강력 사건 수 발생 추이로, 유럽 평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데 반해 스웨덴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탯, 세계보건기구(WHO) 등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북유럽범죄학저널 캡처


이러한 사건들은
대부분 '조직 폭력 범죄'로 분류
된다. 해당 범죄의 증가는 폭력 조직 증가·규모 확대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스웨덴 경찰은 약 6만2,000명이 스웨덴 범죄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추정한다.

폭력 조직이 날뛰는 이유를 두고는 여러 분석이 교차한다. ①일단 마약과의 연관성. 스웨덴에서 코카인 등 마약 수요가 증가하고 거래도 활발해지면서 여기에 발을 담그는 조직이 늘어났는데, 이에 따른 이권 다툼이 각종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세관에서 2022년 압수된 코카인은 822.12㎏으로, 2015년(80.43㎏)보다 10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②스웨덴 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소외·배제된 이들의 조직 범죄 가담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③이민자 또는 난민이 기존 사회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채 범죄로 빠져들었다는 해석도 많다. ②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비(非)스웨덴인'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차이가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이렇게 짚었다. "갱단 총격 용의자는 대부분 이민자 출신이다. 스웨덴 외곽·공영 주택에서 거주하는 이민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사회적 불평등이고, 이는 통합을 방해한다."

누군가 한 어린이의 어깨를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린 범죄 조직원도 다수"... SNS로 모집



문제는 조직 폭력에 연루된 가해자 상당수가 아동·청소년이라는 점이다. 스웨덴 범죄예방위원회(BRA)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갱단 범죄 용의자 중 15~20세 비율은 29.7%였다. 총기를 활용한 살인·과실치사 범죄로 좁히면 그 비율은 45.1%나 된다.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닌 15세 미만의 범죄도 적지만은 않다. '성인보다 약한 처벌을 받는 미성년자에게 범행을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조직의 수요,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사회·재정적 이득을 얻겠다'는 아동·청소년의 수요가 맞물려 빚은 현상이다. 스웨덴 경찰 국가작전부 수장인 요한 올슨은 지난해 10월 "임무(범죄)를 수락하는 사람들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 조직 내 미성년자의 '경험담' 내지 '무용담'도 언론에 자주 소개된다. 9세 때부터 갱단 활동을 하며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렸다는 아담(가명)의 스카이뉴스 인터뷰 발언은 이렇다. "이전에는 누군가를 죽이는 데 100만 크로나(약 1억3,280만 원)를 내야 했는데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누구나 죽일 수 있어요. 다리를 쏘는 정도면 5만 크로나(약 664만 원) 정도면 가능해요. 나는 그동안 100만 크로나 정도를 벌었어요." BRA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아동은 돈뿐만 아니라 쾌감, 사회적 인정, 소속감 등을 위해 범죄에 가담
한다.

'조직의 수요'와 '미성년자의 수요'는 대체 어디에서 만나는 걸까.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특히 텔레그램, 스냅챗, 시그널 등 암호화된 플랫폼은 '익명으로 범죄 제안'을 가능하게 해 조직 입장에선 부담이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치다. BRA 보고서도
SNS 확산 시점과 맞물린 '갱단 범죄 가해자의 연소화'
를 증명해 주고 있다. 2012년 갱단 범죄 용의자 중 15~20세 비율은 16.9%에 그쳤으나, 2022년에는 29.7%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총기 활용 살인·과실치사 범죄의 15~20세 비율 역시 23.6%에서 45.1%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과 돈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 당국은 특히 국경 바깥 조직이 SNS를 활용, 자국 내에서 조직원을 모은다는 점을 우려한다. 스웨덴 경찰청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범죄자 600명의 뿌리가 57개국에 분산돼 있다. 페트라 룬드 스웨덴 경찰청장은 지난달 14일 "외국 세력들이 SNS를 통해 미성년자를 모집해 이스라엘 대사관 등 특정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며 "재래식 수단과 비재래식 수단을 모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공격' 사례로, 전통적인 군사 방어 방식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밝혔다.

SNS 등으로 몸집을 키운
스웨덴 범죄 조직은 이제 주변국으로 '물리적 활동' 범위마저 넓히고 있다.
유럽 역내에서의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을 규정한 솅겐 조약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북유럽협의회가 '스웨덴 성토 대회'로 변한 배경이다.

'조직 범죄 대응' 칼 빼든 스웨덴

지난해 2월 스웨덴 정부는 '조직 범죄 대응을 위한 국가 전략'을 최초로 발표하면서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강력한 이민 정책을 바탕으로 경제 범죄, 조직 범죄, 아동 및 청소년 범죄 등 3개 축에 대한 감시 및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해당 전략을 설명하고 있는 스웨덴 법무부 홈페이지. 스웨덴 법무부 제공


스웨덴은 결국 조직 범죄 소탕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조직 범죄 대응을 위한 포괄적 전략을 스웨덴 역사상 최초로 마련한 것이다. 작년 2월 공개된 이 전략은 시민권 부여 기준을 높이는 식의 '강경한 이민 정책'을 근간으로, 처벌 및 예방 활동을 두루 강화하는 게 골자다. 군나르 스트룀메르 법무장관은 전락 발표 당시 이렇게 말했다. "조직 범죄의 파괴력은 사회의 너무 많은 부분에서, 너무 오랫동안 과소평가됐다.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조직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 방향을 중심으로 당국 및 행위자들을 모았고, 조직 범죄 예방을 위해 더 강한 능력을 창출하려 했다. 국가 차원의 전략을 통해서 문제를 분명히 직시하고 해결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며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에 대한 우선순위를 마련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세부 정책도 다수 발표됐다. 지난해 10월 법안 발의와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조직 범죄에 대한 익명 증언 허용'이 대표적이다. 조직 범죄 특성상 보복이 두려워 증언을 꺼리는 이가 많고, 이로 인해 조직 범죄가 계속 활개 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피고인은 어떤 혐의와 관련해 자신을 소명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감안, '익명 증언은 법원 재량에 따라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특히 정부는 아동·청소년의 조직 범죄 가담 예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15세 미만 어린이를 경찰이 감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올가을 발효'를 목표로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2026년 여름까지 준비하려 했으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 조직의 영향력이 지나치다는 판단에 따라, 목표 시점을 앞당겼다고 한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 소속 사회복지기관이 범죄에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더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경찰 등 다른 기관과의 협업 체계 마련, 인력 보충, 예산 확충 등도 추진하고 있다. 카밀라 발터슨 스론발 사회복지부 장관은 작년 11월 기자회견에서 "내년 여름 해당 조치가 발효될 예정이며 2028년까지 약 17억 크로나(약 2,257억 원)를 할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유럽 전문 매체 유락티브가 전했다. 나아가 특정 연령 미만의 SNS 사용 제한 조치 도입도 고려 중이다.

지난해 9월 덴마크 코펜하겐 법무부 청사에서 이곳을 방문한 군나르 스트룀메(왼쪽 두 번째) 스웨덴 법무장관과 덴마크 법무부 관계자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아동 및 청소년의 조직 범죄 연루 방지를 위한 양국 간 협력 방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코펜하겐=AFP 연합뉴스


스웨덴 조직 범죄의 '주변국 확산'을 막기 위해 북유럽 국가들은 범죄 예방·수사 공조 체계도 마련했다. 지난해 8월 스웨덴은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 경찰을 포함하는 '북유럽 경찰 허브' 설립을 발표했다. 역외 범죄 조직이 스웨덴에 손을 뻗치지 못하도록 SNS 단속 등 측면에서 유럽연합(EU)과의 협업도 강화할 방침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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