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가수 송대관 영결식…태진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 애도
9일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송대관 영결식에서 동료,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히트곡 ‘해뜰날’을 합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뜰 날 돌아 온단다…”
한때 전국민들의 희망가로 불렸던 송대관의 노래 ‘해뜰날’이 목멘 가수들의 합창으로 조용히 울려퍼졌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선 50년 넘는 세월 동안 친근한 노래로 대중들과 호흡해 온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이 열렸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태진아, 설운도, 박상철, 강진 등 동료와 후배 가수 70여명이 참석했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조사를 통해 “주옥같은 선배님의 노래들은 산업화 시대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원동력이 됐다”고 추모했다.
가수 송대관의 빈소가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생전 고인의 라이벌이자 막역한 후배인 가수 태진아는 눈물을 참으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형님은 항상 저에게 멘토였다.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방송하는 것도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이어 “치매를 앓는 제 아내가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외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면서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고 애도했다.
태진아와 설운도를 포함한 조문객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수 송대관의 발인에 참석해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지난 7일 오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며칠전부터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으나 이날 심장마비로 끝내 숨을 거뒀다. 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한동안 무명으로 지내던 그는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알리게 됐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는 희망적인 가사는 가요계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잘 살아보자’고 전국민이 고달프게 일하던 시절 국민노래이자 희망가로 사랑받았다. MBC 최고가수대상을 받는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내 찾아온 트로트 침체기로 생활고를 겪으며 미국 이민길에 오른다. 미국에서도 사업을 일궈 자리를 잡았으나 1988년 귀국 해 발표한 ‘정때문에’를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그는 ‘네가 뭔데’ ‘차표 한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박자’ ‘유행가’ 등 꾸준히 히트곡을 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1년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8~2010년 대한가수협회장 재직 당시엔 일본 노래방에서 한국 가요가 무단 사용되는 것에 대해 현지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고인은 같은 시기 활동한 가수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특히 태진아와는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방송에 자주 함께 출연했고 합동 공연도 했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2020년 위궤양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 태진아가 ‘쉬다 오라’며 수천만원의 돈을 줬다”는 일화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지난달 19일 방송된 KBS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한 것이 마지막 방송이 됐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