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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대미 외교에서 첫 합격점을 받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지난 7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인상이나 관세 인상 언급을 사전 방어하며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와의 밀월 관계를 유지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유산 덕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가 이시바 정권의 안정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시바 총리는 9일 오전 NHK에 출연해 이틀 전 정상회담에서 ‘미·일 황금시대’를 명기한 공동성명 등 자신의 방미 성과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방위비 인상 요구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재계가 우려하던 관세 인상에 대해서도 이시바 총리는 “구체적으로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우방이자 동맹인 일본을 100% 방어하기 위해 미국의 억지력을 총동원하겠다”는 발언을 끌어내는 등 조 바이든 행정부와 구축해온 미·일 동맹 강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성과’로 피력한 셈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이시바 총리가 노린 건 트럼프 2기 정권에서도 경제와 안보 등 ‘굳건한 미·일 동맹’이 건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시바 총리는 회담 한 달 전부터 트럼프 대책을 위한 공부 모임을 가지는 등 정성을 쏟았다. 일례로 외무상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물론 외무성과 경제산업성 간부들이 참석해 '트럼프식 사고방식'에 맞춰 문답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가 했던 것처럼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일무역 적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표로 정리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만 7종의 자료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과외’도 주저치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취임식 전에 만난 손정의(일본명 손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물론,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를 만나 “결론부터 말하라”는 ‘간결 화법’ 조언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은 총리’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감을 보여온 아베 전 총리의 통역 담당인 다카오 스나오(高尾直) 일미지위협정실장까지 통역으로 재등판시켰다. 이시바 총리는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쇼군’에 착안해 직접 자신의 고향인 돗토리(鳥取)현에서 금빛 사무라이 투구를 제작해 선물로 준비하기도 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 뒷편에서 다카오 스나오 일미지위협정실장이 통역을 하고 있다. 다카오 실장은 아베 전 총리 시절 통역을 맡아 당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작은 총리'로 불리기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이런 이시바 총리의 노력 덕에 1시간 50분간의 회담은 시종 화기애애했다. 이시바 총리는 회담 전 백악관의 국빈 응접실인 옐로우 오벌룸(Yellow Oval Room)에서 지난해 7월 대선 과정에서의 피격 사건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이 택했다”는 칭찬을 했다. 이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가 이시바 총리를 높이 평가했다”며 이시바 총리에 대해 “강한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일본의 대미 투자를 1조 달러(약 1457조원)까지 늘리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도 더 많이 수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산 LNG를 수입하기로 한 데 대해 “기록적인 숫자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중국의 경제 침략에 맞서기 위해 더욱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양자컴퓨터,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과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해온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매수가 아닌 고액을 투자하는 데에 합의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일본의 대표 기업인 일본제철이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US스틸을 인수하는 것엔 반대하지만, ‘투자 형태로 새롭게 접근하겠다’는 일본 측 제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 기술을 더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 일본, 미국,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US스틸 제품이 나오는 것에 일본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진집을 들여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일 양국 정상의 첫 대면식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끝났지만 과제는 만만치 않다. 먼저 관세다. 관세 폭탄은 피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일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자동차 등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마이니치신문은 “‘관세맨’을 자칭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물러날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건도 마찬가지다. 마이니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일본제철 수뇌부와 회담할 전망이지만 일·미 양 정부와 양사 사이의 인식이 다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제철은 인수가 아닌 투자라는 점에 대해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정치적인 과제도 남아 있다.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 수준으로 ‘신뢰 관계 구축’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40분에 달하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섯 차례나 아베 전 총리를 직접 언급했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아베의 유산이 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가 평소 미·일 지위협정 개정 등 대미외교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이시바 총리의 오랜 지론인) 미·일 지위협정 개정은 공동성명 및 회견에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등의) 미군기지 부담을 경감시키고, 동맹을 한층 안정화하기 위해서도 개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안을 포함해 솔직히 대화하지 않는다면, 참된 신뢰 관계나 동맹 강화로는 이어질 수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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