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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민 교수 '아들 구출기' 화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 인식 근원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정말 순식간에 내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교육시켜놓은 아들은 극우 유튜버에 빠지게 되었다.'권정민 서울교대 교수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가 쓴 '내 아들을 구출해왔다'는 제목의 글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진보적 교육학자인 권 교수가 아들을 인권감수성이 높은 남성으로 키우기 위해 매진했으나, 아들이 중학교 즈음부터 극우 유튜버들의 인식을 학습하고 또래의 영향을 받아 '우리 사회는 남자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 교수가 수개월간 아들과 끊임없는 토론을 벌인 끝에 극우 유튜버들이 심어놓은 사상에서 '아들을 구출했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극우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 젊은 남성과의 대화 방법을 고민한 부모 세대에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한편에선 아들의 질문에 '극우' 딱지를 붙여놓고 부모가 정한 답을 강요했다는 비판도 컸다. 그러나 비판하는 이들 중에도 "요즘 10·20대 남성들이 유튜브와 또래 집단 영향을 받아 보수화하는 경향은 사실"이라며 우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남성의 보수화는 탄핵 시위 국면에서 '응원봉 시위'를 주도하며 전면에 등장한 젊은 여성들과 대비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서 체포된 시위대 절반 이상이 2030 세대로 파악되자 이들의 급진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학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젊은 남성 보수화의 기저에는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자 인식이 깔려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최근 연구 결과와 전문가 분석 등을 토대로 그간 논의에서 나온 젊은 남성의 보수화 원인을 알아봤다.

20대 남성 80%가 "남성 차별 심각"

공수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임박한 가운데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을 응원하는 지지자들의 화환이 세워져 있다. 뉴스1


"민주당의 입법 독재에 반대한다. 이번에 예산을 감액하면서 민주당이 청년 일자리 예산도 감액했다."(28세 남성) "자유민주주의는 부의 이동을 지지한다. 그런데 좌파는 부의 이동이 아닌 분배를 이야기해서 지지하지 않는다."(26세 남성)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우파 유튜브인 신남성연대와의 인터뷰에서 집회에 나온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20대 이하, 30대 남성들의 윤 대통령 탄핵 찬성 비율은 각각 53%, 62%로 국민 전체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전체 젊은 남성의 의견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청년 일자리 문제, 부의 이동 문제 등 자신의 경제적 위치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
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경제적 불안감에 더해 사회적으로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인식도 젊은 남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021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20대 남성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가'라는 질문에 38%만 동의한 반면,
'남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가'는 질문에는 78.9%가 동의
했다. 30대 남성도 70%가 남성 차별이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이 같은 인식은 지난 대선에서 2030 남성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 행위로 연결
됐다. 2022년 1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남성 64%가 찬성했고, 여성은 47.1%가 반대했다. 연령별 여가부 폐지 찬성 비율은 남성 18~29세가 60.8%로 가장 높았다. 그해 대선은 20대 이하 남성 58.7%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20대 이하 여성 58%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준 성별 표심이 극명하게 갈린 선거였다.

2023년 8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사거리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여가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부모보다 못 산다' 느낀 남성, 더 차별받는다 인식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더 차별받는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인가
? 사회학자인 김조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스쿨 교수는 최근 '한국 남성의 피해자 남성성 이데올로기: 경제적 어려움인가, 지위하락인가?', '남성의 적대적 성차별 지지 증가와 감소: 한국 설문조사 사례' 두 논문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했다.

김 교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KDI 스쿨 등에서 수행한 복수의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2015년, 2018년, 2020년, 2023년에 수행된 각각 20~50대 1,200~8,917명의 한국 남성 대표 표본으로 구성된 데이터를 사용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지나쳐 남자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등의 질문을 던지고 남성의 교육수준, 임금수준, 비정규직 여부, 실업 상태, 자신이 인식한 부모의 계급 수준 등의 변수를 통해 답변을 분석했다.

그 결과 김 교수는 "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나'의 지위가 낮아진 남성이 더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남성을 사회적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짙은 경향이 나타났다
"고 밝혔다. 부모가 현재 내 나이였을 때보다 지금 나의 위치가 더 낮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차별받는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
특히 중상류층 출신 남성들에게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고 지적했다. 실업상태, 비정규직 여부 등 객관적인 경제 지표는 남성의 피해자 의식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여성혐오' 집회가 열린 가운데 다른 한 켠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징병제, 전통적 가족상 잔존 등 한국적 특수성도



김 교수는 "'부모세대보다 내가 못한 것 같다'고 응답한 스페인이나 미국 남성에게선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병역의 의무와 반페미니즘 정서, 전통적 가족구조의 잔존 등 한국의 특수성이 반영
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결혼적령기로 꼽히는 30대 남성 미혼율은 60%를 육박하지만, 결혼을 필수적인 생애과정으로 인식하는 미혼 남성들은 오히려 더 늘어나
는 등 모순이 크다.

2023년 기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미혼율은 59.7%에 달한다. 30대 여성 미혼율은 42.2%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4 사회조사'에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미혼 남성의 비율이 41.6%로 나타나 2년 전 조사(36.9%)보다 4.7%포인트나 늘어났다.
미혼 여성은 2년 전 조사(22.1%)보다 3.9% 늘어난 26%만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
했다. 성별 격차는 15.6%포인트로, 2년 전(14.8%포인트)보다 커졌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는 이한 작가는 지난 3일 사회공공연구원 주최로 열린 '탄핵을 넘어, 함께 만들어갈 세계'의 토론회에서 "지금 청년 남성들은 구시대적인 가치관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제 주변
어떤 남성도 '4인 가족을 부양하는 1인 생계부양자'를 꿈꾸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계속해서 그런 (전통적인 성역할에 기반한 남성)상을 그려낸다
"고 지적했다.

그는 "연애 예능만 봐도 '육각형 인간(외모, 성격, 학력, 직업, 자산 집안 등 모든 값이 빠짐없이 평균 이상 하는 인간)'이라며 '알파메일(집단 내 우두머리 수컷)'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하는 30대 남성인 저의 SNS에도 여전히 알고리즘에 의해 근육질의 남성들이 '너 누워 있지말고 나가서 돈 벌어'라고 하는 등 저를 혼내며 가부장적 가치관을 계속 주입한다"고 말했다.

"병역 등 남성 겪는 구조 문제 논의해야"

모병제추진시민연대 회원들이 2022년 8월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징병제 폐지 및 모병제 전환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젊은 남성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문제가 여성이나 진보적 의제가 아닌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밝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기성세대와 비교해 가진 게 없는 1020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성별 그 자체를 '계급'으로 만들어 우월성을 복원하고 싶어한다"며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만든게 아닌데 페미니즘이 여성 인권만 향상시킨다는 방향으로 인식해, 남성들이 차별 받는다며 실망한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에 점진적 모병제 논의도 나왔듯이 앞으로도 구조적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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