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일제강점기인 1942년 2월, 일본 바다 밑 해저 탄광에서 일하다 바닷물에 잠겨 목숨을 잃은 조선인 136명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83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여전히 바닷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달 31일부터 2박 4일간 희생자들이 동원됐던 뱃길을 따라 참사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 일본의 야마구치현이라는 곳에서 탄광 일을 하고 있어요. 바다 밑에 갱도가 지나고 있어서, 어선들의 통통거리는 소리도 들려올 정도로 매우 위험한 곳이에요 .(...) 경비도 삼엄하고 일절 자유도 없고 외출은 엄두도 못 내는 구속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폭력을 가하고 밥도 주지 않고 굶기는 일도 허다합니다."

- 일본 장생 해저 탄광 강제 노동자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유가족 증언 자료집 中)

■ 일제 탄광에 강제 동원…죽어서도 못 돌아오는 사람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토코나미 해안 ‘장생 탄광’ 피아(배수·배기구)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12시간을 항해해 도착한 일본 시모노세키. 그곳에서 다시 차로 1시간을 더 달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한 어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 해안가에서 100m 떨어진 바다 위에는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탄광에 물과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배수·배기구(피아)로, 그 밑은 일제 강점기 해저 탄광 '장생 탄광'이었습니다.

1932년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장생 탄광은 갱도가 지나는 지층 두께가 당시 일본법이 규정한 40미터보다 얇아 바닷물로 인한 누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장생 탄광의 표면 지층(30m)과 갱도 지층(7m) 모두 당시 일본의 법정 기준보다 얇았다

최악의 노동 조건으로 일본인 노동자들마저 외면하면서 노동자 70~80%가량이 조선인들로 채워졌습니다.

1936년 10월부터 3년간만 해도 조선인 천3백여 명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현/ 장생 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장
"삼촌의, 숙부님 나이가 19살이었거든요. 그 시절에 나라 잃고 어려웠잖아요. 꼬임에 넘어가서 일본 사람한테 강제 동원되다시피 한 거죠. 징용이잖아요. 와서 참 노동력을 혹사당하는데 노예 이상으로 당하니까..."

그러다 1942년 2월, 수압을 견디지 못한 갱도 천장이 결국 무너지면서 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찼습니다.

당시 작업자 183명이 탄광에 갇혀 산 채로 수몰됐는데 이중 조선인이 136명, 약 74%에 이릅니다.

그러나 사고 직후 2차 재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갱도 입구는 폐쇄됐고, 이후 국가 차원의 사건 수습이나 진상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조선인 136명 숨졌는데…한일 정부 대신 시민단체가 나서

잊혔던 수몰 사고는 1976년 일본 지역 향토 사학자였던 야마구치 다케노부(2015년 사망) 씨가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는 1991년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과 함께 '장생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새기는 모임은 희생자 명부를 확보해 호적상 한국 주소로 일일이 편지를 보냈고, 편지를 받은 후손 몇몇이 1992년 '장생 탄광 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를 발족했습니다.

또 시민 모금을 벌여 2013년 추모비를 세운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해 참사 직후 폐쇄됐던 탄광 갱도 입구까지 찾았습니다.

장생 탄광 갱도 입구 앞에서 민간 잠수부가 수중 조사에 나서는 모습

이 같은 민간 차원의 노력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유골의 위치와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유해 조사가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대형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보상 논의는커녕 사과조차 없습니다.

조덕호/ 장생 탄광 한국 추모단장(대구대 명예교수)
"사실은 이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일본 정부의 특성이 '냄새나는 곳은 덮어라'입니다. 그래서 갱도 입구가 무너졌으면 그거를 찾을 생각을 안 하고 덮어버려서.. ."

우리 정부의 오랜 무관심이 일본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조덕호/ 장생 탄광 한국 추모단장(대구대 명예교수)
"국가의 존립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지 국민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83년 전에 수몰된 국민들을 지금까지 찾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정부도 마찬가지고 국가의 존립 이유를 잊어버린 겁니다."

■ 광복 80주년, 국회도 나섰는데…

다만 참사가 점차 알려지면서 국회에서도 한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최근 논평을 내고, "이들 삶의 마지막을 조사하고 수습하는 것은 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최소한 해야 할 일"이라며 "더 늦기 전에 일본 정부가 대응할 것을, 그리고 한국 정부가 적극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생 탄광 수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김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에는 한일 정부가 협력해 수몰 사고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 유해 발굴과 봉환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김준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장생 탄광 문제는 여야 간의 정쟁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국회에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이 문제에 대한 진정 어린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재진은 일본 시민단체 '새기는 모임' 주도로 진행된 '장생 탄광 83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했는데요.

이번 추모식에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를 대표해 행정안전부 김민재 차관보가 참석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표는 없었지만 일본 전현직 중의원과 참의원, 지자체 관계자 등이 참석해 애도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일본 현지 언론들 역시 큰 관심을 보이며 취재·보도를 이어갔습니다.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수교 60주년이기도 한 올해, 이제는 잠들어 있던 희생자들의 슬픔을 달래고 아픈 역사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우리 국민의 지속적 관심 역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장생 탄광 유골 발굴 조사 사업 크라우드펀딩]
http://for-good.net/project/1001424

[연관기사]
①강제 동원의 아픈 역사...부관연락선 바닷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7134
②탄광에 수몰된 조선인 136명...대구.경북 출신 다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8296
③80여 년 만의 수중 조사..."한.일 정부가 나서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9545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네이버,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431 트럼프發 관세전쟁, 내주 ‘다수 국가 상호관세’ 현실화 랭크뉴스 2025.02.09
44430 '또' 군대 가혹행위…"비명 지르면 더 맞는다" 병사 여럿 때린 부사관 '벌금형' 랭크뉴스 2025.02.09
44429 트럼프, '韓세탁기 관세' 홍보했지만…"美소비자부담 크게 늘어" 랭크뉴스 2025.02.09
44428 '킹달러', 빅테크 실적 압박…'주가 부담' 美증시 위협요인 부상 랭크뉴스 2025.02.09
44427 "민주당 망하는 길" 비명계 향한 유시민 독설에…고민정 "입틀막은 오래전부터" 랭크뉴스 2025.02.09
44426 가자서 491일만에 풀려난 인질에 가족 몰살 소식…"또다른 고문" 랭크뉴스 2025.02.09
44425 1158회 로또 1등 21명 ‘13억9000만원’…자동 배출점 12곳 보니 랭크뉴스 2025.02.09
44424 美법원 "재무부 결제시스템에 접근 안돼"…머스크 DOGE 제동 랭크뉴스 2025.02.09
44423 "이러다 큰일 날라"…지구 휘감은 '이것', 항공기 충돌 사고로 이어질 수도 랭크뉴스 2025.02.09
44422 동료가 엉덩이 밀어줬다?…첫 금메달 딴 린샤오쥔 '반칙 논란' 랭크뉴스 2025.02.09
44421 與 “이재명 ‘개딸 동원’ 급한가”… 野 “당원에 보낸 문자” 랭크뉴스 2025.02.09
44420 "NYT 구독 끊어!" 트럼프, 비판적 언론 손보나…뉴스 구독 해지 랭크뉴스 2025.02.09
44419 "악마같은 사람" 구준엽 분노의 글, 서희원 전 남편 저격했나 랭크뉴스 2025.02.09
44418 '계엄사령관'이었는데‥설 상여까지 꼬박꼬박? 랭크뉴스 2025.02.09
44417 대통령 책상 앉은 머스크 사진에…트럼프 "타임지 아직도 영업?" 랭크뉴스 2025.02.09
44416 "박박 문질러야 닦은 거 같은데"…'분노의 양치질' 했다가 '암' 걸린다고? 랭크뉴스 2025.02.09
44415 "스펙보다는 외모 봐요"…연애도 결혼도 안 하는데 '나는솔로' 즐겨 보는 속사정 랭크뉴스 2025.02.08
44414 계주처럼 엉덩이 쓱 밀어줬다…500m 金 린샤오쥔 반칙 논란 랭크뉴스 2025.02.08
44413 당신은 치매 걸릴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txt] 랭크뉴스 2025.02.08
44412 쇼트트랙 린샤오쥔, 반칙으로 金 땄나… '밀어주기 논란' 랭크뉴스 20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