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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라



‘잘될 거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마음이 삐뚤어진 날이면 잘되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결국은 우리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믿음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가진 낙천성과 대책 없음이 가끔씩 야속하다. 어쩌면 언어에도 배터리가 있어서 어떤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이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주 낙담하고 수시로 절망을 경험하기 쉬운 요즘 같은 날은 더더욱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무력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 아직 닳지 않은 말이 있다. “붐은 온다.” 이 문장에는 신선한 에너지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망이 뭉근하게 끓어오른다. ‘붐은 온다’는 전성기가 지났거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무언가가 영광을 누리길 바라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밴드 붐은 온다’(밴드 음악을 지지하는 동명의 인스타 계정이 밴드 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처럼, 비주류 장르의 진가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랄 때 사용한다. 작년부터 록 페스티벌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자 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록의 붐은 온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쳤고, 국제도서전의 인기부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 ‘문학 열풍’에 애서가들은 ‘독서의 붐은 온다’며 설레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영광의 시간을 염원하는 문장 ‘붐은 온다’. 응원 같기도 또 예언 같기도 한 이 말이 내게는 ‘문학은 앞으로 잘될 거야’라든가, ‘록은 언젠가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건 ‘붐이 온다’라는 말이 그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신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조카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건네는 ‘잘될 거야’ 같은 명절용 덕담이 아니다. 내가 응원하는 대상이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지, 어찌나 매력적인지 한 톨의 의심도 없을 때만 가능한 믿음의 언어다. 그 매력을 나만 알 수는 없어서 세상을 향해 분출할 수밖에 없는 외침이다. 꽃이 필 가능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너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그 향기에 사람들이 결국 매료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 ‘붐은 온다’는 말랑한 격려가 아니라 열렬한 고백의 언어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취향의 서랍 속에 넣어두고 혼자 꺼내 본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것이 제대로 가지를 펼칠 수 있도록 빛을 찾아준다. 둘 다 아름다운 사랑의 방식이지만 내가 닮고 싶은 것은 후자의 정서이며, 그 정서가 ‘붐은 온다’라는 말에 녹아 널리 퍼지고 있다. 재촉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상대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이 용맹한 외침이 요즘 사랑 고백의 언어다. 진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서만 ‘붐은 온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제 이 고백의 언어를 나에게 하고 싶다. 잘될 거라는 외침이 막연하게 들릴 때 내게 필요한 건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를 향한 확신이다. 중요한 건 ‘붐은 올 것이다’가 아니라 ‘붐은 온다’라는 현재형의 문장. 오지 않은 날을 기다리는 대신, 이미 지금까지 버텨온 나 자신을, 하루하루 쌓아온 지난 시간들의 가치를 믿어주는 것. 활짝 만개하는 것이 마땅한 스스로를 위해 ‘나의 붐은 온다’는 고백을 들려주고 싶다. 고백은 관계의 맥락을 바꾸니까, 이 고백 덕분에 나는 나와 더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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