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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충남 당진 면천읍성 한 바퀴
| 당진 | 글·사진 김정흠 여행작가

1439년(세종 21년) 11월에 건설돼 조선 후기까지 충남 서해안 방어의 중심축 구실을 한 면천읍성.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벽 안쪽에 자리한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1960~1970년대의 우리나라 어딘가를 지나는 듯하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골목, ‘다이애건 앨리’의 한국 버전쯤인 것만 같다. 성벽 위에 올라 마을 전체를 조망하면 더욱더 그렇다. 면천은 꽤 유서 깊은 지역이다. 1913년까지만 해도 면천군이라는 별도 행정구역이었던 곳이자, 충남 서해안 방어의 중심축 중 하나인 면천읍성이 자리했던 곳이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이 이곳의 호족으로 유명했으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군수로 부임한 적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면천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인 장소로만 치부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적게는 50여년, 많게는 100여년의 세월을 겪은 옛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달까. 그러니, 약간의 설렘을 갖고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예상치 못한 공간들이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을 것이다.

천주교 박해·동학농민혁명…역사의 현장에서

아무리 50여년 전 감성을 오롯이 품고 있다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이야기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읍성의 성곽이니까.

면천읍성은 1439년(세종 21년) 11월에 쌓은 평지읍성이다. 서해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대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자연석으로 견고하게 쌓은 이 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 지역의 군사 및 행정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60년 전 지은 가정집 건물을 활용한 독립서점 오래된 미래.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사업 진행 중인 ‘읍성’

성안 마을은 50여년 전 골목 같은 정겨운 풍경


100살 넘은 우체국 건물 ‘동네사랑방 카페’로

60년 된 가정집은 아기자기한 ‘독립서점’으로

옛 추억 나눌 색다른 공간 둘러보는 재미 쏠쏠

주민들이 만든 대숲바람길도 초록빛 힐링 선사


이토록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다.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현장 중 하나였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전투 중 하나가 이 근방에서 치러졌다. 규모가 상당하다. 치성과 옹성을 더한 전체 둘레는 약 1.5㎞에 달하는데, 이는 순천 낙안읍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낙안읍성처럼 성곽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각지의 다른 읍성이 그러하듯이 제 기능을 상실한 이후에는 유실되거나, 일부 구역이 철거되어 간신히 형태만을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을 진행해 당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일단, 남문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객사인 조종관, 관아의 문루였던 풍락루, 작은 정자인 군자정 등을 복원하기도 했다.

동문 쪽으로는 면천향교와 연암 박지원이 조성했다는 골정지를 찾아볼 수도 있다(작년, 이 골정지는 벚꽃 명소로 급부상해 수많은 상춘객이 다녀가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성벽을 복원하고, 전통 가옥을 지어 성안마을까지 만들 계획이 있단다.

우체국에 배달된 카페와 미술관

면천읍성마을의 전부를 복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더 바라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옛 모습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면천읍성이 본래의 기능을 했던 시간대와는 약간 다르지만 말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보아야 할 공간들은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다.

‘미인상회’가 대표적이다. 미인상회는 일제강점기 때 우체국이 들어서 있었던 건물에 자리를 잡은 카페다.

일제강점기 때 우체국이었던 건물에 차린 카페 미인상회.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곳에는 옛 우체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물 내부 구조부터 예사롭지 않다. 작은 창구를 통해 우정 업무를 보았을, 100여년 전 모습이 상상으로나마 그려지는 듯하다. 이태원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화기, 낡은 우체통이 묘하게 시간 여행을 돕기도 한다.

어릴 적 입에 달고 살았던 간식거리 중 하나를 고르고, 음료 한 잔을 골라 자리에 앉아보자. 이왕이면 엽서도 하나 구매해보는 것도 좋겠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엽서에 소소한 이야기를 끄적인 뒤, 우체통에 넣어보는 거다. 놀랍게도 카페 측에서 매월 마지막 날에 원하는 주소지로 편지를 부쳐준다. 일종의 ‘느린 우체통’인 셈이다.

‘면천읍성 안 그 미술관’ 또한 면천의 우체국이었던 건물을 마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텅 빈 건물을 말끔하게 정돈하고, 앞마당과 작은 숲을 조성해 오가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꾸며두었다. 지역 예술가의 작품을 종종 전시하거나, 소소한 행사를 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고.

내일의 가능성이 적재된 공간

‘면천창고’는 농협의 창고였던 건물이다. 마을 내에서는 꽤 큰 규모인 축에 속하는 건물이라, 리모델링 후 청년창업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최근 2년간 지역 내에서 재배한 모과와 여러 농산물을 활용해 디저트를 만드는 카페 ‘모가당’이 입점해 있었다. 현재는 사업 종료로 인한 운영 중단 상태이지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인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과거 농협의 창고였던 청년창업공간 면천창고.


60여년 전에 지었다는 2층 가정집 건물에는 독립서점 ‘오래된 미래’가 들어서 있다.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동명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이 서점에는 환경 보호를 주제로 한 다양한 서적이 매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립출판물도 상당수 갖추고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한데, 비밀스러운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꽤 매력적이다. 마을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조심스레 책방지기에게 말을 걸어보자.

주민들이 선물한 대숲바람길의 휴식

면천읍성마을 내에는 비밀스러운 공간도 있다. 대나무 숲이다. 객사 너머, 영랑효공원 뒤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바로 대숲바람길로 이어지는 통로다. 마을 주민들이 방문객에게 색다른 휴식을 선물하고자 만든, 발상이 꽤 귀여운 숲이다.



대나무 가지들이 하늘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높이 솟았다. 숲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담한 공간이지만, 오솔길을 걷는 내내 산속 깊은 곳을 거닐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다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반짝이고, 바람결에 따라 자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을 마주하면 자연스레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한다. 곳곳에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잠시 앉아 눈을 감고, 대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105년 후에 세워진 만세운동기념관

대숲바람길로 들어가는 영랑효공원 입구에는 큰 기념비 하나가 눈에 띈다.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비석이다. 1919년 1월21일에 승하한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설이 퍼지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3·1운동의 불씨가 타올랐던 시기와 맞물린다. 3·1운동 직후 전국이 그러했듯이, 이곳 면천읍성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시작은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원용은이었다. 고종의 장례를 보기 위해 상경했던 그는 3·1운동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남 최초의 학생 독립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교 선배 강선필의 주도 아래, 박창신, 이종원, 박성은 등과 함께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제작하고 ‘독립운동의 노래’를 등사판으로 인쇄하는 등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면천읍성 동문 밖 송림에 전교생을 모은 뒤, 면천주재소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는 시점이었던 터라 일제 경찰의 강경 대응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원용은과 그 친구들은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2024년 1월2일에 개관한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은 충남 지역 최초의 학생 주도 독립운동으로 알려진 이들의 행적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 봄을 기다리는 여행 팁! 콩국수 거리



면천읍성마을 봄 여행을 계획한다면 유용한 정보 하나! 이곳에는 수상하리만큼 콩국수 전문점이 많다. 면천콩국수, 초원콩국수, 에이스식당, 김가면옥, 옛날그집 등 작은 마을에 콩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여덟 곳이나 있어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콩국수 거리’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집마다 쓰는 콩의 종류도, 제면이나 콩국물을 만드는 방식도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곁들여 내어주는 김치 등 반찬의 맛 또한 각자의 매력이 쏠쏠하다. 연중 콩국수를 판매하는 식당도 있지만, 보통 겨울에는 콩국수 대신 칼국수, 닭개장 등 계절 메뉴를 내놓는다. 하지만 콩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사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라고. 머지않아 다시 맛있는 콩국수 시즌이 돌아온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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