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대만 소설가 천쉐 장편소설 '마천대루'
고층 아파트의 다양한 인간군상 묘사
"사회 현상 녹여내는 글쓰기 좋아해"
대만 소설가 천쉐. ⓒChen Xue 인플루엔셜 제공


“그 사람이 죽을 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만 소설가 천쉐는 장편소설 ‘마천대루’에서 경비원 ‘리둥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인근의 초고층 아파트 마천대루에서 여성 ‘중메이바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아파트 입주민이자 상가에 위치한 카페 매니저인 그는 빼어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모두에 호감을 사는 인물이었다. 소설은 이 아파트와 얽힌 여러 인물의 진술을 통해 메이바오의 죽음을 파헤치면서도 범인보다 ‘증언자’의 삶 자체에 무게를 둔다.

모두가 사랑하는 '불행한' 여자

마천대루·천쉐 지음·인플루엔셜 발행·484쪽·1만8,500원


소설의 배경은 한때 “천하를 군림하는 하늘 도시”를 목표로 세워진 지하 6층, 지상 45층 규모의 아파트 마천대루다. 1,200가구가 거주한다. 대만 중부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난 메이바오는 수시로 남편이 바뀌는 엄마를 따라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마천대루로 들어온다. 마천대루에는 부동산 중개인 ‘린멍위’, 로맨스소설 작가 ‘우밍웨’, 주부 ‘리모리’와 그의 남편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린다썬’ 등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직업과 배경,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고가의 고급 차량을 타는 주민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쓰레기 더미에서 폐품을 줍는 주민도 있다.

메이바오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공존하는 사회의 축소판인 마천대루에서의 자신을 “절대로 연결이 불가능한 두 세계를 잇는 중간 매개체”로 여기며 부유한다. 주변인들은 모두 여동생이나 연인처럼 그를 아꼈다. 주변인들은 계부의 도박 빚으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메이바오가 “미모에 어울리는 삶”을 살길 바라면서도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부동산 중개인 멍위는 메이바오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고 공실인 그의 옆집 배기구를 통해 침입한다. 다썬은 메이바오와 바람을 피운다. 다썬은 어린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메이바오와 재회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부잣집 딸인 모리와 헤어질 생각은 전혀 없다.

살인범 찾기 아닌 인생 이야기

고층 빌딩의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범죄 추리 소설에서 범인과 관계없는 말은 으레 힘이 빠지기 마련이나, 마천대루 속 개개인의 독백은 흡입력이 상당하다. 차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된 경비원 ‘셰바오뤄’는 매일 오전 4시 30분 아파트 로비에 등장하는 휠체어를 탄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메이바오의 이웃인 ‘우밍웨’는 광장공포증으로 집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여행 중 타국의 거리에서 일행이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생긴 증상이다. 부잣집 딸이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 ‘예메이리’ 등 각자의 이야기는 작가가 8년간 살았던 타이베이의 한 고층 빌딩에서 영감을 얻었다. 실제 작가의 주변인에서 착안한 인물도 있다.

천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죄와 벌,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면서 “마천대루의 핵심 인물인 메이바오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마천대루의 삶은 대만 사회의 현실을 고발한다. 화려한 고층 빌딩만큼이나 높은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은 엄두도 못 내는 타이베이의 주거 현실이 소설에 녹아 있다. 현대판 귀족처럼 부유하고 거만한 '천룡인'들의 행태는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 사회 같다. 천쉐는 마천대루를 쓰면서 “내가 사회적 현상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글쓰기 방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마천대루는 1995년 발표한 첫 소설집 ‘악녀서’를 시작으로 30년간 작품활동을 이어온 천쉐가 처음으로 쓴 미스터리 소설이다. 한국에 소개되는 그의 첫 소설이기도 하다. 대만 타이베이의 이야기이지만, 배경을 오늘날 서울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 “내가 다루는 도시를 둘러싼 의제들이 비단 대만과 타이베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차츰 알게 됐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다.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427 "민주당 망하는 길" 비명계 향한 유시민 독설에…고민정 "입틀막은 오래전부터" 랭크뉴스 2025.02.09
44426 가자서 491일만에 풀려난 인질에 가족 몰살 소식…"또다른 고문" 랭크뉴스 2025.02.09
44425 1158회 로또 1등 21명 ‘13억9000만원’…자동 배출점 12곳 보니 랭크뉴스 2025.02.09
44424 美법원 "재무부 결제시스템에 접근 안돼"…머스크 DOGE 제동 랭크뉴스 2025.02.09
44423 "이러다 큰일 날라"…지구 휘감은 '이것', 항공기 충돌 사고로 이어질 수도 랭크뉴스 2025.02.09
44422 동료가 엉덩이 밀어줬다?…첫 금메달 딴 린샤오쥔 '반칙 논란' 랭크뉴스 2025.02.09
44421 與 “이재명 ‘개딸 동원’ 급한가”… 野 “당원에 보낸 문자” 랭크뉴스 2025.02.09
44420 "NYT 구독 끊어!" 트럼프, 비판적 언론 손보나…뉴스 구독 해지 랭크뉴스 2025.02.09
44419 "악마같은 사람" 구준엽 분노의 글, 서희원 전 남편 저격했나 랭크뉴스 2025.02.09
44418 '계엄사령관'이었는데‥설 상여까지 꼬박꼬박? 랭크뉴스 2025.02.09
44417 대통령 책상 앉은 머스크 사진에…트럼프 "타임지 아직도 영업?" 랭크뉴스 2025.02.09
44416 "박박 문질러야 닦은 거 같은데"…'분노의 양치질' 했다가 '암' 걸린다고? 랭크뉴스 2025.02.09
44415 "스펙보다는 외모 봐요"…연애도 결혼도 안 하는데 '나는솔로' 즐겨 보는 속사정 랭크뉴스 2025.02.08
44414 계주처럼 엉덩이 쓱 밀어줬다…500m 金 린샤오쥔 반칙 논란 랭크뉴스 2025.02.08
44413 당신은 치매 걸릴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txt] 랭크뉴스 2025.02.08
44412 쇼트트랙 린샤오쥔, 반칙으로 金 땄나… '밀어주기 논란' 랭크뉴스 2025.02.08
44411 송대관, 70대 나이에도 하루 5개 행사…'280억 빚' 극심 생활고 랭크뉴스 2025.02.08
44410 이스라엘군, 시리아 남부 공습…"하마스 무기고 타격" 랭크뉴스 2025.02.08
44409 "이미 늦었다고?"…설 보다 오래 쉬는 추석 비행기표 끊으려다 '깜짝' 랭크뉴스 2025.02.08
44408 “캐나다산 소고기·베트남 바나나”…고환율에 수입다변화 랭크뉴스 20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