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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에 우는 뇌전증 환자들
한해 진료 인원 15만 여명···고령화로 발생률·유병률 증가세
흔히 ‘대발작’ 떠올리지만 개인에 따라 발작 증상은 천차만별
3세대 신약 등장···적절한 치료 받으면 고혈압처럼 조절 가능
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정신을 차리고보니 온 몸이 쓰라리고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드는 순간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해외 파견직으로 근무 중인 서경제(가명·30대) 씨는 “발작보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며 뇌전증 발작이 일어났던 때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발병한 뇌전증으로 약물치료를 받던 서씨는 10여년 전 발작을 경험한 후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하필 인파가 몰린 퇴근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작이 일어난 게 화근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졌는데, 놀라서 물러설 뿐 그 누구도 도와주질 않았다. 서씨는 그대로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쓰러진 채 떠밀려 내려갔고, 얼굴과 팔다리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를 더 아프게 한 건 멀찍이 떨어져 자신을 흘끔거리던 사람들이다. 그는 "수군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순간 외로움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며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고 털어놨다. 맘편히 병을 드러내기는 커녕, 괜찮은 척 살아가기가 더이상은 무리라고 여겨졌다.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와 진료를 받고 약을 타간다는 서씨는 "이방인을 향한 무심한 눈길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했다.



◇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명칭 바꿨지만…사회적 편견은 여전


뇌의 신경세포는 정상적으로 늘 전기를 띠고 있다. 신경세포 사이의 미세한 전기적 질서가 깨져 수천 억 개의 뇌신경세포 중 일부가 짧은 시간동안 과도한 전류를 발생시키면 흥분된 부위에 따라 의식의 변화, 경련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 보이는 다양한 증상을 통틀어 발작(seizure)이라고 한다.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저절로 생긴 발작이 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일어나는 상태가 ‘뇌전증’이다. 과거에는 간질로 불리기도 했다. 용어 자체가 미친병, 지랄병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 부정적 이미지가 컸다. 대한뇌전증학회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2008년 ‘뇌전증’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진 설명


뇌전증은 뇌졸중, 치매, 편두통과 함께 대표적인 만성 뇌질환이다. 평생 유병률은 인구 1000명당 7.6명이며, 한해 진료 받는 국내 환자만 15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1~3%는 평생 한 번 이상의 발작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이 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제대로 진단 또는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환자가 많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75세 이상의 고령층을 중심으로 뇌전증 발생률과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발생률 곡선이 U자 형태에서 점차 J자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 데다 뇌졸중, 두부 외상, 퇴행성 뇌질환 등 뇌전증을 유발하는 문제를 겪는 노인의 생존율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 발작 조절하면 일상생활 가능…“뇌전증 안전망 구축 절실”


흔히 발작이라고 하면 눈을 치켜뜨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대발작'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쪽 얼굴만 씰룩이거나 고개와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같은 국소발작이 더 흔하다. 서대원 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나 움직임 모두 뇌전증발작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면 된다"며 "개인에 따라 발작의 증상과 지속 시간 등이 천차만별이고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대원 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이 질환에 대해 설명 중이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는 적절한 항발작제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개 한 가지 약제를 소량으로 시작해 점차 증량하면서 목표 용량에 도달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흥분성 신경세포를 억제하거나, 흥분성 신경전달을 약화시키거나, 억제성 신경전달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최소 2가지 이상의 약물을 충분히 투여하고도 재발하면 약물저항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술 등을 고려한다. 최근에는 부작용을 대폭 줄인 3세대 신약과 전자약 등으로 뇌전증 발작을 더욱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서 이사장은 "뇌전증은 '불치의 병’이 아니다. 고혈압, 당뇨처럼 적절한 치료를 통해 조절 가능한 병"이라며 "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바로 잡고 발작을 일으킬 때 응급 대처법을 교육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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