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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데나 주택서 23년 거주하다 참변…"대피명령 문자연락도 없었다"
같은 가격에 새집 구하기 어려워…"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네요"


지난달 8일 LA 알타데나에서 한인 이모(64)씨가 주택이 불에 타는 모습을 찍은 사진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다 깼는데, 우리 집 창문에 불이 확 붙은 거예요. 입었던 옷 그대로,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나왔습니다. 몸은 겨우 피했지만, 집이 완전히 타버렸어요. 23년간 살아온 집인데…."

지난달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집을 잃은 한인 이모(64·여)씨는 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달 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이튼 산불'이 발생한 LA 카운티의 동부 내륙 알타데나에서 거주하다가 화마의 습격을 받았다.

알타데나는 한인들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어서 산불 발생 초기에는 한인 피해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씨 본인이 LA 한인회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심각한 피해를 본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불타버린 집에서 남아있는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는 한인 이모씨.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씨는 한 달 전 집 근처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런 사태까지 맞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이전에도 근처 산지에서 몇 차례 대형 산불이 난 적이 있었지만, 산지가 워낙 넓고 주택가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사람이 사는 동네까지 불길이 내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불 발생 전날부터 미친 듯한 돌풍이 불어닥친 탓에 상황이 달라졌다.

이씨의 집을 포함한 알타데나 주택가에는 산불 발생 당일 이른 아침부터 강풍 탓에 전신주 등이 쓰러지면서 전기가 완전히 끊겼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었던지 이씨의 이웃집에 주차돼 있던 픽업트럭이 전복될 정도였다고 이씨는 전했다.

당일 이씨의 남편은 잠시 한국에 가 있었고, 이씨는 같이 사는 딸에게 강풍과 정전 때문에 힘든 상황이니 다른 곳에서 하루 묵고 오라고 얘기해 집에 혼자 있었다.

그는 당일 직장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에 왔을 때 직장 동료로부터 집 근처에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전해 들었고, 저녁 6시 15분께 집 밖으로 상황을 살피러 나갔을 때 저멀리 떨어진 '이튼 캐니언' 산지에서 오렌지색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20분가량 지났을 때는 불길이 금세 산으로 크게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씨는 옆집 할머니가 차에 짐을 싸서 대피를 떠나는 것을 보고 본인도 옷가지 몇 개랑 중요한 서류 같은 것들을 챙겨 일단 차에 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산불 연기를 피해 하루 정도 떠났다가 돌아올 생각으로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고 한다.

LA 알타데나에서 산불에 전소된 한인 이모씨의 주택과 자동차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고서 불안한 마음에 8일 자정을 넘길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고, 오전 5시 20분께 잠에서 깼을 때는 불길이 이미 이씨의 집 앞까지 들이닥쳐 있었다.

이씨는 "우리 집 양쪽 옆에 큰 나무들이 있는데, 그 나무들에 불이 붙어 타올랐고, 옆집에서는 창문이 훨훨 타고 지붕에도 불이 덮친 상태였다"며 "너무 놀라서 곧바로 뛰어나와 차를 몰고 대피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호텔과 에어비앤비 숙소 등을 전전했고, 불길이 잡혀 약 9일 만에 돌아와 집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는 집터에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이씨는 "그야말로 쇠붙이만 남고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며 말을 잇기 어려워했다.

이 집은 이씨의 가족이 지인에게서 좋은 집을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임차해 23년간 계속 살아온 보금자리였다.

이씨 부부는 한국에서 유학을 온 뒤 정착해 34년간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 세월의 대부분을 이 집에서 보냈다. 수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인 만큼, 상실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듯했다.

게다가 이씨 가족은 주택 임차인 보험을 따로 들어놓지 않아 손실된 가구, 물품들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씨는 "새집을 구하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우리 집 크기의 절반도 안 되는 집이 (임대료가) 훨씬 더 비싸더라"며 "더구나 남편이 작년에 퇴직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FEMA(미 연방재난관리청)에서 기본적인 가전제품 구입비 등으로 지원해 주는 게 1만3천달러(약 1천880만원) 정도인데, 그거 갖곤 뭘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러 모로 막막하다"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LA 알타데나에서 산불에 전소된 한인 이모씨의 주택과 자동차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엄청난 재난에서 생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정신적으로도 아직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자면서 악몽도 많이 꾸고, 밖에서 경찰차나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날 때마다 진땀이 나곤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는 그래도 다치지 않고 몸이 괜찮으니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위로하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말도 위로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재난 대응에 한 박자 늦었던 LA 행정 당국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날 대피하라는 문자를 못 받았어요. 나만 못 받았나 싶어서 쉘터(피해자 대피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일부는 경찰이 문을 두드려서 알려줬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동네 뒤쪽에 있어서 그런 소리도 못 들었고요. 재난 문자를 보냈으면 짐을 좀 더 많이 챙겼을 텐데…우리 딸 어린 시절 사진 앨범도 못 챙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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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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