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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중순 4개 여론조사기관이 참여하는 전국지표조사(NBS)의 국가기관 신뢰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은 헌법재판소였다. 67%가 신뢰한다고 응답해 법원(48%), 국회(41%), 정부(31%)를 압도했다. 그러나 6일 발표된 NBS 조사를 보면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을 신뢰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52%가 신뢰한다, 43%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완전히 똑같은 질문은 아니지만, 헌재에 대한 신뢰도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불임명 관련 권한쟁의·헌법소원 심판 선고를 연기한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스크린 안내문에 ‘국회와 대통령 간의 권한쟁의’문구가 보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개인의 성향을 문제 삼아 공세를 펼치는 것은 문제지만, 헌재가 신뢰 하락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헌재는 지난 3일 오후 2시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시간 전에 갑자기 선고를 연기했다. 헌재는 지난달 22일 1차 변론기일에서 1시간 20분 만에 심리를 끝내고, 이틀 뒤 선고 기일을 정했다. 더 따져 보자는 최 대행 측 주장을 무시하다가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뒤늦게 수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관 9인 체제를 갖추는 것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중요하지만, 졸속이라는 지적을 받아선 안 된다.
탄핵 심판 신뢰한다 52% 그쳐
마은혁 미임명 사건 너무 서둘러
판결 수용 높일 지혜 발휘해야

미국의 위대한 연방대법원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얼 워런(1891~1974)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명으로 최고법원 수장이 됐다. 그는 공화당 출신이지만 진보적인 대법원장으로 평가된다. 그의 대법원은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 사건에서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말로 대표되는 흑백 분리 정책을 뒤집는 역사적 판결을 했다.

”워런은 대법원장이 되자마자 브라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동료들에게 피력하였고, 이 사건의 경우 만장일치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이 사건이 미국 역사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였던 것이다.”(『미국 대법관 이야기』, 최승재)
워런은 일부 대법관이 개별 의견을 내면 흑백 분리를 시행하던 남부 주들이 이에 근거해 승복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9명의 대법관 전원이 찬성했고, “분리된 교육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는 판결문이 나왔다.

헌법재판관이 헌법과 법,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재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다 많은 국민이 헌재 결정을 신뢰하고 수용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대통령 체포와 구속 과정에도 수사권 유무 등 절차적 논란이 있었다. 급기야 서울서부지법에서 전대미문의 난동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참가자와 배후 조종자를 찾아내 엄벌해야 마땅하지만, 사법부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헌재에 계류된 각종 탄핵 사건과 권한쟁의 심판 등은 개별 사건이지만, 사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한 세트라고 봐야 한다. 어떤 사건을 언제, 어떻게 판단할지는 헌재가 정할 일이다. 다만 이 재량권을 헌재 결정의 신뢰도를 높이고, 첨예한 정치·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쪽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아울러 공직자 탄핵을 남발한 더불어민주당에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 어떤 수순을 밟아가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가운데)이 1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이 기각 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의 경우도 최종 기각됐지만 8명의 재판관 중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4명이 탄핵 인용 의견을 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핵심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8명의 재판관이 일치된 의견을 내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5명이 정원인 방통위에서 2명만으로 의결하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법에 명시적 정족수 규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설령 위법해도 그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불과 며칠 근무한 장관급 공직자를 파면할 사유가 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방통위가 2인 체제가 된 것엔 후보 추천을 거부한 야당의 책임도 있다.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법 규범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그 문언에 비추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 말의 뜻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질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밝혔다.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는 부분에 대해선 법을 확장해서 해석해도 좋지만, 탄핵과 같이 특정인의 신상에 불이익을 주는 결정에선 헌법과 법 문구를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헌재는 흠결 없는 절차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훌륭한 결정문으로 갈등을 풀어나갈 길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헌재의 존재 이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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