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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9일 ‘대왕고래’ 시추를 진행할 노르웨이 드릴십 웨스트 카펠라호가 부산시 영도구 외항에 정박해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심해 가스전 유망구조 ‘대왕고래’의 존재를 처음 알렸을 때만 해도 “경제성이 없다”는 6일 산업통상자원부의 결론을 예상하긴 쉽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당시 예고 없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내려와 생중계를 통해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며 구체적 수치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의 브리핑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최대 매장량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발표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먼저 대왕고래 보고를 받았는데 가슴이 떨렸었다”며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동공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었다.

통상 석유 시추사업과 같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당시 윤 대통령은 4·10 총선 패배 이후 반전의 카드가 절실했던 상황이었고, 대왕고래가 지지율 상승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란 참모들의 조언에 직접 발표를 결심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초기엔 산업부 등 늘공(직업 공무원) 사이에선 신중론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용산 “탐사시추, 실패 가능성 늘 있어”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고비토르 아브레우 미국 액트지오사 고문. [뉴스1]
실제 자원개발 당국도 당초에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석유업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2월만 해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두고 11조원가량 가치의 석유·가스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년인 2023년 물리탐사를 마치고 그해 말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액트지오로부터 검증을 받은 뒤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던 예상치다. 당시 산업부 내에선 “그마저도 과대 평가됐을 수 있고 실제로 11조원가량 가치의 석유·가스가 있다고 해도 파내는 비용이 더 많을 위험이 있다”며 신중해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해 6월 윤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발표할 땐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로 늘었다. 140억 배럴은 2000조원가량에 달하는 규모다. 당시 석유업계에서는 “대체 어떻게 2000조원이 나온 건가”라며 놀라워하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자원개발 당국은 ‘물리탐사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예상치가 크게 불어난 것’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이번 1차 탐사시추 실패가 시나리오에 없던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밝힌 시추 성공률이 20%였기 때문에 최소 다섯 번은 뚫어보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희망 섞인 예측을 성급하게 발표하면서, 사업에 의구심과 정치적인 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석유공사 관계자는 “경제성을 확인하는 탐사시추 결과가 나온 이후 발표해야 하는 게 합리적인데 발표 시점이 이른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1차 탐사시추 실패만으로 동해 석유탐사 프로젝트 전반이 좌초한 게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된 배경이다.

이날 산업부는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 “첫 시추서 성공 확률은 로또보다 작은데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등의 해명을 했는데, 이는 대통령실 등 정치권의 책임론을 부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해 차분히 시추를 진행해야 했는데 너무 정치적 이슈가 되다 보니 상황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석유공사, 다른 유망구조 6개는 계속 시추
대통령실은 산업부의 발표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동해 7개의 유망구조 중 하나인 대왕고래에 대한 첫 시추 결과가 나온 것일 뿐, 남은 6개 유망구조에 대한 추가 탐사는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탐사시추에는 항상 실패 가능성이 있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원론적 입장만을 전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야당의 대왕고래 예산 삭감 관련 질문을 받자 “중국이나 일본은 근해에서 해저자원 개발을 많이 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따라가려면 바다에서 많이 시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참모들 사이에선 실망하는 기색도 감지됐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중 대량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서 발견된다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나머지 유망구조 6개가 있는 만큼 전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예단하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석유공사는 이번 시추에서 얻은 시료 등을 전문 분석 기업으로 보내 약 6개월간 정밀 분석과 실험을 진행한다. 오는 5~6월께에는 중간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정치권 개입 말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우주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경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지질학적으로는 다른 유망구조에 대해 재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새로 얻은 정보로 피드백을 해서 다음 탐사 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석 부경대 환경지질과학과 교수는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에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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