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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도축장 동물복지 논문 펴낸 전채은 박사
지난 2020년 경기도 화성시 한 도축장으로 실려온 돼지들. 김지숙 기자

국내 축산농가에서 태어난 돼지와 소는 3살이 되기 전 ‘고기’가 된다. 돼지는 6개월, 젖소 품종 수송아지는 18~22개월, 한우는 26~30개월이면 삶을 마감하게 된다. 도축장에 실려 온 동물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

트럭을 타고 도축장에 도착하면 하역장에서 계류장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이동 피로를 덜고, 수의사로부터 질병이나 상처 여부를 검사받는다. 이 과정을 마치면 한 마리씩 도축을 위한 통로로 들어가 ‘기절의 순간’을 맞는다. 정수리를 타격 당하거나 머리에 전류 충격을 맞는다. 단명은 경정맥을 끊는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를 보면, 이렇게 도축되는 소 돼지는 하루 평균 2000여 마리(소 166마리, 돼지 1960마리)가 넘는다. 그다지 복잡한 과정은 아니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트럭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혼돈과 폭력이 시작된다.”

“아무도 관심없는” 도축장 동물복지

채식인구보다 육식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도축장은 동물을 다루는 여러 시설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최근 이렇게 ‘가려진 공간’으로만 존재했던 도축장에서의 농장동물 복지를 평가한 논문이 나왔다. 2012년부터 동물권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로 활동해온 전채은 씨는 지난 1월 ‘소와 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 평가 연구’로 건국대 수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실험·전시동물의 복지향상 활동을 해온 그가 수의대에 간 것은 지난 2018년이다. 동물복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과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아무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고, 아무도 시도하고 싶어하지 않는” 도축장에서의 농장동물 복지였다.

도축장에 도착한 한 돼지가 하차대에서 주춤거리는 모습. 발굽동물인 소와 돼지는 트럭에서 하차할 때 하차대의 각도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전채은 제공

도축장은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제한된 곳이지만, 그는 다른 2명의 수의사와 함께 연구자로서 어렵사리 국내 도축장 13곳(소 6곳, 돼지 7곳)을 방문해 도살 과정과 시설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들의 연구 목표는 소·돼지 도축장의 동물복지 실태를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국내에 이와 관련된 제도는 동물복지축산인증제에서 부여하는 ‘동물복지 도축장 인증’과 동물 도살에 대한 포괄적 규정을 담은 농림축산검역본부 고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도축 과정에서 동물의 공포·고통을 줄이기 위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둔 영국·유럽연합·미국과는 달리 축산물의 경제성을 따지기 위한 동물의 질병 증상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전 대표 설명이었다.

그 때문에 연구자들은 13곳 도축장을 정량적·정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체 동물복지 평가표를 마련했다. 평가표는 유럽연합에서 개발한 동물복지평가도구(Welfare Quality Assessment Protocol)와 동물학자 데이비드 멜러 박사가 고안한 ‘동물의 5대 자유’(5 Domains Animal Welfare)를 활용했다. 이러한 평가 기준들은 동물의 적절한 먹이·주거 환경·건강·행동뿐 아니라 심리 상태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도축장 머무는 시간 길수록 동물복지 낮아져

연구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동물이 머물게 되는 트럭·계류장·이동 통로의 환경과 공간 밀집도와 동물의 비일상적 행동(헐떡임·넘어짐·미끄러짐·이동 거부 등), 공포 반응(소리 지름, 뒷걸음질 등), 도살 과정을 기록했다.

평가 결과, 동물이 도축장에 도착해 도살되기까지는 평균 4~15시간이 걸렸는데, 이 과정에서 동물의 복지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살핀 동물은 소 590마리, 돼지 3232마리였다. 동물의 비일상적 행동과 공포 반응은 트럭이 도착할 당시보다 계류장을 지나 기절을 위한 이동 통로로 가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돼지의 경우, 도축장 7곳 중 6곳이 트럭 내 밀집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송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됐다. 연구자들은 논문에 “도축장에 도착해 계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물복지는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돼지 계류장은 밀집도가 높아 돼지들이 급수대에 접근하기 어렵고, 기절 공간으로 갈 때 피로도가 높아져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런 환경은 동물들로 하여금 공포·스트레스를 유발해 직업자들의 작업을 어렵게 한다. 전채은 제공

‘앉은뱅이 소’는 농장에서부터 가죽끈에 다리가 묶여 실려오기도 했다. 이런 소는 우선적으로 의식을 소실시키거나 이동 때 깔개를 제공해야 한다고 전채은 대표는 주장했다. 전채은 제공

동물의 ‘거부 반응’이 늘어날수록 도축장 노동자의 손길도 거칠어졌다. 전 대표는 지난 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돼지가 움직이지 않거나 이동을 거부하면 직원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전기봉’을 동물에게 사용하는 게 일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동물의 고통·공포가 늘어날수록 직원들의 작업·심리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무엇이 동물에게 두려움을 주는지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학대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앉은뱅이 소’(Downer Cow)는 농장에서부터 발목이 묶여 하역 과정에서도 누운 채 밧줄에 끌려 기절 공간으로 옮겨졌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 소가 상처를 입었지만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고 한다. 전 대표는 “거동이 불가능한 소라면 트럭 내에서 의식을 잃게 해 고통을 줄이거나 이동 때 동물 아래 깔개를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곧 죽을 동물이라도 고통 줄여줘야

도살 과정에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동물보호법(제13조) 위반일뿐 아니라 도축장 하차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폭력·전기몰이 도구를 쓰는 것, 의식 있는 상태로 동물의 발·다리를 매달거나 물리적 상해를 유발하는 것 등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도축 세부규정 고시’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전 대표는 당장 동물의 복지를 개선할 방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곧 죽을 동물이더라도 의식 있는 동물을 거친 바닥에 끌고 가는 것은 당장 멈춰야 한다”면서 “정부는 도축장에서 동물보호법과 관련 고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연례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140곳 도축장 가운데 ‘동물복지 도축장 인증’을 받은 7곳에 한해서만 연례 점검을 하고 있다. 전 대표는 정부가 곧 발표할 계획인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2025~2029)에 도축장의 동물복지 세부 규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변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5일 덧붙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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