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로마협약 거론…"임의적 영구이주는 어떤 것도 위법"
"트럼프 '사람 못살 땅' 발언으로 네타냐후 전쟁범죄 시인한 셈"
"트럼프 '사람 못살 땅' 발언으로 네타냐후 전쟁범죄 시인한 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보낸 뒤 휴양지를 짓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이 전쟁범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이 전쟁과 관련한 다수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제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미국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다른 세계 지도자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국제법을 가르치는 마리아 버래키 박사는 "학자이자 국제법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충격 받았다"며 "국제법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원수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이 1949년 제네바 협약, 1998년 로마 협약 등 전쟁범죄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두 국제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때 민간인과 군인을 어떻게 처우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가장 보편적인 '전쟁법'이다.
로마 협약은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 제노사이드(genocide·소수집단 말살)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토대를 이루는 조약이다.
두 협약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가자지구 주민에 대해 언급한 임의적이고 영구적인 강제 이주를 범죄로 간주하고 있다.
사라 싱어 런던대 난민법 교수는 군사적 필요성이나 생명 보호를 위해 긴요한 경우에만 민간인을 일시적으로 이주시킬 수 있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점령지 외부로 이주는 안 되며 가능한 최단 시간만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버래키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에 대해 "(인류 사회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달성한 모든 것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떠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곧바로 반박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은 유엔에 팔레스타인인의 권리 보호를 요청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문제의 발언이 나온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동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범죄로 국제 수배령이 떨어진 인사다.
ICC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5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전쟁 중에 자행된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등의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작년 11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에는 굶주림을 전쟁 도구로 이용하고 살인, 박해를 저지른 데 대한 형사책임이 있다는 혐의 사실이 적시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를 폐허로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재확인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가 당분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주변국으로 이주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주거지가 위험한 쑥대밭이 됐다는 발언은 전쟁 때 준수돼야 할 민간인과 군인의 차별과 공격의 비례 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을 시인하는 셈이라는 얘기다.
마틴 렘버그 페더슨 워릭대 교수는 "트럼프는 가자지구를 폐허라고 표현하면서 이곳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민간 기반 시설이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가자지구 내에서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숨진 이들은 4만7천명 정도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겨냥해 집단 자체를 계획적으로 말살하려는 인종 청소, 즉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어떤 종류의 인종청소도 피하는 게 절실하다"며 "국제법의 기반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자결권은 국제법의 기본 원칙으로 모든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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