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공공임대 8만 호 리모델링
자연 닮은 '바이오필릭 디자인' 채택
서구식 조명·개방형 구조 갖춰
"주민에게 자긍심 주도록 만들 것"
공공임대주택 살다 우울증 걸린다고들 말합니다. 편견이지만 노후 임대 단지는 실내가 실제로 좁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임대주택 개축(리모델링)은 단순한 집수리가 아닙니다. 공간을 깨끗하고 편안하게 고치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집이 주민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자연 닮은 '바이오필릭 디자인' 채택
서구식 조명·개방형 구조 갖춰
"주민에게 자긍심 주도록 만들 것"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가 지난해 말 경기 하남시 본사에서 영구임대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목표를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공공임대주택이 확 달라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국 노후 임대주택에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에 착수했다.
애플 등 세계적 기업 사옥에 적용된 건축 사조를 임대주택에 도입해 낡고 컴컴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 목표다. 프랑스에서 실무를 경험한 김 교수가 설계를 맡았고 올해부터 준공 30년이 경과한 단지를 대상으로 매년 9,000호씩 총 8만 호를 리모델링한다. 그 현장을 최근 직접 찾아갔다.자연 닮은 ‘바이오필릭 주택’
경남 진주시 영구임대주택 가좌주공1단지에는 지난해 말 특별한 집 두 채가 들어섰다.
1993년 준공한 구옥을 리모델링한 바이오필릭 주택이다.
자연적 요소를 공간에 끌어들여 인간 정신과 신체가 건강하게 돕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전용면적 기준 일반형(26㎡)은 '담소', 고령자형(31㎡)은 '담채'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리모델링할 임대주택은 담소, 담채와 똑같이 만들어진다.담소에 들어서면 ‘어, 이 집 인테리어 했네’라는 인상을 받는다.
LH나 지방도시공사가 신축하거나 개축한 임대주택과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기존 임대주택이 깨끗하지만 취향을 찾기 어려운 공간이라면 담소는 '내가 살 집을 꾸몄다'는 마음이 드러나는 보금자리다. 김 교수는 "임대주택 브랜딩(인상 부여)은 최초"라며 "거주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설명했다.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근 개축(리모델링)한 경남 진주시 영구임대주택 가좌주공1단지 아파트 '담소'. LH는 앞으로 리모델링하는 모든 일반형 임대주택을 담소와 똑같이 꾸밀 계획이다. 김민호 기자
리모델링을 진행할 에정인 가좌주공1단지 아파트 실내. 임대주택 중에서도 상태가 나쁜 편이다. 영구임대주택은 주민들이 한 집에 수십 년 거주하기도 해 장기간 집을 손보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김민호 기자
리모델링을 기다리는 영구임대주택의 주방. 김민호 기자
주민이 수십 년 거주하는 동안 집도 함께 낡아간다. 영구임대주택 벽장에 묵은 때가 끼었다. 김민호 기자
현관부터 발코니까지… 8m의 마법
공간을 어떻게 따뜻하게 만들었을까?
비결은 '8m의 마법’이다. 현관부터 발코니까지 이르는 공간(8m)의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우선 주방과 거실을 나눈 중문을 철거해 햇빛을 끌어들였다. 비좁은 복도를 틀어막던 안방 문, 화장실 문은 미닫이로 바꿨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모두 뜯어낸 것이다. 현장을 안내한 엄기태 LH 임대자산기준팀장은 "1990년대까지도 주방과 거실을 꼭 구분했다”며 "바이오필릭 주택은 공간을 통으로 넓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조명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담소와 담채 거실은 미술관처럼 화사하다. 조명의 색 온도를 3,000~4,000캘빈(K)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는 형광등(6,000K)보다 어두워 보이지만 마음을 진정시켜 서양에서는 흔한 방식이다. 엄 팀장은 "조도 조절이 가능해 원하면 얼마든지 조명을 밝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매립등과 간접등을 사용해 층고가 높아 보이도록 꾸몄다. 담채 거실 천장등을 시선이 덜 가는 창가에 설치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벽면에 가벽을 덧대 층고와 너비가 실제 소폭 줄었지만 눈에는 더 넓어보인다. 주방 타일과 발코니 벽에 세이지 그린(녹색) 등 자연의 색을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리모델링을 마친 담소 복도. 중문을 없애 개방감을 높였다. 맑은 날에는 밖에서 햇빛이 안쪽까지 쏟아진다. 김민호 기자
리모델링이 예정된 낡은 영구임대주택 복도. 중문까지 닫았을 때는 시야가 콱 막혀 답답하다. 김민호 기자
엄기태 LH 임대자산기준팀장이 담소 주방에서 세이지 그린(녹색)으로 마감한 벽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적 색을 사용해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김민호 기자
담채에 설치된 조명. 조도를 조절할 수 있고 자유롭게 회전해 원하는 곳을 비출 수 있다. 사진은 조도를 낮춘 모습. 김민호 기자
리모델링=LH 적자 직결
문제는 재정이다.
LH는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할수록 금전적 손해를 본다.
정부가 지원한 예산은 호당 2,600만 원이지만 실제 비용은 호당 3,000만 원을 웃돌았다. 차액은 고스란히 LH 부담이다. LH는 지난해 임대주택 수선비로만 1조6,000억여 원을 썼다. LH 관계자는 "정부 예산은 2020년 정한 금액인데 그 뒤 물가만 35%, 공사비는 더 뛰었다"며 "원주민 이주비, 폐기물 처리비 등 추가 비용도 LH 몫"이라고 토로했다. 예산 부족에는 구조적 원인도 있다. LH가 예상한 리모델링 공기는 3개월이었지만 실상은 7개월이 걸렸다.
중소기업판로지원법(약칭)에 따라 모든 자재를 조달청을 거쳐 구입한 탓이다. 민간처럼 부품이 필요하다고 바로 사올 수가 없다. 자재를 발주하고 계약하고 운송하고 적치하느라 공기가 한없이 늘어진다.공사도 민간처럼 턴키(일괄 도입) 방식으로 한 업체에 권한과 책임을 몰아줄 수 없다.
전기통신소방법에 따라 공종(전기, 배관)별로 발주한다. 당연히 공사 관리비가 늘어난다. 업계 관계자는 "전셋집 리모델링 공사는 아주 길어도 한 달이면 끝나지 않느냐"며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면 리모델링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돈 때문에 서민에게 꼭 필요한 사업을 미루기도 어렵다. LH 실무자가 작은 벽장 앞에서 남긴 말이다.
"이것 때문에도 고민했어요. 비용을 계산하니까 구성품에 추가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뭔가 결정할 때마다 '그래도 요것까지는 넣자'고 마음먹습니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아쉬움이 남습니다."
담소, 담채 내부 구조. L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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