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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자유를 찾았다
탈시설 장애인 활동가 고(故) 김진수
(1950~2024)

편집자주

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고인의 생전 모습.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운명이었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1987년 8월 어느 날. 김진수씨는 경기 수원시 원천유원지로 나들이를 갔다. 유난히 쨍했던 날씨, 아내의 기분은 더 맑아 보였다. 두 딸이 함께한 간만의 외출이었다.

수영장이 보였다. 아담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은 "위험해요"라는 말을 무심히 던졌다. 수심이 얕으니 뛰어들 생각, 감히 하지도 말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진수씨는 네 살, 두 살 딸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두 손과 머리가 차례로 물을 향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자세로 다이빙을 '시도'했다.

목에서 '뚝' 소리가 났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다만 정신은 멀쩡했다. 수영장에 거꾸로 박힌 채 구조를 기다렸다. 어린 딸들은 아빠가 잠수를 참 잘 한다며 박수를 치고 즐거워했다.

사고 다음 날, 중환자실로 동서가 찾아왔다. "인생 끝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애들 엄마 더 나이 들기 전에 이혼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목뼈 골절로 인한 전신마비 장애
판정 내려진 지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진수씨는 '지금 아니라 해도, 언젠가 결국은 그렇게 되겠구나' 예감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수원 집을 팔았다. 병원비로 많은 돈이 필요했다. 퇴원 뒤엔 계속 무력했다. 동서의 말처럼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둘째 형을 불렀다. "방 하나만 구해줘."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고, 마침내
집을 나섰다
. 그런 진수씨를 보며, 두 딸은 울었다. "다 낫고,
꽃 피면 올게.
" 결국 이혼했고, 딸들은 아내가 키우기로 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손가락에 미세한 신경이 살아 있을 뿐, 팔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욕창은 끔찍했다. 엉덩이로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했다. 진수씨는 한 사회복지시설을 찾았다.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향해, 수화기 너머로 "좀 데려가 달라"고 읍소했다.

그곳도 살만한 곳은 안됐다. 시설에 있던 소변 호스가 오염된 통에, 병원 신세를 다시 져야 했다. 둘째 형에게 연락했다. 형은 경기 김포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400만 원을 주고, 동생을 맡겼다. 1989년, 그때 진수씨 나이 39세. "남은 인생, 여기에서 살다 죽겠구나."
지난해 7월 31일,
진수씨가 두 딸과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숨을 거두기 딱 35년 전 일이었다.
향년 74세.


장애인 시설로... "희망은 없다"



진수씨는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쟁 통에 배움은 짧았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전전했다. 용산 버스터미널 정비소에서 잡무를 맡았고, 중국집에서 양파를 깠다. 누나가 살던 수원으로 넘어간 뒤 매형에 이끌려 공장을 다녔다. 페인트 칠하는 일도 했다.

서른넷에 결혼하곤 해외 건설 현장으로 갔다. '중동 건설붐'이 한창이었다. 그는 생전 "현대건설에 취직해서 1985년에 리비아에 갔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서도 일했다. 1987년 한국에 남아 있던 가족들이 연탄가스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귀국했다. 가족은 다행히 무사했다. 다시 중동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월 28일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
다이빙하다가 다쳤다... 기구한 운명이다.
"

진수씨를 품은 건 중동이 아니라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베데스다요양원
이었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낮 12시 30분에 점심을 먹었다. 다시 시간을 죽이다 여름에는 오후 5시, 겨울에는 오후 4시30분에 저녁 식사를 했다. 오후 9시 점호를 마치면 9시 30분에 불을 끄고 자야 했다. 먹었으니 싸고, 씻었으니 자는, 지극히 단순한 하루였다.

진수씨는 다큐멘터리 '시설 장애인의 역습'(2009)에서 말했다. "처음에는 '뭐 이런 게 다 있느냐, 못 살겠다' 생각이 들더니 3, 4개월 지나고 나니까 길들여져서 '그러려면 그래라' 이렇게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삶에) 희망이 없(었)다고 봐야지."

고인의 생전 모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회색분자'의 삶... "인권은 없다"



진수씨는 그나마 대우받는 시설 거주인 축에 속했다. 인지·지적 장애가 없는 중도(후천적) 장애인을 함부로 대하긴 어려웠다. 다치기 전까지 사회생활을 해온 덕에 말도 잘했다. 입도 충분히 걸었다. 과도하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거주인이 있으면, 거주인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냈다.

전동휠체어를 잘 타, 외출도 자유로웠다. 친한 직원이 일하는 날에는 인근 양곡시장에서 피조개, 닭똥집 등을 사와 요리해 달라고 할 정도까지 됐다. "뭐 이런 걸 사와요!" 직원이 뭐래도 진수씨는 씩 웃기만 했다.

그래도 시설은 시설이었다. 4, 5명이 한 방에 지냈고, 두 방 인원이 화장실 하나를 공유했다.
120명이 넘는 거주인들
은 늘 복작거렸다. 직원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거주인 60% 정도는 남성이었다. 여성 직원이 남성 거주인의 옷을 벗기고 씻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옷 선택지가 별로 없어 회색 옷만 입었다. 언제부턴지 몰라도,
그들은 '회색 분자'로 불렸다.


식사가 가장 고역이었다. 휠체어를 개조한 배식차로 식사가 나눠지면, 5~10분 정도 지나 바로 식판을 회수해갔다. 시간이 없어 밥, 반찬을 몽땅 섞어 차례 없이 먹곤 했다. 말간 국물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영양죽'이라며 그날 반찬을 다 갈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과 사회단체가 온갖 음식, 물품을 후원해 줬지만 식단은 나아지지 않았다.

인지 능력이 없는 장애인 인권은 사정없이 짓밟혔다. 2001년부터 생활재활교사로 일했던
박종순(65)씨
는 이를 똑똑히 기억해냈다. 거주인이 잠을 자지 않으면, 야간 근무자가
진정제
를 들고갔다.
독한 약에 취한 거주인은 침을 질질 흘렸다.
"뭐 이런 걸로 약을 먹여요!" 종순씨가 대들면 싸움으로 이어졌다. 입으로 손을 빠는 거주인의 팔엔 나무젓가락을 이어서 만든 아대가 채워졌다. 다른 직원이 놀라 아대를 풀고 병원에 데려갔더니 간호사가 놀라 아대를 압수했다.

고인이 시설에 거주할 당시 모습. 왼쪽은 함께 탈시설한 김동림씨. 동림씨 제공


그들이 뭉쳤다... 균열 틈으로 희망이



그렇게 17년이 지났다. 2006년, '길들여진' 진수씨 삶에 마침내 균열이 가해졌다. 19년차 거주인
한규선(63)씨
였다. 어린이시설을 운영하던 지인으로부터 들은 장애수당 관련 얘기를 듣고 온 뒤로 화가 잔뜩 났다.
"장애수당이라는 게 있다는데, 난 한번도 받지 못했어."
수당이 시설이 아닌 장애인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세(勢)가 꾸려졌다. 시설에선 장애수당 지급으로 무마하려했지만, 시설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장애인 인권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외부에서 힘을 보탰다.

진수씨는, 또 다른 거주인 일부는 그러나 시큰둥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까 하지 마. 괜히 너만 다친다." 누구보다 목소리가 컸던 진수씨 말이 참 야속했다. 진수씨뿐 아니라 많은 거주인들에게 요양원은 '평생 살다가 죽을 곳' '그런 곳이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진수씨는 며칠 뒤 "힘이 되어 주겠다"며 다가왔다. 왜 마음을 바꿨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20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봐왔으니까. 주위에서 그만큼 많은 인권 침해, 비리들이 있었으니까." 그리 짐작했다. 맏형 진수씨가 합류하면서 내부 조직에 탄력이 붙었다. 비리를 규탄하는 연판장에 20~30명이 이름을 올렸다.
요양원 비리척결 및 인권 쟁취를 위한 투쟁
이 시작됐고,
이사장 포함 13명이 처벌을 받았다.


마침내 시설 밖으로... "까짓거 한 번"

고인의 생전 모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시설비리 문제가 일단락된 건 2009년 5월이었다. 발바닥행동 활동가
김정하(50)씨
는 요양원 맞은 편 소공원에 갔다. 대한독립군위령탑, 정자 하나 있는 썰렁한 공간. 진수씨를 포함한 '형님들'이 비밀 논의를 하거나 술 한잔 기울이던 아지트였다. 자신을 둘러싼 휠체어에 앉은 형님들 10여 명에게 정하씨는 제안을 했다. "시설 비리 말고 형님들 삶에 대해 이제 얘기해 보죠." 탈시설, 즉 요양원 밖 삶에 대한 얘기였다.

중증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사는 건, 비리를 폭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디서 살 것이며, 생활을 보조해줄 인력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이를 위한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만만치 않았다. 자칫 돌아갈 집조차 없는 미아 신세가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긴 고민 끝에 던진 얘기였다.

반응은 예상을 빗나갔다. '왜 이제야'라는 분위기였다. "다 같이 나가자!" "언제 나가면 되는 거야?" 결은 달랐지만 이구동성, '적극 동의'였다. "준비된 게 없어서 생짜 노숙해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묻는 정하씨 우려에는 "시설이 감옥인데 노숙 못 하겠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종이컵에 따라놓은 믹스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논의는 끝났다.

당시 자리에 함께했던
김동림(63)씨
는 진수씨의 "까짓거"라는 추임새를 아직 기억했다. "시설에 있으면 그래도 먹고 자는 건 문제 없는데…." 망설임에 진수씨는 예의 큰 목소리로 재촉했다. "야, 도와주는 사람 많은데 고생 좀 하면 어떠냐? 까짓거 그냥 해보지 뭐." 진수씨 입버릇, '까짓거'를 들으며 그는 "인생의 밑바닥을 찍었던 사람은 저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숙의 첫날... "이것도 자유야"

고인의 생전 모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시설을 뛰쳐나가는 데 한 달이 걸렸다. 6월 4일, 소공원에 모였던 이들 중
8명이 요양원에서 짐을 챙겨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했다.
8명의 짐을 1톤 트럭에 나눠 실었다. 첫 선택은 어쩔 수 없는 '노숙'이었다. 진수씨는 당시 첫날 밤을 이렇게 회상했다.

"요양원에서는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도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 이것이 자유라는 걸 느껴 마음이 편하고 참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앞으로의 62일을 사람들은
'마로니에 8인의 투쟁'
으로 불렀다.

중증장애인의 노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먹고, 씻고, 자는 과정이 모두 전쟁이었다. 연대 투쟁하는 활동가까지 20명이 하루 세끼를 먹으니 밥값부터 감당이 안됐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후원 물품을 받고, 돈을 모아 반찬을 해먹어야 했다. 마로니에공원에 노숙인들을 위한 밥차가 왔는데, 주변 노숙인들은 농성 중인 장애인들에게 먼저 밥 먹으라고 권했다. 농성장에 모기가 들끓었지만, 지체장애인은 손수 모기를 쫓을 도리가 없었다. 뙤약볕에 경찰과 대치했고, 욕창에 시달렸다.

당시 진수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인권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논하지 않았다. 그저 20년간 본인이 시설에서 어떻게 먹고 잤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말했다. 39년간 밖에서 살았으니, 이 얘기가 시설 밖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도 알았다. 누구도 쉽게 토를 달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마로니에 8인'의 탈시설 운동 기념 동판. 손영하 기자


'형님'들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일정도 꼬박꼬박 챙겼다. '오 시장 따라잡기' 투쟁이었다. 어딜 가든 휠체어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다. 2개월을 끈질기게 따라다니고서야,
서울시는 자립생활가정 시범 운영을 골자로 하는 정책
을 내놨다. 2013년 지자체 최초의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의 시발점이었다.

투쟁과 정착... "이제 자립이다"



진수씨는 이후 평원재단 이사장 이종각(2016년 사망)씨 배려로 평원재에서 반년을 지냈다. 그 다음은 서울시에서 시범 운영하는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등을 거쳐,
강서구 가양동 영구임대주택
에 뿌리를 내렸다. 함께 탈시설한 황정용(1956~2019)씨와 함께 살았다. 거실도 방도 좁은 방 2개짜리 집이었지만, 4인 1실의 요양원과는 비교 자체가 안됐다. 단지는 깔끔했고, 거리는 휠체어가 지나갈 때 '덜그덕' 소리 하나 안 났다.

활동지원사 제도가 새로 생겼다. 중증장애인을 1 대 1로 돌보는 지원사 덕에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조대영(70) 활동사
와는 2013년부터 11년을 함께했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해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진수씨 곁을 지켰다.

둘은 주말마다 한강시민공원을 거닐었다. 가양동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고 육교에 오르면 5분도 지나지 않아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한강을 따라 진수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영씨는 걸어서 동쪽으로는 선유도공원, 서쪽으로는 행주대교까지 갔다. 1시간~1시간 30분 거리였지만 전동기 배터리를 100% 충전하면 문제 없었다. 가는 길에 낚시 구경도, 사람 구경도 했다. 진수씨는 종종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잠실구장에 갔다. 대영씨는 두산베어스 팬이었지만, '형'인 진수씨를 따라 LG트윈스 응원석 쪽 장애인석에 앉았다. 트윈스가 이기면 손목으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고, 지면 "XX 졌네" 욕설을 내뱉고는 밖으로 나와 국수를 먹었다.

고인의 생전 모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꿈꿨던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화



진수씨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았다. 최종
목표는 모든 시설 장애인의 탈시설화
였다. 거주할 공간이 마련되고,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장애인 누구든 시설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싶어할 것이라 믿었다.

최소한 그가 살았던 시설에선 목표를 이뤘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향유의집'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21년 거주인 상당수를 지역사회로 보내고 폐지를 선언했다. 진수씨는 시설이 문을 닫는 날 그곳을 찾아 그들이 촉발한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후로도 동료들에게 "네가 더 잘 알잖아. 네가 움직여야지"라고 독려하다가도 "그냥 밥이나 먹으러 와. 얼굴이나 보자. 재밌게 하자"며 활동을 이어갔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전하윤(31)씨
는 어느 날 진수씨 전화를 받았다. "나 지금 후원행사 왔는데 신발 팔거든? 신발 필요하냐?" "신발 좋죠." 진수씨는 250㎜ 운동화를 사왔다. 하윤씨는 265㎜를 신었다. "이게 뭐에요." 머쓱한 표정의 진수씨는 다음 번에 사이즈를 묻고, 맞는 신발을 사왔다. 그는 소장 월급도 받지 않았고, 월 수급비 10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진수씨는 툭하면 마로니에 8인이었던 동림씨의 집에 삼겹살을 사들고 가 구워먹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65)씨
에게는 종로에서 치킨을 샀다. 이제 막 시설에서 나와 평원재에서 살 때는 경석씨에게 "나 오늘 밖에 나가도 돼?" 하고 물어보던 그였다. 진수씨는 언젠가 서울시와 탈시설 정책을 논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동료들한테 내 돈으로 밥 한 번 사줄 수 있고 어디 편하게 놀러가자고 말할 수 있는 것, 이
'관계의 변화'가 자립의 핵심
입니다."

고인의 영정 사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꽃이 피던 초봄, 딸을 만났다



어느 날 진수씨가 정하씨에게 손주 사진을 보여줬다. 귀엽지 않느냐고, 자랑을 했다. 시설에서는 진수뿐 아니라 누구든 가족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가족과 떨어져 시설로 흘러온 사람에게 일종의 금기였다.

'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던 진수씨는 2008년 탈시설 직전 두 딸을 만났다. 사연을 들은 종순씨가 수소문해줬다. 시설에서 나온 뒤에는 1년에 한두 번씩, 더 자주 만났다. 두 딸이 살고 있던 수원시, 특히 수원역은 백화점이 직접 연결돼 있어서 휠체어 이동이 편했다. 식사도 하고, 손주 옷 선물도 했다.

규선씨의 활동지원사
김금녀(68)씨
는 딸들 얘기하던 진수씨를 기억한다. 둘은 요양원에서 처음 만난 20년 지기였다. "내 슬픔을 알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왜 이렇게 됐는지.
딸들 키우지도 못해서, 아버지 역할도 못 해서 미안
하고. 만나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지도 못하고. 온전히 이해받지도 못 하고." 금녀씨는 시설에서조차 잘 웃던 진수씨의 그 때 슬픈 표정을 잊지 못한다.

진수씨는 꽃이 피기 시작하던 초봄, 지난해 3월 23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
날씨가 봄 날씨처럼 좋았다.
11시에 작은딸 집으로 출발했다. 고촌으로 가서 길은 매일 막힌다. 고촌에서 수원 도로는 오늘도 막혀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 작은딸 집에 도착해서 전화해서 나왔다가 식당에 안 가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 식당에 고기 있는 거 시켜서 왔다. 시킨 고기가 연해서 먹기를 많이 먹었다.
작은딸 집에서 점심 맛있게 먹었다.
(...) 작은애 집에서 3시 40분 다 되어 가자고 하고 나왔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김혜영 기자
취재: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 인턴기자
데이터 분석: 황수현 기자
플랫폼: 박인혜 플랫폼서비스팀장
영상: 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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