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 검·언유착과 고발사주 ②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2024년 11월8일 창원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발사주’ 공익신고자 조성은에겐 ‘12·3 내란’이 낯익다.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세력의 거짓말과 발뺌, 중상모략이 3년여 전 고발사주 사건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자신의 지시에 따라 내란에 가담한 부하들의 일관된 진술까지 부인하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한다. 비상계엄은 ‘야당 엄포용’이라는 등의 궤변도 불사한다. 국민의힘은 그런 윤석열을 적극 엄호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만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태세다.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로 나라를 위기에 빠트렸는데도 여당으로서 책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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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2021년 9월2일 뉴스버스의 단독 보도로 고발사주 의혹이 제기되자 거꾸로 문재인 정권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야권 유력 후보인 윤석열을 제거하는 공작을 꾸몄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고발장을 “괴문서”라고 했다. 3년 뒤인 2024년 1월31일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속인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작성했다’고 판결한 그 고발장이었다. 서울고법은 2024년 12월6일 고발사주의 총괄 기획자로 윤석열을 지목했다. 윤석열은 나중에 들통날 게 뻔한 거짓말을 버젓이 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4년 10월11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명태균 “박지원 게이트로 바꿔야”, 김건희 “그쵸”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뉴스버스 보도 열흘 뒤인 2021년 9월12일엔 ‘고발사주가 아니라 제보사주’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장이었던 박지원이 조성은에게 제보를 사주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조성은이 뉴스버스에 제보하기 전에 박지원을 만났다는 게 이유였다. 박지원과 조성은은 과거 국민의당에서 각각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국민의힘이 언급한 만남은 박지원이 국정원장에 취임한 뒤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고 연락해 성사된 것이다. 2021년 8월11일 저녁 7시 “고발장의 ‘고’자도 꺼내지 않은”(조성은) 저녁 식사 자리였다. 김웅이 조성은에게 보낸 고발장 텔레그램 캡처 사진은 이보다 20여일 전인 7월21일 이미 뉴스버스 쪽에 전달된 상태였다. 박지원의 ‘제보사주’는 시간적으로 성립될 수 없었다.
윤석열 캠프는 박지원과 조성은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발사주 사건 언론 제보에 관하여 피고발인들이 협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윤석열 캠프가 법원에 낸 재정신청도 기각됐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고발사주라고 명명된 정치공작 게이트”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자신의 범죄 혐의를 거꾸로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최근 공개됐다. 지난 1월9일 뉴스타파는 명태균과 김건희가 2021년 9월12일 나눈 다음과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명태균이 조성은을 공격하는 내용의 보수 유튜버 방송을 공유한 뒤)
김건희: “어쩌죠 ㅠ. 괜찮을까요. 공작이요”
명태균: “걱정하지 마세요. ㅎㅎ 보수 유튜버들의 용어선택도 고발사주 의혹이 아니라, 박지원-조성은 게이트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건희: “그쵸”
뉴스타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창원지검의 ‘명태균 게이트’ 수사보고서 중 고발사주 관련 내용
이 메시지는 ‘명태균 게이트’를 수사 중인 창원지검이 명태균의 피시에서 찾아낸 것이다. 명태균은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주고받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 일부(280개)를 캡처해 피시에 저장·보관했다. 정치 신인 윤석열을 국민의힘이 배출한 대통령으로 ‘조련’하는 메시지였다. 대화 기간은 윤석열의 대선 출마 선언 3일 전인 2021년 6월26일부터 경남 창녕군 재보궐 선거가 있었던 2023년 4월까지다.
국힘·친윤언론 ‘제보사주’ 전방위 확산시켜
국민의힘은 명태균이 띄운 ‘제보사주’ 프레임을 문재인 정부 역공에 적극 활용했다. 이 메시지 당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박지원-조성은 사이의 커넥션, ‘박지원 게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 배경에 강한 의심이 간다. 정치 공작, 선거 공작의 망령을 떠오르게 하는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캠프 상황실장을 맡은 장제원은 “박지원 국정원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대선에 개입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고발사주 수사에 나선 공수처도 걸고넘어졌다.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하고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든 최재형은 윤석열과 회동한 뒤 “공수처가 야당 후보를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트리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친윤 언론’들은 제보사주 프레임을 전방위로 확산시켰다. 특히 조선일보가 적극적이었다. 이 신문은 조성은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제보자를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제보의 신빙성에 흠집을 내는 수법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성은의 페이스북을 뒤져 박지원과 관련된 게시물을 찾아 보도했다. 개인적인 댓글까지 시시콜콜 지면에 실었다. 조성은이 국정원장 공관에 초대된 것을 마치 대단한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이 모임은 고발사주 보도 한참 전인 2021년 2월 조성은뿐 아니라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등 복수의 인사들이 참석한 식사 자리였다.
조선일보는 조성은의 공익신고자 자격에 시비를 걸었다. 공익신고를 접수한 한동수 대검 감찰본부장을 ‘친여 성향’으로 몰아 마치 공익신고자 판정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한동수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시도한 사실을 들어 친여 성향으로 몰고 갔다. 대표적인 게 2021년 9월9일 <제보자를 벼락치기 공익신고자 만든 ‘한동수 감찰부’>라는 기사다. “법조계에서는 ‘친여 성향 한동수 감찰부장이 여당(민주당)의 전방위 의혹 제기에 보조를 맞추려다 권익위 권한을 침해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에서 “공익신고자 지정의 주무 부서는 검찰이 아닌 국민권익위원회여서 월권 논란이 제기됐다”라고도 썼다. 9월13일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조성은 ‘공익신고자’ 자격놓고 거래했나> 기사에서는 “조씨가 한 부장과 논의를 거쳐 공익신고를 한 과정에서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들은 모두 ‘가짜뉴스’에 가깝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공익신고를 할 수 있는 기관으로 권익위뿐 아니라 수사기관, 정당 등 복수로 규정돼 있다. 또 공익신고자 신분은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부여된다. 권익위가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게 아니다. 이미 판례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0년 5월 권익위가 아닌 다른 기관에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도 공익신고자 신분을 획득해 보호조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조성은의 공익신고자 지정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느니, 모종의 거래가 있다느니 하는 주장은 모두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
‘12·3 내란’에도 윤석열 미련 못 버린 조선일보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은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을 때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 신문은 검찰총장으로 승진한 윤석열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적극 엄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밀어붙인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철저하게 윤석열 편에 섰다. 조선일보의 도움이 없었다면 윤석열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12·3 내란’을 일으켜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구속기소된 지금도 조선일보는 미련을 못 버렸다. 윤석열 체포영장을 발부한 법원과 내란죄 수사를 전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흔들더니, 이젠 윤석열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를 걸고넘어진다. 1월31일 <“내가 제일 왼쪽”…정치 편향 논란에 빠진 헌재> 기사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 등 진보성향 재판관들을 콕 집어 “정치 편향 논란이 있다”고 썼다.
2025년 1월25일치 조선일보 3면 기사
윤석열의 궤변도 진심으로 전한다. 1월25일 <계엄 때 했다는 ‘의원 끌어내라’ 지시… 특전사령관 첫 발언은 달랐다> 기사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요원이었다’는 윤석열 쪽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의원 끌어내라’는 지시였다고 재차 확인하고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도 같은 진술을 했는데도, 이 신문은 극우 유튜버 같은 주장을 한다. 3년 전 고발사주 때보다 더 무모해 보인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법치’를 강조하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민과 국회에 의해 155분만에 제압돼 탄핵과 형사처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합니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지지자들에게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