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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모의 미락(美樂)클
슈베르트(1797~1828)의 친구인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1796~1862)의 수채화 ‘아첸브루크에서의 파티 게임’(Gesellschaftsspiel der Schubertianer in Atzenbrugg, 1821, 빈 박물관). 팬터마임 놀이를 하는 귀족 친구들로부터 왼쪽 피아노 앞에 슈베르트가 떨어져 있다. 나무처럼 선 이가 쿠펠비저다. 목말을 탄 이가 쇼버로 추정된다. 이 장소가 빈 서쪽 아첸브루크에 있는 쇼버의 성이다.

같이 들을 클래식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제1곡 ‘잘 자요’

“작은 버섯.” 154㎝의 키,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그란 코, 동그란 안경을 쓴 슈베르트의 별명입니다. 슈베르트는 짝사랑만 하다가 서른한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저는 슈베르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어쩌지 못해요. 그의 삶 구석구석과 만나다 보면 그의 음악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거든요.

몇해 전, 음악만 하는 제가 연기를 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슈베르트와 겨울 나그네’라는 음악극이었어요. 성악가와 연극배우가 어우러져 연기하며 ‘겨울 나그네’를 실제로 부르는 공연이었어요. 저는 노래는 안 했지만 작은 역할을 맡아 연기도 하면서,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도 했어요. 덕분에 어쩐지 전보다 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빠지게 되었지요. 특히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음악과 함께 묵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중 ‘잘 자요’는 가곡집 ‘겨울 나그네’의 총 스물네곡 중 첫 곡이에요. 독일어 제목은 ‘Gute Nacht’(구테 나흐트), 즉 “굿 나이트”라는 흔한 인사말인데요. 가곡의 제목 중에선 독보적으로 독특한 제목이에요. ‘겨울 나그네’를 전곡 감상한다면, 먼저 첫 곡은 무조건 듣게 되죠. ‘겨울 나그네’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다섯번째 곡 ‘보리수’(Der Lindenbaum)와 열한번째 곡 ‘봄의 꿈’(Frühlingstraum)인데요. 장조로 시작되는 이 두곡의 앞뒤로 온통 단조곡들이 포진해 있어요.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슬픔만이 남았으니까요. 제1곡 ‘잘 자요’도 단조로 시작해요. 주인공은 실연당한 청년이에요. 그녀와 꽃 피는 5월, 꽃보다 예쁜 사랑을 했건만, 겨울이 되자 그녀의 마음이 변해버려요. “우리 헤어져!”

31살 요절한 비운의 슈베르트
좌절한 음악가의 절망적 짝사랑
“잘 자요” 밤인사는 “당신을 잊지 못해”

청년은 이별을 원치 않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요. 흰 눈이 쌓인 겨울밤, 청년은 목적 없는 여행길을 떠납니다. 디(D)단조에서 8분음표로 쿵쿵대는 피아노 반주는 앞으로 펼쳐질 끝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발걸음처럼 들립니다. 또 위에서 아래를 향해 투. 두. 둑. 떨어지는 멜로디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는 청년이 그려집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낙담한 청년의 쓸쓸한 심정을 바로 이 선율에서 고스란히 전해 받아요.

“사랑은 방랑을 좋아하지요. 신이 그렇게 만들었어요.”(‘겨울 나그네’ 제1곡 가사 중)

길을 떠나기 전, 청년은 그녀의 문에 “잘 자요”라고 새겨,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Gute Nacht’는 ‘밤 인사’로 번역되는데요, 여기선 평범한 인사가 아니지요. 그녀에게 잘 자라고 속삭이며, 그녀의 사랑을 뼛속까지 새겼을 남자의 사랑의 인사예요. 그녀의 꿈속에서라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그득 담은, 달콤한 사랑의 언어. 즉, 노래 안에서 “잘 자요”는 “난 아직 널 사랑해. 널 못 잊어…”로 해석되고야 맙니다. 그러니 ‘겨울 나그네’의 첫 곡 제목은 다정함과 애처로운 마음을 반영해, ‘밤 인사’라는 딱딱한 제목이 아닌, ‘잘 자요’로 좀 더 달달하게 부르면 어떨까요?

한편, 이 슬픈 상황에서도 청년은 단조로 슬프게만 노래하지 않아요. 4절에서 갑자기 디장조로 바뀌며 분위기가 명랑해집니다.

“그대가 꿈에서 깨지 않게, 내가 편안한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가사 중)

그녀를 떠올리니 마음 한편에 불을 켠 듯 밝아졌겠지요. 이윽고 청년은 발걸음을 죽이고, 문을 살짝 닫고 길을 떠납니다. 마지막에서 다시 슬픈 디단조의 어조를 드러내요.

슈베르트는 이십대 초반, 절친인 프란츠 폰 쇼버의 거대한 성에서 매년 여름을 보냅니다. 쇼버는 슈베르트를 위해 살롱 모임인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의 밤)를 처음으로 열어준 고마운 친구예요. 하지만 쇼버와 지내며 슈베르트는 매독에 걸리고 말아요. 게다가 그토록 염원하던 궁정 부악장 자리에도 낙방합니다. 당시 슈베르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베르트의 절망이 전해져 와요.

“나는 좌절한 음악가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존재라고.”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되고 초라한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낀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를 음표로 옮기며, 자신을 청년에 대입해 풀어냅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머나먼 방랑길에 오른 슈베르트. 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무수히 듣는다 해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고 또 위대합니다.

내게 “안녕히 주무세요” 말고, 다정하게 “잘 자요”라고 말해줄 사람, 또 내가 “잘 자요”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 리가요! 사랑을 전해주는 아주 특별한 ‘밤 인사’니까요. 올해는 소중한 사람에게 지난해보다 더 많이 “잘 자요~”라고 말해주세요.


안인모 피아니스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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