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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평생 민주·통일운동 헌신한 조성우 선생을 기리며
고인의 빈소. 이연희 사무총장 제공

12·3 내란 사태 후 광장에는 2030세대의 열기가 가득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계엄’이 현실이 되자 그들은 저항을 시작했다. ‘헬조선의 청년들은 왜 싸우지 않나’ 이전 세대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들은 늘 싸우고 있었고, 이제 광장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지난 18일 별세한 조성우 선생님의 평생은 늘 광장이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에 선생님은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긴급조치 시대에 대학에서 시작된 운동이 네 차례의 수배와 투옥을 거듭해 오늘날의 탄핵광장에 이르렀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3년 옥살이를 했던 그에게 ‘계엄’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었을 12월3일 밤. 선생님은 ‘좀 걸릴지 모르니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75살의 운동가는 엠지(MZ) 세대와 함께 생의 마지막까지 광장에 서 있었다.

우리 후배들에게 선생님은 항상 기둥이고 어른이셨다. 선배 세대는 70년 유신독재를 깨고 80년 광주를, 87년 6월 항쟁을 만든 세대이며 2000년 6·15공동선언과 남북화해협력의 역사적 전기를 만든 주역들이다. 그러나 386, 486세대가 모두 정치권으로 떠난 이후에도 우리 후배들은 아직 새로운 운동세대, 혁명세대라 불릴 만한 대표 이름을 얻지 못한 세대이다. 박근혜 촛불항쟁의 성과도 모두 이전 세대들이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와 운동의 계승을 걱정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음 세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만들어 주시고, 앞세워 주신 분이었다. 운동의 노선이 다르고 방식이 달라도 모두가 당신과 같은 선배 세대들이 낳은 자식들이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늘 열정적이셨던 선생님은 하고 싶은 일, 꼭 하셔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당신 생각과 달라도 우리 후배들이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물러서 주셨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당신이 윤석열 탄핵광장에 나선 젊은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셨을까 생각하니 한편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그렇게 당신의 몸이 스러져가는 줄도 모르고 탄핵광장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셨던 것이다.

고인. 이연희 사무총장 제공

긴급조치 위반으로 3년 옥고 등
유신 이후 네 차례 수배와 투옥
최근까지 ‘윤 퇴진 단체’ 이끌고
12월3일 내란의 밤에도 거리로
가족엔 조금 걸릴지 모른다면서

후배들에게 항상 어른이자 기둥
생각 달라도 자리 내어주고 앞세워
‘진보와 개혁 연합정치’에 혼신
연합정치에 대한 선생님의 집념도 궤를 같이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모두 한뿌리에서 나서 자란 진보·개혁 정치와 운동이 단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아직도 70년대 유신정치, 멀리는 이승만 독재세력을 뿌리로 하는 수구정치세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또 그러한 이유로 진보정치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진보정치와 개혁정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그것이 정치개혁이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길이라고 선생님은 믿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연합정치시민회의를 주도하며 윤석열 정권 심판과 진보개혁정치의 단결을 도모하셨던 이유다. 시민사회 몫 세 명의 후보가 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절반의 성공쯤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12·3 내란사태까지 겪고 보니 분단체제 위에 서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서 그렇게 통일운동가인 선생님은 연합정치를 위해, 윤석열 퇴진을 위해 뛰어다니셨던 게다.

2024년 북이 이전까지의 대남노선을 폐기했다고 밝혔을 때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 마음 아파 하셨다. 1989년 평화연구소를 열고 일제강점기 좌우합작운동이었던 신간회에 대해 사례분석을 하며 남북협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오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의 성과 위에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6·15공동선언으로 결실을 보았다. 2000년대는 유례없는 남북교류협력의 시대였고 그렇게 통일에 이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과 4·27판문점선언, 9·19남북군사합의 등 모든 남북협상은 결국, 실패했다. 적어도 당장은 그렇다. 그러니 짐작건대 평화통일을 위해 바친 당신 삶 전체를 부정당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 사전에 중단과 좌절은 없었다. 지난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정비해 ‘자주통일평화연대’로 전환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10년간 이끌어 주신 통일운동단체 '겨레하나'의 명칭을 ‘평화주권행동’으로 바꾸고 조직혁신을 준비할 때도 겨레하나라는 이름에 담긴 숭고한 뜻, 그동안의 헌신이 행여 빛바랠까 안타까워하셨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먼저 결심하셨다. 그렇게 준비한 조직전환 총회 당일, 선생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탄핵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수구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상상할 수 없었던 극우선동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진행 중인 광장의 혁명이 윤석열 탄핵과 새로운 정치,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우리는 한결같이 든든했던 버팀목 하나를 잃었다. 이제 누가 뜻을 펼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지쳐 떨어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선배와 한참 어린 후배들까지 앞세우며 그 길을 가겠는가. 이제 당신이 없는데, 그 빈자리를 어찌 메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동행’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셨다. 동행하던 길, 이제 모든 동행자가 선생님의 뜻을 이어 그 길에 나서자고 다짐할 시간이다. 당신의 헌신과 사랑을 어찌 잊겠는가. 무거운 짐 모두 맡기시고 그곳에선 편안하시길. 바라본다.

이연희/겨레하나 사무총장·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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