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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의 문화계 거목 김민기 학전 대표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조문객 수백 명의 행렬이 이어졌다. 문화예술계 뿐 아니라 정계·법조계 인사들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고(故) 김민기의 빈소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에 마련됐다. 사진 학전
“화환과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빈소에는 근조 화환 하나 없었지만 오전 11시부터 조문객의 줄이 2층 장례식장 복도를 꽉 채웠고, 점심시간이 지나자 중앙 계단에서 1층까지 줄이 이어졌다.

오전 10시 30분 빈소를 찾은 가수 조영남은 "우리 친구 중엔 민기가 막내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김민기는 73세에 죽었어도 요절"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늙게 요절한 천재"라고 고인을 칭했다.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비슷한 시각 조문을 온 소리꾼 장사익은 고인을 "안개꽃처럼 뒤에 서서 음악을 아름답게 빛내주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모든 진영이 '우리 것'이라고 우길 만큼 영향력 있는 음악을 만들고도 세상에 폼 한 번 잡지 않은 크고 높은 분"이라며 "'아침이슬'을 참 좋아했다. 황망하다"고 했다.

학전의 '독수리 오형제'(김윤석·설경구·장현성·조승우·황정민) 중 한 명인 배우 조승우도 오전 조문을 다녀갔다. 그는 과거 한 시상식에서 고인을 "스승님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가장 친하고 편안한 동료였다"고 표현했다. 조승우는 2000년 학전에서 '의형제'로 뮤지컬 데뷔를 했고, '지하철 1호선'에 수차례 출연했다.

이날 정치·법조계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어두운 얼굴로 빈소에 들어선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재야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형님"이라며 고인과는 "신정야학 출신들과 친분이 있어 인연을 맺게 됐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만나면 말도 없이 씩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은 (정치인인 내게) '뭘 하려면 제대로 해' 꾸짖는 날도 있었다"면서다.

오후 2시,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조문객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고인이 고등학생이던 60년대 종로5가 연동교회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고인의 경기고·서울대 선배이기도 하다. 정 전 총리는 "세상에 와서 주기만 하고 간 사람인데…"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는 "본인을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주기만 한 사람, 온 세상을 빚지게 한 사람"이라며 "그의 노래가 큰 위안을 주었기에 몸은 떠났어도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운찬이 형은 내가 중매를 서줬지'하며 밝게 웃던 게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정 전 총리의 부인 서양화가 최선주씨는 서울대 미대 동기다.

김용균 전 행정법원장은 "(고인과) 친분은 없지만 그 분의 노래에 대학 시절을 빚졌다"며 "유신 시절 대학 다니며 '아침이슬'을 참 많이도 불렀다"고 했다.

오후 4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았다. 유 장관은 "김민기 선생은 우리 시대를 잘 대변하는 예술가였다. 후배들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셨을텐데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싶어 전남 광양에서 새벽 6시에 길을 나섰다"는 이준태(70)씨는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조문을 왔다"며 "유명인이지만 영웅이나 거인보다는 동네 친구, 형 같은 분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다. 유신 때 대학을 다니며 그 분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빈소를 찾은 김경수(68)씨는 "가시는 길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며 "사람은 가도 좋은 노래는 남으니 자신의 삶보다 영원한 걸 남기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가수 정태춘 등도 빈소를 찾았다. 전날엔 학전 무대를 거쳐간 가수 이은미·장기하·박학기·알리와 배우 문성근·강신일·이병준·황정민·장현성,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도 조문했다.

유가족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당부는 단 세 줄. '절대 (장례식을) 화려하게 하지 마라. 추모 공연도 하지 마라. (조문객들) 밥은 배불리 먹여라.' 그의 뜻대로 마지막 길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온기로 가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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